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몽돌의 울림을 찾아가는 새벽 산책자처럼 ‘생각’(Think)을 주제로 화작(畵作)을 해왔다. 자연을 날줄로 삼고, 유년의 추억을 씨줄로 써서 생각의 베틀에 그림을 담는다. 기본 시제가 공존하며 공유된다. ‘생각’은 배양되어 늦가을 어스름 같은 풍광을 잉태했다. 작가의 그림들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안개 낀 부두의 옆모습이거나 미얀마 강가의 새색시가 물길러 갈 때의 수줍음이 겹겹이 쌓여 세련된 문명의 한가운데의 빛나는 쪽빛으로 서 있다. 그의 그림들은 이야기가 있는 현존하는 빛나는 과거의 모습이며 동시에 찬란한 미래의 한 자락을 차지한다.
이야기 있는 현존하는 빛나는 과거 모습
상상과 현실에 걸친 실루엣 같은 형상이나 상황에 대한 남다른 기억은 풍경 채집가 서양화가 박진우에게 포획되어 생동하는 그림이 된다. 그는 1996년 제1회 대전에서 ‘해바라기가 있는 정물’로 개인전을 가진 뒤 다가오는 12월 60회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400여 회의 단체전·기획전에 참가,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2019, 국회의사당), 오늘의 우수작가상(2016, 경향신문사) 등을 수상했다. ‘생각’(Think)의 작가 박진우는 일생의 삶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으며 자신을 성찰한다.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그림 곳곳에 스며든다.
흐린 기억 속의 김암기, 중학교 미술 교사 김병고는 대화가가 될 어린 박진우를 노련하게 조련시킨 스승이었다. 승달산 아래 정을 시리게 기억하는 미술학도 박진우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소묘·드로잉(구상)·수채화(유화) 작업에 집중했다. 기본기에 충실해야만 예술가로서 생존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진우는 구상 수채화로 작가적 틀을 놓고, 먹과 아크릴 등을 사용하여 의자, 매화 시리즈 등을 발표하면서 ‘잃어버린 시간들’을 변주한다. ‘Think(생각)’시리즈로 넘어오면서 박진우는 자신의 과거를 소환하고 이야기 전개는 예술로 승화된다.
'생각'은 배양돼 어스름 같은 풍광 잉태
박진우의 화작은 구상시대(1996〜2001), 도약시대(2002〜2009), 활황시대(2010〜)로 크게 나뉜다. 그는 최근 10여 년간 원색 구사와 보색의 대비 속에서 중간 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서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2015년부터 본격 창작된 매화와 의자 등에 걸친 ‘Think(생각)’시리즈에서 상징성이 구체화 된다. 의자를 통한 과거 회상과 미래 설계의 복합이미지 구축 같은 것이다. 구상시대는 수채물감의 번짐과 퍼짐을 이용한 사물의 재현과 일상을 실루엣 및 명암으로 처리하는 기량을 보였고, 활황시대에서는 장르적 경계를 허물며 비약적 발전을 지속한다.
예술에 대한 사유의 폭이 깊고 넓어지면서 도약시대에 발아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의 상상력은 확장되고, 활황시대를 맞아 ‘생각(Think)’ 시리즈는 본격화된다. 내용은 상상이 번뜩이며 변주를 거듭한다. 미래의 일상이 도입되기도 하고, 꽃병과 비정형 질그릇에 새로운 ‘Think(생각)’가 담긴다. 기억 속의 순수는 목월의 서정과 맥을 같이 한다. 도플러를 떠올리며 중첩되는 작가의 울림은 영상과 입체작업을 넘어가고 있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는 예술가라면 가족과 이웃을 배려하고 지구촌 친구들도 챙기면서 연민과 사랑이라는 무기를 잘 다룬다.
작가 박진우는 마포미술협회 회장이다. 앞으로도 자유롭게 볼륨을 높여 상상의 나래를 펴가며 화작의 즐거움을 지속해서 누리기를 기원한다. 눈감고 두 손 모아 ‘화(和)’를 위한 론도 사중주를 듣다 보면 먼데 바다가 춤추고, 갈매기 소리가 ‘생의 찬가’를 불러올 것이다. 아님, 무안일로 저수지 방죽에 가득 핀 연꽃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시골에서 자란 예술가들은 고시 1차에 합격한 사람들이나 다름없다. 앞으로도 서양화가 박진우는 거문고로 가야금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독창적 창작품으로 세상 사람들을 활기차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
장석용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