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본질은 ‘어려울 때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이다. 사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하면 제일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상태로 세상에 태어난다. 자기 스스로 이동하는 데 최소한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후에도 스스로 먹이를 찾고 생존할 수 있기까지는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이 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의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이 돌봄은 부모로부터 온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부모를 믿는 것으로부터 세상살이를 시작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믿음을 잘 형성하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누군가가 도와줄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이 이들의 모토이자, 기본적 정서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땐
가장 무능한 상태 세상에 노출
스스로 이동 시 최소 1년 걸려
이렇게 만들어진 ‘믿음’의 대상을 ‘우상’이라고 부른다. 우상(偶像)은 사전적 의미로는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든 신불(神佛)이나 사람의 형상’을 뜻하거나 또는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형체가 우상의 대상이 되지만, ‘돈’과 같이 필요한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무형적인 것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중요한 우상이 된다.
이처럼 우상은 불신과 두려움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이웃과 세상을 믿지 못하면 못할수록 더욱 불안해진다. 불안해지면 질수록 믿을 만한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얻지 못하면 믿을 수 있는 대상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그 우상을 믿음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청소년들이 연예인들을 우상으로 삼고 몰두하고 일거수일투족을 흉내 내고 따라다니면서 마치 자신이 그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동일시의 착각’에 빠지는 것도, 청소년기가 매우 불안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아온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불안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벗어나려고 하고, 또 멋있고 힘 있어 보이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동일시하여 자신도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무당과 역술인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무당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나 한국역술인협회에 가입한 회원수가 각각 3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두 단체의 주장처럼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무당과 역술인은 100만 명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두 단체는 미신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나름대로 체계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자격시험을 시행하고 ‘무속심리 상담사’나 ‘역학 상담사’ 등의 자격증을 수여하기도 한다.
이렇게 무당과 역술인이 느는 이유에 대해 해당 업계에서는 경제 침체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먹고 살기 어려워질 때 학위나 자격증을 비롯한 진입장벽이 거의 없다시피 한 무당이나 역술인으로 전업(轉業)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지난 IMF 외환위기에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렇게 ‘우상산업’이 흥행하는 데는 대학도 한몫을 거들고 있다. 입시생 감소와 인문학 위기로 폐과 수순을 밟는 일부 ‘특수’ 대학(원)들이 그 빈자리를 사주•풍수•관상 등의 전공으로 메우기 때문이다. 이들 ‘특수’ 대학(원)이 ‘인력 수급’ ‘학적 권위 부여’ ‘학력 세탁’을 해주고 있는 실정이다.
왜 우리 사회에 무당과 역술인들이 요즘 늘어나고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현재의 한국 사회는 불안한 사회라는 서글픈 반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지금 우리 사회는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노력한 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사회에서는 미신이나 점이 활성화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신에 매달리는 시간과 노력을 오히려 꿈을 이룰 수 있는 건전한 활동에 쏟는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다고 느끼면서 절망하거나 좌절하면 더 이상 노력할 동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힘과는 무관한 ‘팔자’나 ‘운명’으로 돌리는 ‘운명론자’가 된다.
사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미리 알아보려는 노력은 인류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만이 자신의 미래를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래가 자신이 꿈꾸는 대로 펼쳐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또한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매일의 삶은 이런 ‘실존적’ 불안에 대처하는 노력의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부모와의 관계 믿음 잘 형성 땐
어려운 일 닥치면 외부도움 낙관
반대 땐 부정적 정서 지니고 살아
이런 미신적 활동들이 일시적인 위안과 재미를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무당과 미신과 점술이 기승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사회는 노력보다는 ‘운’이나 ‘팔자’에 자신의 삶을 맡기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도박이나 투기도 덩달아 성행한다. 정상적인 방식이나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없는 꿈은 ‘대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는 여러 피해를 남긴다. 우상은 믿으면 믿을수록 나약해지기 때문이다. 우상은 기본적으로 자체적인 힘이 없다. 우상이 힘을 얻으려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 자신의 자산(資産)을 우상에게 바쳐야 한다. 그래야 우상이 힘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힘이 많은 우상을 믿어야 더 안전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의 자산을 더 우상에게 투자하게 된다. 이 결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계속 우상에게 바쳐야 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그리고 자신이 나약해지고 불안해지기 때문에 더욱더 우상에게 의존하고 매달리게 된다. 우상에 빠진 사람의 말로는 비참하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힘을 우상에게 투여하고 마지막에는 생애 초기의 나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퇴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믿을 수 있을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다. 그리고 ‘희망’만이 강한 개인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 2018년은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는 정부, 그리고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