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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수렁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여론 형성에 큰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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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수렁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여론 형성에 큰 영향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37회)] 인터넷 시민의 덕목

최근 우리나라는 ‘댓글’의 수렁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댓글로 야기된 정치적 파장 때문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전직 국가정보원장이 비밀리에 실행한 ‘댓글조작’ 공작이 드러나 법의 심판을 받았다. 또 현재 여당에 유리하도록 댓글조작을 한 ‘정치브로커’ 때문에 유력한 여당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특히 댓글조작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 ‘여론’을 호도하기 위해 나타나곤 한다. 댓글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정치가 여론에 민감하고 그 여론 형성에 댓글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여당에 유리한 댓글조작 정치브로커로


유력 정치인의 정치생명 백척간두에

댓글은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인터넷 이용자들이 인터넷에 게시된 글에 대해 주고받는 글쓰기문화를 통칭하는 말이다. 특정 사안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수단이다. 특히 ‘지식•정보화 사회’에서는 현실에서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사이버 공간을 통해서도 회원들끼리 또는 불특정 다수의 사용자들 사이에 각종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이 활성화된다. 우리나라는 특히 ‘게시판’이나 ‘댓글’이 활성화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언론의 자유를 일찍 누려온 서구에도 게시판이나 댓글을 통한 의사소통이 우리처럼 활발하지는 않다. 서구에서는 유명 포털에 게시판이나 댓글 기능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다만 포털 본래의 목적에 맞게 정보 검색과 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게시판이나 댓글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게시판이나 댓글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게시판이나 댓글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기능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적으면 활성화될 리가 없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현상을 뒤집어보면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정치적 민감한 상황 '여론' 호도


정보 주고받는 e게시판 활성화


국내 대학에서 문화심리학을 전공하여 석•박사 학위를 딴 후 현재 우리나라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일본인 이누미야 요시유키 교수는 20여년의 한국 생활을 통해 경험한 두 나라의 문화와 두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다룬 『주연들의 나라 한국, 조연들의 나라 일본』이라는 책을 2017년에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문화적 자기관’이란 개념으로 두 나라를 비교•설명하고 있다. ‘문화적 자기관’은 각 문화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전형적인 인간관을 뜻한다. 그는 문화적 자기관을 크게 ‘주체성’과 ‘대상성’으로 구분하였다. 주체성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을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심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조적으로 대상성이 강하다는 것은 스스로를 사회적 영향력을 수용하는 주변적 존재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인의 문화적 자기관은 주체성이 강한 반면, 일본인은 대상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주체성이 강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 확신이 있고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추진력이 있다. 또한 이들은 생기 있고 발랄하고 쾌활하고 외향적이며 사교적이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이, 한국은 많은 사람들이 ‘주연’처럼 사는 주체성 문화이고, 일본은 많은 사람들이 ‘조연’처럼 사는 대상성 문화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댓글 조작 사건 현장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에 '댓글조작'을 규탄하는 피켓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더불어민주당 댓글 조작 사건 현장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에 '댓글조작'을 규탄하는 피켓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주체성이 강한 한국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안에 대해 관심이 많다. 동시에 그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주장이 강하고 또한 그 주장에 대해 확신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시에 자기와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게시판이나 댓글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좋은 통로가 된다.

우리 문화는 위계질서가 강한 수직적 문화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아무리 자신만의 의견을 가지고 있어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갖기 어렵다. 특히 아랫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어느 조직에서건 아랫사람의 의견은 쉽게 묵살당하고 대부분 기회조차 가지기 쉽지 않다. 시시비비를 가릴 필요조차 없이 윗사람의 의견이 당연히 존중되고, 채택된다. 윗사람의 의견은 단순한 의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명령’이나 ‘강요’에 가까운 의미를 가진다.

일부 서구는 댓글기능 아예 없어


포털 목적 맞게 주로 정보검색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랫사람들은 비공식적인 방법을 사용하거나 동년배들끼리의 모임에서나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다. 이런 문화에서 인터넷이 제공해주는 게시판이나 댓글 또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 서비스(SNS)의 등장은 사회 현실이나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비판할 수단이 없던 주체성이 강한 다수에게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고 수직적 위계질서의 틀을 깨고 많은 의견들이 자유스럽게 개진되고 토론을 통해 바람직한 결론으로 유도될 수 있다면 사회와 개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의견이 있다. 그리고 그 의견을 자유스럽게 표현하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욕구가 외부의 강압이나 문화적 특성에 의해 억제가 되는 경우 불만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인 불만은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의 폭발이나 행동으로 이어져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여지가 많아진다. 이런 면에서 ‘댓글’의 긍정적 기능은 앞으로도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게시판 이용자들이 늘어나면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익명성의 뒤에 숨어 게시판을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거나 다른 사람을 음해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특정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작에도 이용되고 있다. 심지어는 상습적으로 남을 헐뜯거나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도 동시에 늘어나고 있다. 댓글문화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댓글문화의 긍정적인 면은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상하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자유스런 분위기가 동시에 활성화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토론은 민주주의의 토대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의 개진은 심한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을 마련해준다. 따라서 온-오프라인(on-off line)을 불문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며 댓글을 다는 인터넷 예의를 가르쳐야 한다. 건전한 비판(批判)과 악의적인 비난(非難)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댓글시대를 살아가는 건전한 인터넷 시민의 덕목이다. 주체적 삶을 살아가려는 한국인의 강하고 활발한 정신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자 위대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