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인지 단순한 농담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후 새로운 대상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현상을 ‘쿨리지 효과’라는 부르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비단 수탉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예를 들면, 수컷 쥐 한 마리는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암컷들과 짝짓기를 한 후 더 이상 짝짓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지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지쳐있던 수컷 쥐는 새로운 암컷 쥐가 등장하자마자 성 기능을 회복하고 짝짓기를 한다. 진화심리학은 이러한 현상을 새로운 상대와 성관계를 하여 최대한 많은 유전자를 남기려는 번식 본능에 의한 것으로 본다.
전 세계적으로 파장 'Me Too'
국내선 한 여검사 폭로로 확산
검사도 속앓이…보복에 공개 꺼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많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의 여파가 한국 사회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 여검사의 폭로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여검사 성추행 파문’은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을 접한 일반인들은 두 가지 면에서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지는 검사도 여성이기 때문에 상관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몇 년 동안 공개하지 못하고 속앓이를 했다는 점이다. 도대체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검사까지도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도 공개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느 누가 보복의 두려움 없이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공개할 수 있을까? 둘째는 한 사회의 정의구현을 상징하는 검찰에서도 그 내부에서는 성추행이나 강간 사건이 일어난다면 도대체 어느 곳에 정의가 살아있으며 안전할 수 있는지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Me Too’에서 공개되는 거의 대부분의 가해자가 남자다. 이 현상을 단지 자기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려는 남자의 성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많은 행동경향성에서 동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과 동물이 크게 다른 점은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고, 교육하고 향유한다는 사실이다. 동물의 숫컷은 자손 번식을 위해 가능하면 많은 암컷과 짝짓기를 한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생물학적인 본능에 충실한 행동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동물은 생물학적 진화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지배받는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기 위해 성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다. 자손번식과는 전혀 상관이 없거나, 또는 자손번식을 억제하면서까지 성관계를 갖는다. 이는 인간의 삶은 단순히 생물학적 본능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문화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동물하고 다른 문화적 영역, 즉 ‘학문’ ‘예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은 문화에 의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정의구현 목표 검찰내서도 성추행
어느 곳에 정의 있나 두려움 가져
동물, 생물학적 진화에 전적 의존
문화를 뜻하는 영어의 ‘culture’는 ‘경작(耕作)하다’ 라는 뜻을 가진 ‘cultivate’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명사형이다. 즉, 문화를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마음밭을 경작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소위 문화를 ‘고급’과 ‘저급’으로 나누는 큰 기준 중의 하나는 즐기기 위해 얼마나 마음의 밭을 경작했는지의 여부이다. 특별한 노력 없이 단지 생물학적인 본능만을 자극하면 저급문화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의미를 이행하고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하는 문화를 ‘고급’이라고 부른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문화이고 대중음악은 저급문화라는 것이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형식을 빌렸지만 저질스런 음악이 얼마든지 있고, 대조적으로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중음악도 고급문화에 속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다.
사회적으로 큰 힘을 가진 인물을 선발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얼마나 문화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문화적 진화는 밈(meme)을 통해 이루어진다. 문화의 전달에도 문화의 복제 역할을 하는 중간 매개물, 곧 중간 숙주가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정보의 단위•양식•유형•요소가 바로 밈이다. 만약 한 조직에서 성추행을 했지만 조직의 문화적 밈에 의해 그런 사람이 계속 요직을 맡는다면 당연히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그 조직의 문화로 계속 진화할 것이다. 이번 여검사의 성추행 사건이 두려운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성추행은 법무부장관을 수행하는 권력자에 의해 저질러졌고, 항의하는 여검사의 목소리는 더 높은 권력에 의해 묵살되었다. 오히려 공개하려는 여검사에게는 직•간접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그리고 여검사의 항변처럼 한직으로 몰리는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문화적 밈이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앞으로도 이런 행위는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요 직책에 대한 인사 선발 제도에서는 마음밭을 얼마나 경작하였으며 얼마나 문화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 교사를 선발하는 임용고사나 판검사를 위시한 고위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도 모두 시험을 통한 것이라 똑같은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에 인격수양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단지 시험성적 하나가 좋았다고 선발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화적 소양을 갖춘 적임자를 선발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갖추어지기 전까지는 이미 선발된 사람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결격 사유가 발생하면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조직에서 추방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추행과 같은 불미스런 행동을 하는 문화적 밈이 조직에 자리 잡을 수 없게 된다. 오히려 문화적 소양과 인품을 갖춘 인물들이 중요시 되는 조직 문화가 정착하여야 한다. 이번 여검사 성추행 사건에서 제일 안타까운 점 중의 하나는 그런 일을 일으킨 당사자가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여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든지 사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형식적 절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사태를 억누르고 무마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이 곳곳에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국에는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권위와 힘을 무터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유효하기보다 지금이 더욱더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