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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에 담긴 일상의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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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에 담긴 일상의 단면들

보편의 단어

보편의 단어/ 이기주/ 말글터이미지 확대보기
보편의 단어/ 이기주/ 말글터
요즘같이 봄 내음이 한창일 때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안온하다'이다. ‘조용하고 편안하다’ ‘날씨가 바람이 없고 따뜻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는 수년 전 이기주 작가를 통해서 알게 됐는데, 작가의 신간 ‘보편의 단어’ 안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안온하다'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좋아하는 이유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이다. 모난 구석 없는, ㅇ(이응)과 ㅇ(이응)으로 이루어진 이 단어는 마주할 때마다 유독 마음을 달래주는 느낌이 든다.
이기주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젠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언어의 온도’였다. 일상을 소재로 한 짤막한 이야기들은 어렵지 않게 술술 읽혔지만, 막상 다 읽고 나면 어려운 느낌이 들었다. 생각할 과제가 주어지는 기분이어서 다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여러 번 곱씹은 문장들은 어느새 마음에 저장됐다.

이기주 작가는 ‘책’을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으로 표현한다. 독자들이 이 숲을 산책하듯 천천히 거닐며 음미하기를 추천한다. 올 1월에 선보인 산문집 ‘보편의 단어’를 통해서도 작가는 이를 당부했다. ‘보편의 단어’는 작가의 기존 저서들과는 시작부터 조금 다른 느낌이다. 목차를 살피면 그 책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되는 편인데, 이 책은 그 제목에 걸맞게 ‘일상’, ‘평범’, ‘애증’, ‘위로’, ‘휴식’ 등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61개의 단어로 꽉 차 있다. 평소 누구나 나눌 법한 대화나 상황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일상의 단면을 돌아보게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주제 중 하나는 ‘놀이’이다. 작가는 놀이의 정의를 휘청이는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이야기는 한 TV 예능 프로그램의 입관 체험기로 시작된다. 자신의 묘비에 어떤 문장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남겨진 이들이 나를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문장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묘지에 적힌 문장이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했다면, 요즘에는 인터넷 부고 기사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보통은 생전 업적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영미권의 경우 고인의 삶을 훨씬 다양한 시각으로 조명한다고 한다. 몇 해 전, 미국의 한 교수가 자국 내 언론사의 부고 기사를 분석한 결과 또한 고인이 생전에 즐겼던 취미나 놀이를 언급한 사례가 훨씬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주말마다 친구들을 농구장으로 불러냈던 데이비드, 이젠 천국에서 호쾌한 덩크슛을 터뜨리기를!”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놀이는 생존보다는 휴식의 역할에 가깝다. 아무 목적성 없이 즐기는 유희적 활동은 지친 삶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아닐지, 작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독자들에게 생각의 숲을 내준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사람들은 어떤 문장으로 당신의 죽음을 세상에 알릴까? 남아있는 이들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라고 말이다.

이처럼 ‘보편의 단어’는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단어들을 단순히 상기시켜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단어들에 잠시 기대어 쉬며 나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차분하고 단정한 작가의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김다영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