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엽(林鍾燁, Rim, Jongyeop)은 임대규(부), 배옥순(모)의 4남 중 차남으로 임인년 삼월 열흘(음력) 진안 율현에서 출생했다. 그는 꽃잔치로 흥겨운 밤나무골에서 백화초교와 안천중을 거쳐 전주 해성고교를 마친다. 그에게 전주는 포근한 둥지였지만 율현과는 다른 분위기의 격식과 강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사연이 있는 서울 유학은 추계예대로 정해졌다. 무엇에 여과시키고 담가도 그의 심성은 수려한 고향의 자연과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닮아있다.
팔만대장경 경판 시적표현 느낌 공유
고2 때, 종엽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경판에서 “인생은 화가가 그리는 열매와 같다.”라는 계시적 표현에 느낌을 공유하게 되었고, 일생의 화두가 된다. 그는 여러 열매 가운데 사과를 통해 그 가치적 의미를 깨닫고자 했다. 그러면서 점점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고, 그림이 '붓에 의해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 또 다른 언어에 의해 가슴과 내면의 이야기를 화폭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 그림이라는 결론을 얻고 나서, 본격적으로 그림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다.
임종엽은 주변의 문화적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동기를 부여받아 창작에 임하게 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사색하기를 좋아해서 철학적 사유와 시를 좋아하는 화가의 삶과 작가정신은 이른 청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온다. 계절을 두고 산내들에 피는 무수한 꽃들과 새를 불어오는 나무들과 잔잔한 개울은 마음속 시인을 만들고, 푸른 하늘은 꿈을 키울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임종엽화(畵)는 존재론적 사고와 우주의 변화에 대한 사유의 산물로서 단순하지만, 복잡성의 변화가 역동성을 띠며, 평면 속에서 공간적 시지각이 뛰어나며 그의 조형 감각은 작은 먼지가 균형을 깨뜨리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고 예리하다. 철학적 몽상이 드러나기도, 숨겨지기도 하면서 창조적 형상의 그의 그림들은 작품마다 천 번 이상을 쌓아 올라가는 동안 칠을 올릴 때마다 고뇌와 갈등, 희열을 느끼면서 작업하는 수행자의 의지와 정성과 비슷하다.
임종엽화(畵)의 소재와 구도는 매우 다순하다. 하늘과 땅, 들숨과 날숨, 열림과 닫힘, 확장과 수렴에서 파생되는 일상의 것들과 자연 접합적 음양적 사고의 것들을 소재로 삼고, 상생과 상극에 의한 변화와 조화를 화폭에 담는다. 여백을 최대한 확장 시키면서도 밀도와 깊이감이 느껴지게 하는 것도 그의 조형 능력이다. 그의 탁월한 절대적·상대적 감각에서 빚어지는 그림의 색채와 조형은 가장 단조롭게 활용되면서도 풍부한 톤으로 임종엽만의 그림 빛깔을 소지한다.
존재론적 사고와 우주의 변화에 대한
사유산물로 복잡성 변화 역동성 뚜렷
임종엽도 오랫동안 다양한 장르의 책들과 씨름하고 고전미술에서 가장 한국적인 그림 작업을 찾으면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우연히 라디오의 판소리 해설에서 '우리 소리의 특징은 호흡'이라고 하는 데서 단서를 찾게 되었다. 호흡 가운데서도 들숨과 날숨 사이에 추임새가 곁들여지는 맛, '숨과 숨 사이의 여백이나 그 경계'에서 가장 고요하거나 가장 강한 에너지가 표출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 자신의 미술 창작 활동의 실마리를 풀 수 있었다.
임종엽은 자신의 의도를 최대한 감추려고 애쓰는 작가이지만 그럴수록 그의 작의는 또렷하게 노출된다. 배타적이기도 하며 포용하려는 넓은 여백 그리고 깊게 절제된 형상들이 확산과 환원의 작용을 반복하면서 관람자의 마음마저 품게 하는 것이 임종엽 작품의 특징이다. 작가가 제일 아끼는 작품은 영겁으로 가는 역동성의 원천에 관한 미학적 사유에 관한 원초적 질문에 해당하는 2014년 작 <쉿-132>(130.3 X 97.0, Oil, Gwasyu, Gesso on Canvas) 이다.
임종엽은 나무화랑에서 첫 개인전(1999.5.1.~31.)을 연 뒤 지난해 갤러리 모어에서 제11회 개인전(2019.10.1.~10.31.)을 연 서양화가로서 새 밀레니엄으로부터 따지면 2019년까지 개인전 8회와 단체전 및 교류전 39회 및 중국 국제미술잔치 대상작가상(2019.11.11.)전을 기록하고 있다. 임종엽은 제38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미술 부문 주목할예술가상(2018.12.6.)과 중국 국제미술잔치 대상작가상과 청각장애인 미술대전 심사위원(2018.8.13.)등을 역임했다.
성찰과 시 좋아하는 작가정신 이어와
수행과 같은 섬세하고 예리한 붓터치
임종엽, 자기 일에 좀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하며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서양화가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임종엽화(畵)에는 상반되는 개념과 변화의 세계가 병존한다. 작가는 건강한 생명력을 위해 굳어진 안정·질서·균형보다는 혼돈과 질서와의 관계성을 조건을 달지 않고 화폭에 담는다. 그는 관람객들이 무제적 느낌으로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고 즐기기를 늘 기원한다.
임종엽,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바위처럼 서 있어야 했다. 작업한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고 언제나 낯선 사람으로 살아와야 했다. 그러면서도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작업은 계속해야만 했다. 그 외로움이 가장 마음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끈질긴 자신과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의 방황 속에서도 작품이 한 점 한 점 쌓이는 것이 한편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지만, 임종엽은 점점 작은 섬이 되어가고 있었다.
임종엽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주목할 작가상’을 받으면서 다시 부각 되었고, 국제미술제전 대상작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임종엽은 비로소 세상에 한발을 더 내디디며 미래의 한류 작가(K-Artist)로 다시 태어났다. 오랜 외로움의 침전된 무거움이 지금은 작품 속에서 내밀한 굴절을 하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임종엽은 모든 사랑하는 분들에게 끝없는 미안함과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어 한다. 대장정에 건투를 빈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