독일인들의 사유와 성찰이 맞닿을 수 있는 우리 춤 '승무'는 '살풀이춤' '검무'와 더불어 대표적 한국 전통춤이다. 고난도의 승무 동작 중 깊은 발 디딤과 함께 긴 한삼을 천천히 허공에 뿌리며 한발 한발 힘 있게 내딛는 발 디딤, 모으며 웅크리고 다시 펼치는 동작은 인생의 희로애락에 걸친 힘겨운 산행에 비유된다. 수십 번 되풀이되는 허공질은 세속을 탈피하고자 하는 승화 의식이며, 염원의 의지를 담고 있다.
무대 플로어는 크레용 카펫을 깔아놓은 듯 원색을 수용한다. 정중앙의 큰여승(차수정)을 포함한 가로(다섯)와 세로(넷)의 네모꼴 대형으로 양 손 곁에 바라를 두고 앉은 자세로 포진한 여승들은 스물을 헤아린다. 하나씩 스폿을 받은 장중한 바라 일체의 모습은 구도정진의 무게감으로 비춰진다. 백색 대형 천이 세로로 걸리고 치마・저고리, 고깔 등이 백색으로 빛날 때 사선으로 멘 빨간 띠가 환상이 아님을 밝힌다.
이영일(가천대 연기예술학과 교수)의 연출은 가야금・아쟁・해금・대금・피리・생황에 걸친 연주, 소리(김나니), 연희 앙상블 '비단'의 타악에 이르는 열 명(여성 1명) 악사의 음악적 흐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연출은 과하지 않게 춤 동선을 구축하면서도 극적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드라마투르기를 보여 준다. 춤 대사를 이어가도록 완급, 강약을 조절하며 공간을 창출하고 간극을 조절해내는 솜씨는 매끄럽다.
첫 번째의 산: 토(土), 자연, 대지의 소리를 듣는다. 땅의 기운으로 생명이 잉태된다. 징을 일곱 번 치는 칠채장단을 중심으로 타악성을 강조한 장고 음을 끼고 음악적 장단이 구성된다. 징이 중심이 되는 칠채로 구성하되 흙의 기운과 땅의 소리를 ‘바라’라는 불교 색채가 농후한 쇳소리・타악・북・징의 울림으로 이 세상의 번뇌와 고통을 넘어 생명 탄생이 형상화된다. 바라 마흔 개가 바닥을 치면 대지는 잠을 깬다. 앉아서 바라를 집었다 놓는 자세가 반복되다가 서서히 일어서는 상좌들, 다양한 각도의 바라는 개인의 수양 정도이다.
두 번째의 산: 인(忍), 인고의 시간으로 승무의 염불과장을 인간의 삶 속에 번뇌와 고통으로 표현한다. 여승들 무대 뒤편으로 물러나면 미동(微動)의 큰여승(차수정)이 드러나고 감싸는 반원형의 무리들이 동작을 따라하면서 군무는 서서히 몰입을 유도한다. 승무의 염불과장으로 3소박 6박 장단을 중심으로 긴 염불인 느린 6박장단의 느린 춤사위가 추어진다. 승무가운데 느린 염불은 가장 어려운 춤과장으로 인간의 번뇌와 고통을 이겨내는 느린 춤으로 끈기와 인내를 대변한다. 춤 도량의 주역으로서 안무가는 긴 호흡으로 춤과 소리에 빛과 색을 입히고 스승의 가르침인 인생의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는 정신을 춤으로 보여준다.
세 번째의 산: 신(信), 심산의 소나무 영상이 보이고. 타령과장으로 굳은 의지와 신념을 자신의 인생의 산에 비유한다. 3소박 4박 장단을 중심으로 생황, 소리, 해금이 활기 있게 연주되고 다양한 춤사위가 펼쳐진다. 작품에서 추어지는 정재만류 승무는 역동적이며 활기찬 하체의 디딤과 질량적 에너지의 확대가 드러난다. 여승의 바른 편, 왼편에 5인무 편제. 피리는 관찰자가 된다. 인생의 시간을 표현하는 직사각의 긴 대나무 모자를 쓴 네 명의 수행자가 정진의 세월을 상징하다가 사라진다. 심연의 번뇌가 비춰지고 고비를 넘어가는 인간의 굳은 의지와 신념은 타령장단을 통해 표현된다.
네 번째의 산: 구(口), 여인의 염원과 기원을 담은 기도가 시작된다. 종교적 염원을 의미하는 여인들의 보살춤이 이어진다. 여인만 남고 네 줄로 내려온 연꽃행렬이 빛난다. 기도는 구음이 되고 염원의 소리가 된다. 관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화음을 낼 수 있는 생황의 신비로운 소리를 중심으로 염원을 담은 여인의 기도가 구음으로 전개된다. '나뭇가지에 걸린 달/ 구름도 달빛을 머금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온몸으로 듣고 있었습니다./ 밤새내린 폭우가 찬란한 아침을 만들었습니다./ 삶의 고개/ 시간의 무게/ 세월 따라 흐르는 바람에 실려/ 무심한 달빛이 되어 기도합니다. 물처럼 살다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인생/ 이제 저 달은 일곱 개의 산을 넘어/ 꽃으로 바람으로 구름으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도합니다.' 심정을 담은 낭송이 울려 퍼진다.
다섯 번째의 산: 화(花), 삶의 결실, 끊임없는 기도와 정성을 통한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된다. 물소리에 이어 물길 따라 흐르는 가야금 선율이 흐트러진다. 자유로운 가야금 산조가락에 따라 여섯 여승의 기도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고 춤으로 승화된다. 오른 손에는 꽃을 들고, 심상을 알리는 노래가 따른다. 사선의 다양한 춤이 조명을 받는다. 꽃을 든 여인들 모두 사라진다.
여섯 번째의 산: 해(諧), 춤을 통한 움직임을 모든 자연의 조화와 상생으로 표현한다. 산사의 풍경소리를 중심으로 꽃으로 피어난 인생의 희로애락을 춤의 조화로 표현한다. 장삼을 걸쳐 입고 가사를 두르고 고깔을 쓴 반복된 모습, 현대 장삼의 소매는 길이가 길어졌고 가사와 장삼의 폭은 좁아져 맵시를 더한다. 느린 걸음, 향로가 등장한다. 가벼운 의식이 끝나면 목탁소리가 울려 퍼진다. 승무의 굿거리과장으로 음악구성은 삼현육각이다. 기악과 타악, 장단과의 조화를 통해 상생과 조화의 ‘승무’ 이미지가 형상화된다.
일곱 개의 산: 향(響), 인생의 일곱 개의 산을 넘어선 삶의 초월과 해탈의 경지가 연출된다. 북의 확장(극장 규모에 따른 대북 사용), 변주(한 손, 두 손 연주), 연희(움직임의 극성)로 일곱 개의 대북 연주가 시작된다. 일곱 개의 인생의 산을 의미하는 과장처럼 일곱 개의 북이 서로 다른 소리를 치다가 합쳐져 조화를 이룬다. 자신을 깨우치는 소리이자 다짐이다. 조화・동화・공감의 타악 북 놀이 다음에 '다스름'과 '자진모리' '휘모리'로 구성된 북 가락이 이어진다.
오묘한 대북놀이가 끝난 후 합주에 따라 모든 군무(바라 춤, 작은 바라를 든 춤, 대북 움직임, 채만 든 춤)와 악기연주가 펼쳐지고 태평소 등 모든 악기가 최대치의 소리를 뿜어내면서 조명이 '풀브라이트'일 때 여승들이 가사 장삼의 옷과 고깔을 벗으면 붉은 롱 드레스가 눈에 띄고 세속의 경계를 넘어 해탈한다. 부채춤 구성에 버금가는 연희적 가치가 높은 화려한 장삼놀림이 '승무'의 빛나는 바라꽃 모습이 된다.
빛과 소리가 어울린 비주얼은 장엄한 아름다움이다. 큰여승도 가사와 고깔을 벗어 던진다. 해탈에 이름이다. 갑자기 음악이 중단된다. 깊은 상념에 잠겨 천천히 전진하다가 다시 되돌아간다. 연풍대로 돌아가는 승무의 모습의 변형이다. 춤이 나온 길을 통해 다시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이다. 태평소 소리 들리는 가운데 대형 천이 내려오며 산의 능선이 그려진 영상과 푸른 조명이 조우하며 춤은 종료된다.
차수정 안무의 『일곱개의 山(산)』은 '승무'의 차수정식 독해품(讀解品)이다. 안무가 차수정이 '승무'의 본질을 살리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은 '승무'의 정신과 스승 정재만의 춤 뜻을 살리고 '승무'를 의식에 국한시키지 않고 보통사람들의 삶의 몸짓과 극기에 이르는 과정을 예술적 가치가 돋보이게 만든다. 전통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품이다. 맺고 풀음의 이치를 담은 『일곱개의 山(산)』은 사람이 나서부터 해탈에 이르기까지 순환의 반복과정을 보여준다. 차수정 전통춤의 새로운 원형 창조는 의미있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예술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