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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은 남녀노소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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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은 남녀노소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것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35회)] 미투 운동의 목표는 성숙한 삶이다

미투(Me too) 운동의 바람이 요원의 불길처럼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거세게 불고 있다. 이 거센 바람의 결과, 우리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고 맑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모두가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은 반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소위 ‘펜스 룰(Pence rule)’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Mike Pence) 미국 부통령이 아내 아닌 여성과는 단 둘이 식사도 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용어다. 여성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을 피해 아예 성희롱이나 성폭력 혐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하고 현명한 처신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기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긴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같이 식사하는 여성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는다면, 또 느꼈다고 해도 지혜롭게 이 욕구를 제어할 수 있다면 구태여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투운동 사회 곳곳서 거센 바람


성숙해지고 맑아지는 계기 돼야


'펜스 룰'도 바람직한 현상 아니야


이성간 끌림은 원초적 활력 제공

‘펜스 룰’이 정답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이성과의 관계를 지극히 미성숙한 방식으로 맺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간의 끌림은 제도나 강압적인 명령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간의 끌림은 삶의 가장 원초적인 활력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삶의 의미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과의 관계를 단절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즐거움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는 성숙한 방법을 가르치고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 아름다운 여성과 추는 단 한 번의 흥겨운 탱고는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한 한 시각장애인 퇴역 장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제공해주었다.이미지 확대보기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여인의 향기’. 아름다운 여성과 추는 단 한 번의 흥겨운 탱고는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한 한 시각장애인 퇴역 장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제공해주었다.

1992년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가 개봉되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 제목이 의미하듯이, 아름다운 여성과 추는 단 한 번의 흥겨운 탱고는 삶을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한 한 시각장애인 퇴역 장교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제공해주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프랭크역을 탁월하게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탄 알 파치노(Al Pacino)는 여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젊은이에게 “그러면 죽은 거야”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모든 이성 관계가 삶에 활력과 의미를 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성간의 끌림은 마치 칼과 같다. 칼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누가 어떤 목적을 위해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칼은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하고 해를 끼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칼을 부엌에서 없앤다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성간의 끌림뿐만 아니라 모든 욕망은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 삶을 파괴하는 원흉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욕망을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숙한 삶을 살 수도 있고, 반면에 미성숙한 삶을 살면서 자신과 이웃에게 큰 고통을 주고 심지어는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욕구를 해결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미성숙한 방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성숙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사용된다. 즉 사용자 자신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욕구를 해결하고 있는지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능적 충동 때문에 생긴 과도한 불안과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무의식적 책략을 사용한다. 이런 책략을 ‘방어기제(防禦機制)’라고 부른다.

이성간 끌림은 마치 칼과 같은 것


칼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어


접촉 차단이 성범죄 예방법 아니다

미성숙한 방어기제 중 자주 사용되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행동화(行動化)’ ‘투사(投射)’ 그리고 ‘반동형성(反動形成)’ 등이 있다. ‘행동화’는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헤아려 행동을 조절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욕구를 해결하는 심리적 기제이다. ‘투사(投射)’는 자신이 느끼는 욕구를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실제로 성적 욕구를 느낀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진정으로 뉘우치지 못한다. ‘반동형성(反動形成)’은 자신이 느끼는 욕구와 오히려 반대로 행동해서 처벌을 피하는 기제이다. 예를 들면, 성적 욕구를 강하게 느끼는 사람이 반대로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학교 정문앞에서 이화여대 음대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을 지지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남녀노소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만드는 쪽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이화여대 학생들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학교 정문앞에서 이화여대 음대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을 지지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투 운동은 남녀노소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만드는 쪽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사진=뉴시스

미성숙과 성숙을 구별하는 첫째 기준은 첫째 욕구 충족을 통해 얼마나 많은 즐거움을 얻는지의 여부이다. 둘째로는 그 방식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지의 여부이다. 성숙한 기제를 사용하면 할수록,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동시에 욕구도 많이 충족시킬 수 있다. 당연히 삶이 즐거워질 수 있다. 반대로 미성숙한 기제를 사용하면 욕구는 별로 충족되지 않으면서 사회적 처벌을 심하게 받게 된다.

이성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 성범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도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되는 이유는 그런 행동의 기저에는 미성숙한 심리적 기제인 ‘행동화’ ‘투사’ 그리고 ‘반동형성’이 다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투사’를 사용하는 사람은, 즉 자신이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상대방이 유혹을 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가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지각하는 사람은 이성과 있을 경우 불안을 느낀다. ‘행동화’ 하는 경우 사회적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반동형성’을 사용하는 것이, 즉 이성과는 만나지 않는 것이 ‘행동화’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욕구를 억압하고 차단하는 것은 심리적인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인의 향기’에서 자살을 말리는 젊은이에게 “나는 어둠속에 살고 있다”고 울부짖는 프랭크의 절규는 욕구를 억압하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자살할 마음을 접게 된 동기는 아름다운 여성과 춤을 추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대라”고 다그치는 그에게 젊은이는 “두 개가 있다”고 알려준다. 하나는 탱고를 잘 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고급 스포츠가인 ‘페라리’를 잘 운전할 수 있다는 것, 즉 욕구를 성숙하게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이 두 이유가 결국 ‘어둠’ 속에서 살던 프랭크를 살린다.

물론 프랭크는 상대 여성에게 정중히 같이 탱고를 출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실수할까봐 주저하는 여성에게 “탱고가 좋은 점은 실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재미있게 설명하면서 춤출 것을 권유한다. 오랫동안 탱고를 추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여성은 프랭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레스토랑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단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추고 싶다는 꿈을 이룬다. 춤이 끝난 후 박수까지 받는다. 그리고는 남자친구와 그 자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떠난다. 욕구를 성숙하게 충족시키는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성숙한 삶의 즐거움이다.

우리에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주는 즐거움은 욕구의 충족에서 온다. 그리고 그 충족은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충족할 때에만 올 수 있다. 그런 성숙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대표적 심리적 기제는 ‘승화(昇華)’이다. 퇴역장교 프랭크는 자신이 젊은 시절 실수한 것을 인정하고 그 실수를 거울삼아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성숙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는다.

‘미투’ 운동이 바라는 것은 남녀노소가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고 함께 어울려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