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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조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자 되라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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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 조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자 되라는 것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44회)] 최종현 SK 회장님의 20주기를 맞아

폐암수술을 받은 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이미지 확대보기
폐암수술을 받은 故 최종현 회장(왼쪽 두번째)이 IMF 구제금융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지난 26일은 SK그룹 최종현 선대 회장께서 타계하신 지 20주기를 맞는 날이었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각계 저명인사들이 글 또는 대담을 통해 그분이 한국 경제에 미친 공적을 기렸다. 여러 공적 가운데 교육과 인재양성에 대한 그분의 열정과 혜안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았다. 그 중 백미는 일찍이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시고 수많은 인재를 길러낸 공로다.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의 액수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하버드(Harvard), 예일(Yale), 시카고(Chicago), 스탠포드(Stanford) 등 세계의 명문 사립대학교의 박사 과정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까지 줬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 정도였던 시절에 5년간 3만달러가 넘었다. 더군다나 장학금을 주는 데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조건이 있다면 오직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자가 되라는 것뿐이었다. 그 장학금으로 세계적으로 명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숫자가 올해로 747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교육계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필자 역시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시카고대학교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인격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많이 부족하지만 모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그분이 기대했던 세계적인 학자나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 지금까지 그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 분과 한국고등교육기관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SK 최종현 선대 회장 타계 20주기
저명 인사들 경제에 끼친 공적 기려


필자는 1977년 9월 해외유학 2기 장학생으로 선발되면서 최 회장님과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 후 2년 동안 국내에서 대학원에 다니면서 미국 대학교에 유학할 준비를 도와주었다. 그때는 해외유학이 지금처럼 활발한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학에 대한 정보가 드물었던 시절이다. 그때 재단에서는 해외 유명 대학교에 대한 정보는 물론 이미 외국의 명문대학교 출신의 훌륭한 교수들을 모셔서 고급 강의와 성공적인 유학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물론 이 기간에도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해주었다. 필자는 1979년 9월부터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에 입학하여 1986년 1월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등록금 전액과 생활비를 받으며 원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그분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은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해서도 이어졌다. 1986년 1월에 귀국하여 3월부터 모교인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1년 동안 강사생활을 했다. 그리고 심리학과에서 한 명의 교수를 청빙하는 기회를 얻어 지원을 하게 됐다. 그 때 유력한 지원자가 필자 말고도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과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 분간하기가 어려워 일치된 결과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이때 과 교수님들이 오래 숙의 끝에 내린 고육지책(苦肉之策)이 두 사람이 다 적격이지만 자리는 하나밖에 없으니 두 사람 다 청빙을 유보한다는 것이었다.

장학금으로 박사학위 747명 이르러
교육계 등 다양한 분야서 큰 기여

내심 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교수 생활하는 것을 꿈꾸며 어려운 유학생활을 마친 필자로서는 낙심하며 진로 때문에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미 자녀가 셋이나 있었기 때문에 모교에서 교수를 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강사생활을 할 수는 없는 처지이었기 때문이다. 유학생으로 선발되는 순간부터 유학 기간 동안 마치 친형님처럼 많은 도움을 주신 당시 김재열 사무국장을 뵙고 필자의 형편을 하소연하듯이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김국장님도 예상치 못한 사태가 나오면서 몹시 안타까워했다. 막상 학위를 마치고 귀국해도 적당한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으신 최 회장님께서 또 한 번 파격적인 방안을 제시하셨다. 학교당국자에게 “5년동안 월급을 재단에서 제공할테니 일단 교수로 채용해서 연구와 강의를 하게 하자. 그리고 5년 후에 결과를 가지고 청빙 여부를 결정하자. 만약 자격에 미달된다고 판단된다면 그때는 없던 일로 하자”는 제안을 하셨다. 너무나 예상 밖의 파격적인 제안이어서 필자는 물론이고 재단 운영자들도 놀랐다고 나중에 전해들었다.

결국 대학에서 그 제안을 받아들여 심리학과는 두 명의 교수를 다 청빙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한 지원자는 고려대학교의 교수로 그리고 또 한 지원자는 재단에서 후원을 받는 교수로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필자는 87년 3월부터 모교에서 교수로 봉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결국 필자는 다른 재단 출신 유학생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셈이다.

지금까지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필자의 지극히 사적인 일을 공개하는 이유는 고 최종현 회장님의 교육과 인재양성에 대한 열정과 그 분의 성품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분은 단지 재벌의 회장으로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많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공익사업을 하신 분만이 아니라,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책임져주시려고 노력하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 분은 그만큼 한국고등교육재단과 재단 출신 장학생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

재벌 회장으로 장학금 지급이 아닌
한번 인연 맺으면 끝까지 책임완수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이미지 확대보기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그 후부터 필자는 최 회장님과 여러번의 모임을 통해 그분의 소탈한 성품과 경영철학 등을 배우고 느낄수 있는 경험을 했다. 최 회장님은 재단 출신 학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것을 즐겨하셨다. 대학교나 연구단체 등에서 일하는 재단출신 학자들이 늘어가면서 일 년에 두어 번씩 자택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열어주셨다.

한번은 필자가 왜 재단출신 학자들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시는지 여쭤본 일이 있었다. 그 분은 “내 지위정도에 이르면 주위에 사람은 많이 있지만, 거의 대부분 나에게 무슨 부탁을 하려고 만나자거나 사업상의 이유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너희들은 아무 사심 없이 만나서 최신 연구동향을 배우고 토론할 수 있어서 참 좋다”는 것이었다. 그 분과의 격의 없는 토론은 갓 학위를 마치고 교수 생활을 시작한, 겁이 없었던 젊은 학자들은 항상 큰 도전이고 즐거움이었다. 대기업을 직접 경영하면서 얻은 현실적인 지혜는 이론에만 치우쳐있는 필자에게는 항상 큰 배움의 기회이었다.

필자가 문화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자, “참 중요한 공부를 한다. 우리나라는 모든 학문이 서구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데 그 연구 결과들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려면 잘 맞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의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도외시하고 연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한국의 문화와 실정에 맞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격려해주셨다. 자신이 미국의 경영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더니 기대하고 예상했던 효과가 나지 않았던 사례까지 알려주셨다.

선대 회장님의 인재양성의 유업을 이어 현 회장이 ‘최종현 학술원’을 설립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철없는 젊은 학자들의 패기를 격의 없는 토론으로 승화시키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던 고 최종현 회장님의 모습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최종현 회장님의 20주기를 맞아 고마움뿐만 아니라, 갚을 수 없는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그 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죄송스러운 마음을 아울러 전해드린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