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번 디스토피아 상황에 빠져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그린 궁극의 장르로 여겨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계 영화 10개 작품을 소개한다. 모두 문명이 붕괴해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영화이며, 그려지는 방법이나 원인도 여러 가지. 물론 픽션이고, 종말 세계는 지나친 발상이긴 하지만, 거기서 펼쳐지는 인간의 모양새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지도 모른다.

■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
‘소리를 내면 곧바로 죽는다’라고 하는 설정으로 스매시 히트를 기록한 호러. 소리에 반응해 인간을 덮치는 ‘무엇’인가에 의해서 인간이 사멸한 세계에서 사는 일가가 그려진다. 우주에서 날아온 예민한 청각을 가진 수수께끼의 괴물인데, 소리를 내면 바로 찾아와 죽임을 당하기 때문에 영화 전편이 정적에 싸여 있다. 그런 가운데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보는 이들도 어느새 숨을 죽이고 만다. 이 작품의 속편이 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2021년 공개될 예정이다. 일가 이외의 생존자가 등장하는 등의 전개도 있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 ‘28일 후’(2002)
대니 보일 감독의 SF 호러 영화. 인간의 이성을 파괴하고 흉포화시키는 바이러스의 만연으로 무너진 런던이 무대다. 지금은 눈에 익은 감이 있는 ‘달리는 좀비(감염자)’를 일반적으로 한 작품이며, 선수급의 전력 질주로 뒤쫓아 오는 감염자의 임팩트도 강렬하지만, 눈을 뜨니 아무도 없는 병원에 있고, 거리가 고스트 타운이 되어 있다...라는 도입이 인상적. 일부 인간이 해외로 탈출했다가 낙오돼 망연자실한 자들의 절망, 라디오 방송의 호소로 생존자를 모은 군인의 배신 등 혼돈스러운 무법 상태의 묘사 등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으로서의 처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속편인 ‘28주 후’(2007)에서는 감염이 유럽 대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 ‘나는 전설이다’(2007)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I Am Legend’의 세 번째 영화화 작품. 소설은 좀비 영화의 창시자인 조지 A. 로메로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지만 엄밀하게는 흡혈귀이고 본작에 등장하는 것도 이른바 좀비가 아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바이러스화되며 그 만연으로 인류의 90%가 사멸된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은 과학자 네빌(윌 스미스)의 전투를 그린다. 초반 황폐한 아무도 없는 뉴욕의 비주얼은 압권이었고, 썩은 자동차 행렬, 빽빽하게 뻗은 잡초, 야생화하고 뛰어다니는 동물들 등은 진짜 뉴욕에서 촬영했기에 내놓을 수 있는 박진감이 넘친다. 시대 설정이 공개 당시로부터 멀지 않은(5년 후)이기도 해 익숙한 일상 풍경이 망가져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강하게 느껴진다.

■ ‘워터월드’(1995)
최근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의 어트랙션으로서 인지되고 있는 인상이 강한 케빈 코스너 주연의 SF초대작. 지구 온난화에 의해 해면이 상승해, 육지가 없어져 버린 세계에서 유일한 육지 ‘드라이 랜드’를 목표로 하는 인간들이 그려진다. 1억7,500만 달러(약 1,900억5,000만 원)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고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바다 위에 조성된 인공 암초에서의 생활, 흙이 귀중품으로 거래되면서 ‘물’이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 ‘일라이’(2010)
덴절 워싱턴 주연의 본작에서는 대규모 최종전으로 인해 과거의 사회질서가 붕괴 된 가까운 미래가 무대다. 주인공 워커 일라이는 세상에 단 한 권만 남겨진 책을 들고 여행을 하고 있어 그 책을 노리는 자들과의 싸움이 전개된다. 무너져 가는 고속도로, 길가에 버려진 차 같은 황량한 비주얼은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모든 문화적인 것이 사라져 버린다면?’‘이라는 문명의 가치를 묻는 시각이 독특하다.

■ ’클로버필드 10번지‘(2016)
J. J. 에이브럼스 감독이 제작을 맡은 이색 SF 스릴러 영화. 거대 괴수가 대도시를 습격하는 모습을 다큐멘터리 터치로 그린 ’클로버필드 HAKAISHA‘(2008)와 제목이 같지만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어느 날 약혼녀와 싸우고 집을 뛰쳐나간 여성이 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을 뜨니 수수께끼의 지하실에 감금되어 있고 ‘바깥은 누군가의 공격으로 오염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 대피소로 데려 왔다’는 낯선 남자의 말을 듣는다. 남자의 언행에 불신감을 품은 여자는 어떻게든 밖으로 탈출하려 하지만. 밖은 정말로 오염되어 있는 걸까? 남자는 적인가 아군인가? 하는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부르는 긴박한 전개가 이어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인 세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올 수도 있을까?

■ ‘스노우 피어서’(2013)
‘기생충’(2019)의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를 리메이크 한 첫 영어 작품. 원작은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로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뿌려진 인공 냉각 물질이 원흉이 되어 빙하기를 맞이해, 지표가 눈과 얼음으로 덮여 버린 2031년의 지구가 무대가 되고 있다. 근소하게 살아남은 인류는 영구기구에서 움직이는 한 대의 기차를 타고 생활하고 있지만, 앞칸에서 생활하는 부유층이 부를 독점하고 뒤 칸으로 빈곤층이 밀려나고 있는 것은 바로 격차사회의 축소판이다. 봉준호 감독이 제작 총지휘를 맡은 드라마 시리즈도 넷플릭스를 통해 전송되고 있다.

■ ‘칠드런 오브 맨’(2006)
P.D. 제임스의 디스토피아 소설을 ‘로마’(2018)와 ‘그래비티’(2013)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영화화한 걸작 SF영화. 인류로부터 생식 능력이 없어져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된 2027년의 가까운 미래가 무대. 불법 이민 유입으로 치안이 악화되고 테러가 일상의 일부로 변한 영국의 모습이 비춰진다. 공상과학적이라지만 엉뚱하게 묘사되지 않고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죽음과 절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앞에 두고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진 사람들의 모습이 사실적이다. 문명이 완전히 붕괴된 작품보다 종말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영화의 어둠침침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이런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다.

■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맥스’ 시리즈는 ‘매드맥스 2’부터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으로 북두의 주먹 등 많은 작품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년 만에 시리즈 최신작으로 찍힌 이 작품은 더 비주얼과 액션이 돋보였다. 바탕이 되는 것은 강대국의 전쟁에 의해 문명이 붕괴해 사막화한 세계. 석유가 고갈되고 약탈이 횡행하고 환경오염에 의해 병을 앓은 사람들도 많아 인류의 종착역에 대한 ‘궁극’이 그려져 있다. 어디를 가도 희망은 없다고 여겨지는 메마른 황야의 비주얼은 압도적.

■ ‘반도’(2020)
수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들을 선보였지만, 일본에서 2020년 1월 1일부터 개봉하는 새 영화 ‘반도’도 그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전작 ‘부산행’(2016)에서는 미지의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일으킨 사태의 초기를 그렸지만, 이 작품의 무대는 그 4년 후로 봉쇄되어 버려진 ‘반도’는 황폐해진 완전히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가 되어 있다. 그런 감염자가 거리에 넘치는 위험 지대에, 전직 군인인 주인공이 잠입해 큰돈이 실린 트럭을 회수하는 임무에 도전한다. 과거의 좀비 영화나 앞서 언급한 ‘매드 맥스’ 그리고 ‘AKIRA’ ‘드래곤 헤드’라는 일본의 만화로부터도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영상을 꼭 극장에서 봐 주었으면 한다.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