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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개발 시간·비용 절감 유혹... 보험업계 ‘베끼기’ 만연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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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개발 시간·비용 절감 유혹... 보험업계 ‘베끼기’ 만연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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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보험업계에서 인기 상품이 개발되면 약 4개월 후 해당 상품을 카피해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는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 규제산업 특성상 상품 형태가 한계가 있고 상품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고 있어 리스크 회피를 위해 비슷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최근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이 자동차보험 UI(인터페이스)·UX(사용자경험) 디자인 관련 표절 의혹에 대해 삼성화재에 공식 사과를 요청한 사건은 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6월 3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업계에서 인기 상품을 카피해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는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손보는 최근 삼성화재에 모바일 가입 프로세스를 무단으로 베꼈다며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다.

삼성화재 측은 해외 여행자 보험을 온라인으로 판매한 것은 삼성화재가 최초라며 관련 의혹에 적극 반박하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온라인 가입 화면 디자인 및 가입 프로세스에 대한 카피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있지만 보험업계는 기존에도 상품 베끼기 관행이 만연했다.

보험 상품을 처음부터 직접 개발하려면 개발에 투입되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다. 개발 방향과 소비자들이 원하는 담보만 확인해도 보험사가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크다. 이때문에 보험사 및 경영진은 빠르게 실적을 올리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흔히 다른 회사의 인기상품을 배끼는 '카피캣' 전략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보험백화점이라고 불리는 보험판매 독립대리점(GA)가 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 한 보험판매점이 모든 보험사들의 보험을 다 취급하다보니 보험사들로서도 모든 보험 라인업을 다 구비해 둬야 하는게 트렌드가 됐다는 것. 한 분류의 상품이 어느 보험사에는 있고 어느 보험사에는 없는 경우 문제가 되기 때문에 결국 보험사끼리 서로 보험을 배끼는 관행을 용인한다는 설명이다.

또 보험상품의 자세한 개발 과정이나 구조를 일반 소비자가 알거나 이해하기 어려워 금융상품 카피에 대중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점도 이러한 관행이 계속 유지되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다.

실제로 하나의 상품이나 특약 등이 유행하면 약 4,5개월 후 붕어빵처럼 비슷한 상품이 출시되는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보험사 회계에서 ‘제3보험’과 같은 보장성 보험들이 수익에 유리하게 평가되면서 보험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진 영향으로 이러한 ‘비슷한 보험 출시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화손해보험이 지난해 출시한 여성 특화 보험인 '한화 시그니처 여성 건강보험’이 인기를 끌자 NH농협생명과 신한라이프도 최근 보장 컨셉과 내용이 비슷한 여성 특화 보험인 '핑크케어 NH건강보험’과 '신한건강보장보험 원(ONE)더우먼’을 출시하며 경쟁에 참전했다.

KB손해보험이 업계 최초로 간편보험에 삼텐텐 고지 항목을 추가한 초경증 유병자 대상 보험 ‘KB 3.10.10 슬기로운 간편건강보험’을 출시해 시장의 주목을 받자 다른 손보사들도 이에 대응해 관련 보험이 활발하게 출시 중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현대해상이 똑같은 간편고지 항목을 추가해 ‘간편한 3.10.10’보험을 출시했으며 메리츠화재도 간편보험 '3.10.5'를 출시했다. 모두 초경증 유병자를 대상으로 기존 유병자보다 보험료를 크게 낮춘 초경증 유병자 보험이다.

이전에도 ‘어린이보험’, ‘노인보험’, ‘간병보험’ 등 소위 한 분야의 보험이 히트를 치면 바로 비슷한 상품이 나오는 관행이 계속 이어진 나머지 보험업계서도 이러한 관행에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보험상품 베끼기를 방지하기 위해 배타적사용권(보험소비자를 위한 창의적인 보험상품을 개발한 보험사에 3~12개월 동안 독점 판매 권한을 부여해주는 제도)을 도입했지만 실효성이 낮다는 말이 나온다. 대부분의 경우 배타적사용권을 인정받는 기간이 3~6개월 정도로 짧고 배타적사용권을 신청하려면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 등이 만만치 않아 배타적사용권 획득 가능성이 있어도 보험사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험사가 가진 배타적사용권 기간이 만료되자마자 유사한 상품이 쏟아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업계 상황은 보험사들의 상품 개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과당경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계 상품 베끼기 논란에 대해 “업계에서도 비슷한 컨셉의 유사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전혀 문제를 삼지 않는 분위기”라며 “오히려 벤치마킹한 상품을 과당경쟁해 지나치게 보장금액을 올린다던가 보험료를 낮춘다던가 하는 부분이 문제가 된다”고 답했다.


김다정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2426w@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