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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2024년에 마주한 ‘소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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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의 여유] 2024년에 마주한 ‘소년이 온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이미지 확대보기
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
지난 10월 10일 저녁, 온 세상이 환호로 가득 찼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벨문학상 최초 수상은 물론 121년 노벨문학상 역사상 아시아 여성의 수상도 최초였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한강 작가에 대한 관심과 그 인기는 가히 신드롬 수준이었다. 모국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과 자부심이 차올랐다.

노벨문학상은 특정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기에, 한강 작가가 지금까지 세상에 내놓은 모든 작품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 2016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채식주의자’부터 스웨덴 한림원이 수상자 발표와 함께 언급한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그중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그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인 동호가 ‘너’로 등장한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정대는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누나 정미와 함께 동호의 집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동갑내기 친구다. 하지만 동호와 함께 시위대의 행진 도중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쓰러져 죽게 된다.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그 봄에 행방불명되며 남매는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비극을 맞았다.
동호는 매일같이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주검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혔다.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국가의 폭력은 성별, 연령을 구분하지 않았다. 어린 생명들이 무고하게 죽어나갔다. 소설은 동호를 중심으로, 동호와 상무관에서 함께 일했던 형과 누나들의 이야기들로 확장된다.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담당 원고의 검열 문제로 고초를 겪은 ‘김은숙’, 마지막까지 가두방송을 했던 ‘임선주’, 모진 고문과 출소 후 트라우마로 생을 스스로 마감해 버린 ‘김진수’ 등의 이야기를 통해 5·18을 겪은 후 일상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흐트러져 버린 그들의 고통과 무력감을 힘겹게 펼쳐 보인다.

그중에서도 동호에게 전하는 어머니의 마지막 이야기가 가슴을 가장 아리게 했다. 동호도 결국 계엄군의 손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동호를 잃은 그날. 동호를 데리러 상무관까지 갔지만 금방 집으로 가겠다는 동호를 그대로 두고 온 그날. 어머니는 그날을 너무나도 후회했다. 인생의 기쁨이었던 동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동호를 절절하게 그리워한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먹먹한 여운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동호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문재학 열사를 모티프로 했다.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린 한강 작가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많은 독자들 역시 ‘소년이 온다’를 통해 잊고 있던 역사를 다시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국가의 무자비함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살아남았음에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던 이들의 아픈 기억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렇기에 한강 작가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이 우리 모두에게 더욱 의미 깊고 반짝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다영 교보문고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