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반발에 부딪히며 발목 잡힌 현대백화점의 인적분할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지주사 전환이 무산됐다. 현대백화점이 향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전환 재추진 계획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면서 지주사의 꿈이 무산된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으나 현대백화점이 쓸 수 있는 남은 카드에 이목이 집중된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의 지주사 전환을 위한 인적분할 부결은 예상 밖의 결과라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안건은 참석 주주의 66.7%의 동의가 필요했는데, 표결에서 반대표가 35% 이상 나오면서 부결 처리됐다. 실제로 부결을 예단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백화점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6%로 어느 정도의 표만 나오면 무난하게 가결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주주들의 반대표는 예상했으나, 이정도 일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시장과 업계에서는 인적분할 실패 요인을 ‘한무쇼핑’에서 찾았다. 현대백화점은 한무쇼핑을 지주사 산하로 편재하는 내용의 인적분할안을 제시했는데, 주주들이 이 부분에 크게 반발했다는 분석이다.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과 무역협의 합작법인인 무역점, 킨텍스점, 충청점, 목동점, 남양주아울렛, 김포아울렛 등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다. 2021년 기준 영업현금흐름이 2100억원에 달할 정도로 현금창출력 또한 우량하다. 소액주주 입장에선, 수익창출 효과가 큰 알짜배기 계열사를 백화점이 아닌 지주회사 밑에 두겠다고 하니 현대백화점의 경쟁력과 사업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즉, 한무쇼핑을 지주사에 올리는 것은 대주주에게 유리한 구조일 뿐 주주들에게 친화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에 현대백화점은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 정책으로 주주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특히 주주들을 설득하기 위해 현대백화점이 야심차게 발표한 자사주 소각 발표는 효과를 장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주주들에게 외면받았다.
◆주주 반발에도 지주사 전환 성공한 롯데, 현대와 다른점
과거에 현대백화점과 비슷한 수순으로 지주사 전환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5년 전, 롯데도 지주사 전환을 추진했다. 당시 롯데의 지주사 전환은 롯데쇼핑,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등 4개 회사를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각각 분할하고, 그룹 모태인 롯데제과를 중심으로 각 투자부문을 합병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때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롯데 지주사 전환에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컸다. 롯데가 추진 중인 분할합병안은 주주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신동빈 롯데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서다. 이들은 롯데쇼핑의 사업 위험을 나머지 3개사 주주들에게 떠넘긴다고 보고 각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에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그럼에도 롯데는 지주사 출범을 성공시켰다. 비결은 신동빈 회장의 우호지분이 과반 이상을 차지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2017년 8월 말, 지주사 전환을 위한 롯데 임시주주총회에서 예상대로 일부 소액주주들이 반대표를 던졌지만, 국민연금까지 신 회장 편에 들면서 무난하게 승인됐다.
실제 신 회장의 우호 지분은 롯데제과 52.25%, 롯데쇼핑 56.66%, 롯데칠성 50.13%, 롯데푸드 48.2% 등으로 절대적이었다. 여기에 힘을 더 해준 국민연금은 롯데제과 4.03%, 롯데쇼핑 6.07%, 롯데칠성 10.54%, 롯데푸드 12.3%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반면,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현대백화점 지분율은 17.09% 상대적으로 적다. 특수관계인 지분율까지 더해도 36% 선이다. 결코 낮은 지분율은 아니지만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는 부족해 지주사 전환에 장애물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백화점의 남은 카드
갖은 노력에도 주총에서 지주사 전환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아직 현대백화점이 쓸 수 있는 카드는 존재한다. 현대백화점은 이번 주총에서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은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지만 정 회장의 지분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라도 플랜B를 가동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 회장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정 회장이 보유한 지분율은 그룹을 장악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분율을 끌어 올리기 위한 카드로는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현대그린푸드의 지분을 이용하는 방법이 꼽힌다. 정 회장이 가진 현대그린푸드 지분(12.7%)을 처분함으로써 교통정리를 하고 동시에 처분한 주식으로 현대백화점 주식을 획득해 지배력을 공고히할 수 있어서다.
현대그린푸드 종가는 17일 기준 6840원으로 846억원 수준이다. 같은 날 현대백화점 종가는 5만6500원으로 약 150만주를 가량을 획득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 회장의 지분율은 24%까지 올라 지배력이 한층 강화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앞으로 36% 수준의 보유 의결권만으로 소주 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단행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며 “통상적으로 이 정도의 의결권이면 주총 통과가 무리 없이 진행됐으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도출됐다. 소액 주주의 적극적인 권리 찾기 움직임이 힘을 얻고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송수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sy1216@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