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진(崔秀珍, Choi Soo Jin)은 장교였던 부 최 선, 모 정학옥의 4녀1남 중 막내로 서울 태생이다. 수진은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바다를 끼고 살았다. 모친은 수진을 출산하면서 천식을 얻어 소천 할 때 까지 병원 신세를 졌다. 모친은 어린 딸이 병실에서 춤출 때면 호흡기를 떼고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혼자 집에 둘 수 없었던 어린 수진, 큰언니(한국 최초 여성 디제이)의 뮤직박스를 드나들며 팝송을 외워 불렀다. 지금까지 라이브 음악으로 공연이 가능한 힘은 그때 만들어진 듯하다. 중3 때, 수진의 모친은 타계했다. 시집간 큰언니를 어머니처럼 여기며 어린 5남매는 서로 의지했다.
어린딸 병실서 춤출 때면 즐거워해
큰 언니 뮤직박스 찾아 팝송 외워
라이브 음악 공연 힘 그때 만들어져
수진은 부산 동삼초, 영도여중, 영도여고를 다녔다. 막대한 모친의 병원비는 수진이 무용학원에 다니는 것을 힘들게 했다. 막내 언니의 도움으로 수진은 아버지 몰래 무용학원에 등록했다. 수진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된 학교 무용교사는 "너는 꼭 무용가가 되면 좋겠다"라고 하면서 무용실에서 개인지도를 해주었다. 형편상 무용을 시킬 여력이 없었던 부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니들은 수진의 열정을 존중했다. 꿈꾸던 예고 진학은 무산되었지만 수진은 공부와 무용을 병행했다. 여고시절, 발레에 재능을 보였던 수진은 경성대 남정호 교수의 춤을 보고 현대무용을 전공하리라 결심한다.
수진은 부산하야로비 무용단의 노현정 선생과 입시준비 중 발목이 부러져 첫 입시는 무산된다. 우여곡절 끝에 상경하여 안은미 선생의 연습실에서 새벽연습 중 입시를 사흘 앞두고 계단에 굴러 발목에 금이 갔다. 막내 언니와 병원으로 가던 택시와 트럭이 충돌하여 금이 간 발목은 휙 틀어졌다. 면접은 내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집에 들어섰을 때, 언니들이 힘들게 마련해준 왼쪽 구두는 사라지고 없었다. 부상을 안고, 이대 무용실에 들어섰을 때, 육완순 교수는 "아이고, 학생 얼른 병원에 가서 누워요. 그 다리로 어쩌려구…", 육 교수와의 첫 대면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수진은 혼자 작품을 짜서 재수 끝에 서울예대에 입학했고, 박일규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 부친의 사업은 부도가 나고 모든 가족은 이민을 가게 된다. 박 교수는 이런 형편을 알고 학교 근처 식당에 수진의 밥값을 미리 지불했고, 시간강사 박재근의 도움으로 장애숙 선생의 지도를 받아 3수 끝에 경희대에 입학한다. 1년 후 경희대 학생으로서 수진은 육완순 교수의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 출연했고, 박명숙 교수의 <막달라 마리아>로 무대에 함께 선다. 이후 수많은 공연을 육 선생과 함께 하며 지난 날 깁스를 하고 이대 입시를 본다고 하던 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도 생겼다.
사랑이 넘치는 '가난', 엄마 없이 야윈 막내가 춤추는 것이 안스러운 가족들은 수진의 무용을 반대했다. 가족의 이민, 수진은 혼자 남아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춤을 추었다. 2003년 제9회 죽산국제예술제에 출품한 <적, RED>은 자신의 인생의 향방을 잡아준 나침반이었다. 영화감독 김태용, 민규동과 공연작업단 '심심'을 창단, 라이브 음악, 무대미술, 춤, 영상과의 협연이 지속되었다. 현대음악가 박영란 교수와 국제음악제에 출품한 <Mind Game>은 요코하마 댄스 콜렉션 'R'의 세계 2위 수상작이 되었다. 나막신을 신고 춤춘 경험은 음악이 곧 춤으로 확장되는 시작이었다.
수진은 살아가면서 입시 해프닝 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면서 경희대에서 무용학 석사, 공연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슬로베니아 천재 연출가 토마스 판두르의 <단테 신곡>, 월리엄 포사이드의 <헤테로토피아>가 그녀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세월 따라 이민 간 가족들도 자리를 잡았고, 홀로 남아 미친 듯 춤추고 달려가던 수진은 휴식이 필요했다. 연극 <관객모독>을 마치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 San Diego Dance Theater, Malashock Dance Company 객원단원으로 수많은 곳에서 공연을 했다.
영상감독 김태은과 공동작업한 <The Four Seasons, 사계>는 미술관 공연의 서막이었고, 일민미술관에서 전시기획전 <집>으로 동아미술상을 수상했다. 또 하나의 자신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윤석화와 함께한 <Queen‘s Night, 퀸즈 나잇>, 퀸의 음악을 주제로 5인의 작곡가, 미술가, 시인, 무용가가 함께 하는 라이브 공연이었다. 수진은 만일 이 자리에서 아기를 낳는다면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경험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출산을 3일 앞두고, 춤을 추었다. 춤출 때만큼은 아기도 뱃속에서 아주 편안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다행히 아기는 착하게 공연 닷새 뒤에 태어났다.
■혼자 작품 짜서 서울예대 입학
부친사업 부도로 모든 가족은 이민
박일규 교수가 식당서 밥값 지불
장애숙 지도 3수 끝 경희대에 입학
1년 후 육완순 교수 작품에 출연
젊은 예술가 선정 멀티미디어와의 접목 Queen‘s Night <Love of My Life> 안무 및 출연(2005), 서울현대무용단 정기공연 <Mind Game 2> 안무 및 출연(2007), 영화 <엔티크> 안무감독, 감독 민규동, 제작 수 필름(2007), Sidance <The Code> 안무 및 출연(2008), Yokohama Dance Collection 'R' 초청공연- <사계+1>(2009), 연극열전3 <에쿠우스>안무, 연출 조재현(2009), <The Space Season l> 총연출, 예술감독 박명숙(2014), <The Road Home> 안세은 개인전 총연출 및 안무 출연(2017), <다시, 봄, The Way fo seeing> 연출 및 안무, 출연(2018), <단지 조금 이상한> 연출 및 안무, 출연(2018)을 최수진은 자신의 작품연보에서 우선순위에 둔다.
수진과 타 장르 친구들과 작업은 계속 되었다. 그것을 수진은 '공연', 연극계에선 '들리는 미술', 미술계에선 '보이는 음악'이라고 했다. 무용과 타 장르와의 결합은 한동안 무용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럴수록 음악회 연출 기회는 많아졌고, 국민대 음대 사제동행 세미나의 강사로서 오케스트라 60인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강의 해나가기도 했다. 수진의 작업을 존중해주는 남편과 아이 포함, 해금 김준희(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악장), 박사동기 바리톤 오세민, 미술가 안세은, 영화음악가 이동준, 작곡가 이지혜, 기타리스트 배장흠, 작곡가 박영란은 매일 머리를 맞대는 예술가들이다.
'떠나고 보고 듣고 날아다니다 오라'는 박명숙 교수의 가르침대로 수진은 닥치는 대로 출연, 안무, 조연출, 조안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진은 연극연출가 이성렬, 기국서, 김아라와 연을 맺어 지금까지 극단 76의 상임안무와 공동연출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박재근은 운영하던 아카데미에서 수진이 연습을 그냥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안무가 장애숙은 수진의 부친 허락을 받아 수진을 몇 년간 장애숙의 연습실에서 살게 했다. 그녀는 수진의 대학원 입학금을 대출을 받아 내주기도 했다. 죽도록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 수 밖에 없었던 수진은 엄청난 레슨 알바 강사가 되어 있었다.
수진의 작품 성격 구축은 박명숙의 <에미>, <유랑>에서 시작되어 열 명의 시인들과 라이브 연주를 곁들이고 박호빈은 물에서 수진은 다리위에서 듀엣으로 공연한 김아라 연출의 원효대교 한강수상무대에서 펼쳐진 <노래하라 한강아>와 앙코르와트 사원을 배경으로 팔십 여명의 캄보디아 승려의 계송, 최종범의 앙코르와트 사원 맵핑, 이자람의 소리 속에서 춤추었던 경주 앙코르 세계문화엑스포 폐막작 <만다라의 노래>이다. 최수진은 그동안의 출연을 원동력으로 삼아 예술나눔 학교에서 장애와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예술나눔과 치매노인 예방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수많은 연극・뮤지컬 작업들을 통해 만난 소중한 예술가 친구들과 매일 즐거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는 최수진은 그래도 '참 잘 살았다'라고 자신에게 칭찬 한마디 해주고 싶다고 한다. 육개월 간 한 푼도 없이 지냈던 시절에도 춤은 멈추지 않았고, 함께 출연하던 친구들은 또 굶냐며 다이어트 병 걸렸다고 삐죽이기도 했지만 수진은 그 때도 슬퍼하지 않았다. 수진은 무용실에서 뒹굴며 그 추운 탈의실에서 잠을 잘 때에도 행복해 했다. 이제 따스한 물로 샤워 하고 연습으로 지친 몸을 누이며, 그 때 그 겨울 차디찬 물로 세수하며 버티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한류스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앞으로는 '정말 잘했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으며 국격을 높이는 스타가 되길 바란다.
장석용(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