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국립현충원’에안장될 조건으로 전몰군경과 순직군경 및 공상군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국가유공자로 추대되며 그 유족에게는국가가 생활안전과 복지향상을 위하여 그 공헌과 희생의 정도에 따라 연금과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정말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하는것이고, 그 사명을 완수하려다가 안타깝게 목숨을 희생하는 경우, 국가는그들의 공적을 기리고 그 유족까지 보살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어려운 일 당했을 때 경찰이나 군인
찾아가서 상의할 친근한 대상 멀어
지금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빠짐없이 일본인 ‘고등계형사’가 나오고, 일본 형사보다 더욱 잔혹하게 독립군을 찾아나서는 ‘조선인 형사’들이 나온다. 6•25 전쟁의 와중에서, 또 그 이후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경찰에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 전국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그 가족들은채 아물지 못한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후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을 항상 정의의 편에 서기보다는 정권을 지키는 하수인 노릇을 충실하게 해왔다. 지금도 뇌리에 선명한 치안국장의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는어처구니없는 발표는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경찰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 역사가 국가 공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경찰의 존립 목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경찰관집무집행법 제1조 1항에는 “경찰은 국민의자유와 권익의 보호 및 사회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분명히 경찰의 존재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어서 “사회공공의 안녕•질서는 사회의 공동생활이 원활하고 건전하게 유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위해서는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이 보호되는 국가 및 공공단체의조직•시설이 국민의 뜻에 따라서 운영되어야 한다”고 밝히고있다.
과연 현재 이 목적에 따라 경찰이 운용되고 있는지의 여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특히 경찰에 대한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주는 시위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과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시위자들은 “집회는 시민들이 정부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항의하기 위해 여는 것으로, 헌법에도 보장된 시민의 권리”라고주장한다. 이에 반해 경찰은 이를 ‘불법시위’로 규정하고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데 경찰력을 동원한다.
한국, 고맙기보다 두려운 대상으로 여겨
부정적 인식 일제시대 역사도 한몫
최근에는 경찰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오히려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대항하고 심지어는 폭행까지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발생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찰에 폭력으로 맞서는 행동을 마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사태까지 이르렀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다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수 있는 경찰로 태어나기 위해 뼈를 깎는 반성과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무엇보다 경찰이 본연의 임무를 엄정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공권력은 엄정(嚴正)하게집행되어야 한다. ‘엄정’하다는 단어의 정확한 뜻은 “엄하고(嚴) 바르다(正)”는 것이다. 즉 엄정하다는것은 엄하고 바르다는 뜻이다. “엄하다”라는 말의 뜻은 규율이나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매우 철저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규율과 규칙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적용되어야 한다. 동시에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진다고 시민들이 믿을 때에만 극민은 경찰을 믿고 그 인도에 따를 것이다.
엄한 것은 무서운 것과 다르다. 공권력은 폭력을 수반해야 엄하게 되는것이 아니다. 공평하고 정의롭게 공권력이 행사된다면 얼마든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공권력을 집행할 수있다. 그리고 이런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조직이 있다면 이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탄받을 것이다. 반대로 엄하지 못하게 공권력이 행사되고, 그것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힘을 사용한다면 결국 또 다른 폭력을 수반한 저항의 단초가 될 뿐이다.
국민의 생명 재산 지키는 경찰에게
고마움 느끼도록 경찰 권위 세워야
‘바르다’의 원뜻은 ‘말이나 행동 따위가 시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맞는다’는 것이다. 경찰의 권위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공권력의집행이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맞아야 한다. 경찰에 대한 극민의 불신은 그 공권력의 행사가 사리에맞지 않는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공권력이 그 목적에 맞지 않게 국민의 편이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자의사사로운 이익을 지키는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철저히 했다고믿기 때문이다. 시민의 편이라기보다는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판단이 되면 그 순간 경찰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게된다. 시민들이 “경찰을 우습게 본다”고 개탄만 할 일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살펴보아야한다.
국민들도 이제는 경찰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에 사로잡혀 국가 공권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집회와 시위는 합법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공권력은 그 집회와 시위를보호해주어야 한다. 경찰의 목적은 시위를 ‘불법’으로 매도하고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공권력을 믿고 자유스럽게시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시민과 공권력 간의 갈등과 알력을 부추기는 양 극단의 세력이 물러가야 한다.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를 ‘불법’으로규정하고 경찰을 하수인으로 부리려는 불온한 세력은 물러나야 한다. 동시에 공권력에 폭력적으로 대항하는것을 마치 민주화를 앞당기는 ‘의거(義擧)’인 것처럼 부추기는 세력도 물러나야 한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경찰이 ‘주폭(酒暴)’ 소탕에 나서 서울에서만 100일간 주폭 300명을 구속했다. 그러자 덩달아 살인 31%, 강도 37%, 강간 6%가 줄었다. 공권력의 엄정한 행사가 어떤 선순환을 만들어내는지증명한 좋은 사례였다.
경찰은 시위현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의 삶 곳곳에 경찰의보호를 받고 있다. 오늘도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경찰과미아(迷兒)와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일 그늘진 곳에서말없이 값진 땀을 흘리는 경찰이 훨씬 더 많다. 하루빨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수고를 아끼지 않는 경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경찰이 되도록 경찰의 권위를 높이는 일에 나서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