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업계와 신라젠에 따르면 지난 2일 미국 내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Independent Data Monitoring Commitee, 이하 DMC)는 신라젠의 항암제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간암 환자 대상 3상 임상시험(PHOCUS) 중단을 권고했다.
그러나 신라젠은 지난 4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펙사벡의 임상시험 종료 사실을 알렸다. 이달 2일 DMC가 무용성 평가에서 펙사벡의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아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고 내용을 공시한 후 이 자리에서 회사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다만 신라젠은 앞으로 펙사벡을 활용한 다양한 임상연구를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표적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신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미국 리제네론사의 면역항암제 '리브타요'와 펙사벡을 함께 투여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또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아스트라제네카사의 면역항암제 '임핀지'와 펙사벡의 병용 투여 임상연구도 진행 중이다. 유방암이 간으로 전이된 환자를 대상으로 펙사벡과 미국 머크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를 동시에 투여하는 임상시험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지난 6년에 걸친 신약개발 과정에서 국내외 임상시험 진행 노하우와 글로벌 규제 당국에 대한 대응력을 확보했다. 펙사벡의 항암 능력에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는 만큼 현재 진행 중이거나 진행하게 될 여러 임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시밭길이 예고된 상황이다. 신라젠은 창립 이후 최대 위기 속에서 회사 가치가 하락한 동시에 임상시험 실패로 시장에서의 신뢰까지 회복해야 하는 등 녹록치 않은 행보를 걸어야 한다.
먼저 지난 2일 신라젠은 주식 시장에서 가격제한폭(29.97%)까지 하락한 3만1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2017년 11월 24일 기록한 최고가(15만2300원) 대비 79.51% 떨어진 수치로 이날 하루 만에 신라젠의 시가총액은 9400억 원 이상 줄었다. 주식 시장이 다시 열리는 5일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신라젠이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에 개최한 기자간담회가 펙사벡의 무용성 평가 결과를 보충 설명하기 위한 자리라고 하지만 5일 발생할 주가 하락을 최대한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무용성 평가 결과를 문 대표와 회사가 먼저 알고 있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원칙을 정확히 지켰다고 강조하고 주주들이 요구하는 지분 매입도 고려하고 있다지만 문 대표는 2017년 말부터 지난해 초까지 총 1325억 원의 주식을 팔아치웠다. 기자간담회에서도 문 대표는 한쪽 렌즈가 어두운 색의 안경을 쓰고 모습을 드러내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와 함께 이번 임상시험 실패로 신라젠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자신하던 임상시험에서 실패한 점에 더해 병용요법에서의 연구 중단으로 나머지 임상시험에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아졌다. 아울러 현재 신라젠이 진행하는 임상시험 모두가 1~2상에 머물러 있어 투자가 계속돼야 하고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다는 점 역시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 신라젠은 현재 펙사벡 이외의 파이프라인이 전무한 상태다.
힌 업계 관계자는 "펙사벡 임상시험 실패로 신라젠이 위기에 빠졌다. 회사 가치가 하락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파이프라인이나 임상연구가 부족해 당분간 어려움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황재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soul3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