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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진동하는 '士禍'…유유상종 집단형성 대립‧반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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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진동하는 '士禍'…유유상종 집단형성 대립‧반목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36회)] 어른거리는 ‘사화’와 ‘당쟁’의 환상

중•고등학교 시절 국사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중의 하나는 조선은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다. 이름도 복잡한 파들과 인물들이 서로 경쟁하고 이긴 쪽에서 진 쪽에 대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등 철저하게 보복을 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보복하는 방법도 너무 무자비한 것들이었다. 온몸을 토막내고 칼로 썰어 죽이는 처벌인 ‘능지처참(陵遲處斬)’도 있고, 죽은 사람의 관을 갈라 시체를 꺼내 목을 베는 ‘부관참시(剖棺斬尸)’도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정쟁에서 진 편이 후사를 도모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3족’을 멸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다툼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사화(士禍)’이다. 사화가 지나간 후에는 소위 관료들이 서로 파벌을 이루어 정권을 다투는 ‘붕당정치’가 거세졌다. 이를 ‘당쟁(黨爭)’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방별로 얽혀있는 반목, 학문적으로 대립되는 견해차, 제도에 대한 해석의 차이, 정치적 이념의 차이 등에서 서로 입장을 같이하는 인물들끼리 집단을 형성하여 그에 반대되는 집단과 대립하고 반목한 것이 당쟁이다.

이름도 복잡한 파들과 인물들 사투


이긴 쪽에서 진 쪽에 대해 죽이거나


귀양 보내는 등 철저하게 보복 반복


물론 나중에는 이 모든 것들이 한국의 정치적 전통을 왜곡하고 그 폐단을 과장하여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낮추게 하려는 일제의 치밀하고 간교한 심리전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울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는 마치 한국 사람들에게는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하는 특성이 있는 것처럼 일반화되어 마치 한국인만의 고유한 ‘국민성’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어느 나라나 정치적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당을 만들고, 서로 경쟁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현실화시키려는 세력다툼을 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영국에는 전통적으로 보수당과 노동당이 정권을 잡으려고 경쟁한다. 미국에서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경쟁한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현상을 모두 ‘당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이런 정치적 투쟁의 결과 영국이나 미국이 먕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이념과 목적을 달리하는 정파가 결성되고, 정권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정당정치를 활성화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사람은 단지 ‘내편(內集團)’과 ‘네편(外集團)’으로 나누기만 해도 내편과 상대편을 대하는 태도나 행동이 달라진다. 이런 현상은 편을 가르는 기준이 너무 황당하거나 우연적이라고 해도 나타난다. 일단 나누어지면 여러 특징들이 나타난다. 먼저 ‘내집단 유사성(類似性) 효과’가 나타난다. 즉,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외집단 구성원들보다 서로 더 유사하다고 지각한다. 예를 들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통학하는 학생들보다 더 유사하다고 지각한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제 3자가 볼 때에도 같은 집단에 속해있는 구성원들이 다른 집단원들보다 더욱 유사하다고 지각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부각시키는 경우에는 이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로는 ‘외집단 동질성(同質性) 효과’가 나타난다. 일단 집단으로 나뉘어지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집단원들이 내집단원들보다 성격이나 특징 등이 같다고 지각한다. 즉, “우리는 서로 다른데, 그들은 서로 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외집단원을 각자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 지각하기보다는 동일한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 지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미국인을 보았을 때, ‘Tom’이나 ‘John’으로 구별하여 지각하기보다는 ‘미국인’으로 지각하고 동일한 성향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지방별 얽혀 있는 반목, 학문적 대립


이것들 한국의 정치적 전통 왜곡


일제 치밀하고 간교한 심리전 깨달아


전국의 농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3월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여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범농업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전국의 농민단체 대표들이 지난 3월 27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 모여 '농업적폐청산과 농정대개혁 촉구 범농업계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세 번째 중요한 것은 ‘내집단 선호(選好) 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단 사람들은 한 집단에 속한다고 느끼면, 같은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호감을 가진다. 반대로 다른 편의 집단원들에 대해서는 배타적이고 심지어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같은 편에 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훨씬 높은 평가를 하는 반면에 다른 편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야박한 평가를 한다. 이 효과가 더욱 중요한 것은 두 집단을 나누는 기준이 우연적이거나 사소한 것이라도 이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많은 이익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분배를 해야 하는 경우 내집단원에게 더욱 더 호의적으로 배분할 것은 당연지사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사회정체성(social identity)’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사회적 세상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는 보편적 성향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집단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사회정체성으로부터 긍정적 자기관(自己觀)과 자긍심(自矜心)을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기관은 그들이 얼마나 다른 집단에 비해 자신의 내집단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집단을 선호하고 외집단에 대해 배타적인 현상은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된다.

하지만 어떤 현상이 모든 국가나 사회에서 일어난다고 해도 나타나는 강도(强度)와 양상(樣相)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이는 문화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파벌 간의 경쟁은 그것이 어느 영역에서 일어나든지 관계없이 강도가 세고, 양상이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개인주의’보다 ‘관계중심주의’가 더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런 문화에서는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했을 때 나타나는 심리적 특징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당연히 큰 권력이 달려있는 정치의 영역에서 이 특징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권력은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도 있듯이, 권력을 가진 집단과 뺏긴 집단 간의 처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정권을 잡기 위해 혈연, 지연, 학연, 이념 등의 기준으로 ‘우리편’과 ‘남의편’을 나누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사람은 단지 '내편'과 '네편' 나눠도


상대편 대하는 태도나 행동 달라져


기준 황당하거나 우연적이라도 표출


일단 권력을 잡으면 내집단원들끼리 ‘전리품’을 나누어가지며 그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똑같은 ‘하자(瑕疵)’가 있는 인물에 대한 평가도 내집단인지 외집단인지에 대해 판이하게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혼자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편이면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는 반면, 상대편이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매도한다. 그야말로 ‘우리편이 하면 로맨스’고, ‘남의편이면 불륜’으로 매몰차게 몰아 부친다.

한번 권력을 빼앗기면 그 결과가 얼마나 가혹하게 돌아올 지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하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 동시에 상대편이 재기할 수 없도록 가능한 한 모든 법을 동원하여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노력한다. 현대판 ‘능지처참’과 ‘부관참시’라고 오해를 살 수 있는 정책을 합법적이라는 미명하에 버젓이 시행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거세게 몰아치는 ‘적폐청산’의 바람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영역에서 우리 사회가 비로서 정화(淨化)된다는 반가운 마음과 함께 만세지탄의 느낌이 든다. 당연히 지금까지 관행이라는 이름하에 용인되어 왔던 과거의 잘못은 비록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과감히 청산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혹시 조선시대의 사화나 당쟁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아직도 언론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는 ‘제왕적(帝王的)’이라는 용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다. 재벌 2세들끼리의 경영권 분쟁이 ‘왕자의 난’으로 묘사되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머리로는 21세기 민주주의를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직도 임금이 통치하고 붕당을 만들어 권력을 독점하려고 정쟁을 일삼던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