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직접 살해까지 하는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의 학대와 지나친 폭행으로 한평생 마음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50대의 한 아버지가 상담을 받았다. 상담을 받게 된 이유는 자신의 행동에서 전혀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는 부인의 언질을 듣고 크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까지 극언을 했다.
아버지는 매일 술만 마시면 어머니 폭행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었다. 간밤에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이 세상을 등지기 전에 금쪽같은 자식을 한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한밤중에 골방으로 찾아와 울면서 자녀의 등을 두드리며 재워주셨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내담자는 이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오열(嗚咽)을 했다. 마치 그 날로 돌아간 것처럼 “엄마”를 부르며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 그리고는 마치 딴 사람이 된 듯이 험상궂은 얼굴을 하며 “그날부터 오늘까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아직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다”라며 거칠게 말했다.
그는 요즘 부인으로부터 자녀를 대하는 모습이 꼭 아버지를 닮아간다는 소리를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도 죽이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자신이 자녀들을 대한다는 소리는 “마치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로 들렸다”고 치를 떨면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제발 도와달라”고 너무나 간절히 매달렸다. 여러 차례의 상담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상당한 정도로 풀은 내담자는 “이제는 살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안도(安堵)의 숨을 쉬었다.
한 젊은 남성이 자신도 억제할 수 없이 부인에게 욕을 하는 바람에 이혼의 위기에 몰려 상담을 받았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부인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부인이 밉다거나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별것도 아닌 것을 트집 잡아 욕을 했다. 그리고는 곧 후회를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부인이 이혼을 하든지 상담을 받든지 선택을 하라고 강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상담을 받게 되었다. 그는 부인을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부인에게 욕을 한다면서 그 이유를 알려달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부인을 사랑하고 있어서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이 내담자의 어머니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후 시도 때도 없이 어린 아들에게 욕을 해대고 때렸다. 집 나간 남편에게 쌓인 분노를 아들을 욕하고 때리면서 풀었다. 이유 없이 욕먹고 매 맞는 것이 억울해서 대들면 어머니는 “말 안 들으면 나도 아빠처럼 집 나갈거야”라고 소리치면서 더 때렸다.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던 내담자는 그 이후에는 대들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어머니의 욕과 매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상담을 깊게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현재 부인에게 하고 있는 욕은 어렸을 때 사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욕하고 때렸던 어머니의 대한 분노가 전위(轉位)된 것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즉, 이 내담자는 실상 부인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밤에 극약 마시고 스스로 목숨 끊어
상담자 가족 사연 이야기하면서 오열
상담을 하다보면 이처럼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를 한평생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부부간의 불화나 자녀폭행의 원인은 사실상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다. 스스로는 어른이 되어 어렸을 적의 상처를 잊어버렸다고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만 막상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녀에 대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대물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와는 반대로 어렸을 때 부모에게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라면 성장하면 성인이 된 후에 비록 어려운 형편에 놓일 지라도 희망(希望)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믿음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례한다. 어렸을 때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나는 어린이는 자긍심(自矜心)이 높고,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신뢰를 키우게 된다. 이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당연히 배우자와의 관계가 좋을 뿐만 아니라, 자녀도 사랑할 수 있다.
포유류(哺乳類) 중에서 제일 취약한 상태로 태어나는 어린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생존여부가 판가름 난다. 부모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는 어린이는 신체만 커질 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자세와 대인관계를 맺는 양식(樣式)을 발달시킨다. 특히 부모와의 관계는 이후 전생애에 걸친 대인관계의 패턴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화 이기지 못하고 부인에 욕설 이혼 위기
사실은 부인 욕하는 것 아닌 母에 욕설
최근의 종교심리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부모에 대한 이미지는 절대자에 대한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한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는 ‘부모되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는지 염려가 된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면 자연스럽게 자녀가 태어나고, 자녀가 태어나면 당연히 부모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는 결혼하면 자녀가 태어난다. 하지만 생물학적 부모뿐만 아니라, 심리적 부모가 되는 것은 생물학적 부모가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요즘에는 초·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바람직한 성교육에는 단지 성과 임신 등 생물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보살핌과 같은 심리적인 측면도 포함된다. 하지만 더 나아가 ‘부모됨’에 대한 교육도 시급히 포함되어야 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부모만이 아니라 바람직한 심리적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교육이 현재로서는 전무한 형편이다. 가장 무기력한 상태로 태어나지만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오랫동안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모됨’은 개인과 가족뿐만 아니라 한 사회의 흥망성쇠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성인이 되어 종교단체나 사회단체에서 시행하는 ‘부모교육’ 프로그림은 너무 늦을 뿐만 아니라, 교육대상도 너무 한정되어 있다. 더 늦기 전에 학교에서 공식적인 과목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부모가 될 수 없는 미성숙한 성인이 저지르는 계산할 수도 없는 ‘잘못된 부모됨’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