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4일(토) 오후 7시, 5일(일) 3시, 7시 국립극장 KB하늘에서 양선희(세종대 무용과 교수) 연출의 무용극 『모던 홍길동』이 3회에 걸쳐 공연되었다. 친숙한 고전 『모던 홍길동』의 극성(劇性)을 살려 홍길동을 현대로 불러낸 작품은 역동적 움직임과 빠른 템포, 현대적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춤 전개 기법으로 오락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서정과 순수를 밑바탕에 깔고, 다양한 춤과 액션을 가미한 무용극은 시린 계절에 맛보는 솜사탕의 느낌을 주었다. 어린이들을 등장시키면서 오픈 무대는 동심(童心)에서 출발한다. 연출자는 자신의 춤 인생을 작품에 투영시킨다. 장면이 전환되면 성장한 제자들의 춤 연습 광경이 펼쳐지고, 그 가운데서 스승 역의 양선희 교수가 춤동작을 하며 지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연출가는 1층, 2층, 1층과 2층을 잇는 공간으로 무대를 확장하고, 현란한 빛과 사운드, 다양한 춤 연기로 관객을 압도한다. 소통을 중시하며 극간의 노래는 상황 전개에 따른 모성적 해설자 역할, 피리 등 전통 악기들은 깊이감과 흥신(興神)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로 사용된다.
『모던 홍길동』에서 가족(아버지, 그의 본처, 후처, 본처 아들 1, 2)을 빼면 등장인물들은 신분 차이가 없는 보통사람들이다. 보통사람들의 영웅이 홍길동이고 그의 행위는 관객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 두 사람의 안무자인 현재의 길동(권용상)과 길동의 영혼(정명훈), 길동의 여인, 길동의 여동생 커플은 작품의 기본 구도를 설정하고 재미와 갈등을 촉발하는 중심축이다.
모던한 커플들이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관객에게 인사를 나누는 등 분위기를 일궈 나가면, 2층 비어홀에는 정장차림의 청춘들이 앉고, 서면서 현대적 분위기를 도출한다. 빗소리가 떨어지면서 잊힌 과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하얀 양복차림에 칼을 찬 일곱 청춘들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수준 높은 연기력을 동원한 춤의 구성은 여러 면에서 차별을 이루어 간다.
하늘에 걸려있는 별, 사운드가 신비감을 조성한다. 사내는 여러 개의 모자를 던진다. 소녀가 달려오며 모자를 모은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현대, 길동은 스쿠터를 탄다. 원색의 옷을 입은 젊은이들은 현대 춤을 춘다. '지하철, 지하철…', 젊은이들은 짝을 찾고, 세 쌍이 된다. 새로운 느낌의 의자들, 스쿠터도 이곳저곳을 누빈다. 한 사내가 먹고, 눕는 동작을 보인다.
장자가 꾸는 꿈속에 길동과 조명도 분주하게 변화한다. 김 필의 노래 '청춘'이 흐른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지나간 청춘에 대한 회한과 후회가 깊이 깔린다.
춤 연기자로 출연하는 용상과 상체 탈의의 사내 명훈은 지속적 갈등을 보인다. '스틱 댄스'가 등장하면서 격려의 흥을 돋우기도 하고, 탱고 듀엣들이 희망을 주기도 하면서 다양한 사내들은 조합을 달리하며 청춘을 위로한다. 현대 사운드가 전통악기와 어울리고, 여성 3인무, 여성 솔로, 영혼과 어울린 듀엣, 듀엣, 검정 옷 듀엣, 탱고 트리오 등이 분주히 전시된다.
연출자 양선희는 제자 권용상과 정명훈을 안무자로 삼고 전통 소재를 현대화 시켰다. 현대화된 한국춤 트렌드는 한국춤의 새로운 문화원형이다. 그녀는 대금, 장고, 북 등이 어울린 한국적 리듬과 춤사위를 현대적 사운드와 춤에 연결시킨다. 권력자의 입김을 보여주는 의자무(椅子舞), 플로어의 무늬 디자인 등 조명 디테일 등이 신 문화원형을 뒷받침하는 요소들이다.
노란 교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다시 등장한다. 피아노의 타건, 동요 리듬, '런 앤 체이스'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다. 싸움 등의 과정이 폭소로 변한다. 현대에 부대끼는 청춘의 자살 시도가 비춰진다. 오픈 스테이지는 긴 탁자 주변의 직장 초년생들이 긴장과 스릴 속에 휩싸여 있다. 무한 경쟁시대가 도래했음이다. 나약해진 '길동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어야할 시점이다.
홍길동은 영혼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다시 강해진다. 장치의 조형성을 이용하여 젊은 춤연기들이 빛을 발한다. 대형 풍선 속에 갇힌 '영혼'은 시각적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플로어에는 희망의 녹색이 깔리고, 원색의 듀엣들이 화평의 춤을 춘다. 다시 한 번 칼을 든 '현대 길동들'이 등장한다. 장엄을 견지한 열두 명의 백색춤이다. 비장한 스펙타클 음악이 흐르고 함성을 지르면서 신판 홍길동, 담배 연기 속에 생각해본 버라이어티한 『모던 홍길동』 의식은 종료된다.
양선희, 후학들에게 늘 비움을 강조하는 안무가이다. 우리 춤의 깊이와 창작무의 변주로 파이를 키우는 방법(국제 브랜드로서의 가치)을 가르치고 있는 교육자이다. 『모던 홍길동』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고집하지 않고, 양선희 류의 창작 본능에 충실하면서 어울림의 주제적 목표를 달성하였다. 현란한 춤 기교를 보여주면서 여러 장르에 걸친 예술들을 춤에 용해시켜 종합선물 세트를 선사하였다. 『모던 홍길동』, 빛나는 상상력의 잘 짜인 예술작품이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