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리 삼천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싸워 싸워 싸우러 가자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
매일 아침 6시 25분, 세종국제고 기숙사인 집현관에 울리는 이 노래는 독립군이 즐겨 불렀던 <독립군가>다.
고등학교 기숙사에 웬 <독립군가>? 이 곡은 올해부터 사감부를 맡은 한국사 선생님의 고집에 따라 세종국제고의 공식 아침 기상곡이 된 것이다. ‘조화롭고 품격 높은 글로벌 리더’가 되려면 역사의식과 함께 씩씩하고 당당한 기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3월 한 달을 <독립군가>로 잠을 깨던 아이들이 서서히 불평을 쏟기 시작했다. 이 곡을 고집하는 사감 선생님과 소수에게 호응을 받던 <독립군가>에 대해 어느덧 교체론이 제기되었다.
기숙사 규율 담당 부서인 기숙사자치위원회(기자위)를 중심으로 아침 기상곡 바꾸기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기자위 중 음악 담당 종민군이 ‘고양이 목에 방울 매달기’를 맡았다. 어느 날 기숙사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붙었다.
“아침 기상곡으로 사용할 곡을 신청 받습니다.”
<독립군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아이돌 노래에 목말라했던 아이들은 때를 놓칠세라 가수와 곡명, 신청자의 이름을 적어 나갔다. 같은 곡을 원하면 처음 신청자 옆에 나란히 이름을 적으면 되는데, 20곡까지 신청이 가능하며 그 칸을 벗어나는 신청곡은 제외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따끈따끈한 가수와 곡들이 줄줄이 적혀 나갔다.
사흘 뒤 종민이가 정리한 신청곡에는 비투비의 ‘두 번째 고백’이나 아이유의 ‘50㎝’ 등의 노래가 상위권에 자리했다. 빠질 수 없는 샤이니의 ‘방백’에는 커다란 하트를 그려 놓았고 비투비의 ‘두 번째 고백’에는 별이 무려 다섯 개다. 버스커버스커의 봄을 기념하는 국민 노래 ‘벚꽃엔딩’은 그 자체도 인기가 높지만 후속곡인 ‘처음엔 사랑이란 게’가 더 선호도가 높았다.
신청곡을 받고 목록을 정리한 종민이가 사감선생님과 협상을 한다.
종민이 왈,
“선생님, <독립군가>도 좋지만 가끔은 다른 노래를 들어 보고 싶습니다.”
사감선생님 왈,
“종민아, <독립군가>를 들으면서 나라사랑의 마음을 가져봐.”
종민이 왈,
“선생님, <독립군가>도 좋지만 가끔은 다른 노래를 들으며 일어나고 싶습니다.”
사감선생님 왈,
“종민아, <독립군가>의 기상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해 봐.”
종민이 왈,
“선생님, 그러면 <독립군가> 먼저 듣고, 우리들의 신청곡을 듣게 해 주십시오.”
사감선생님 왈,
“종민아, 신청곡을 먼저 듣고 <독립군가>를 들으렴.”
종민이 왈,
“어차피 잠에서 덜 깬 상태라 <독립군가>를 먼저 듣고 잠이 조금 깬 상태에서 신청곡을 듣고 싶습니다.”
사감선생님 왈,
“그러면, 쭉 <독립군가>만 들으렴.”
종민이 왈,
“아, 선생님 그건 안 되지요.”
이렇게 진전 없는 밀당은 점심시간 산책로가 끝나는 시점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사감선생님 주문대로 아이들의 신청곡을 먼저 듣고, <독립군가>를 나중에 듣는 걸로 결론이 났다한다. 듣는 순서가 왜 중요할까?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독립군가>를 후딱 듣고 정신이 맑아질 때 신청곡을 들으면 진짜 좋아하는 노래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독립군가>보다 아이돌 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해서 탓할 일은 아니다. 어쩌면 <독립군가>를 싫어한다기보다 <독립군가>도 들어주는 데 신청곡이 더 듣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다운 감성이다.
열일곱의 청춘들, 3년이란 시간 동안 가족의 품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4인 1실의 공동생활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낯설고 불편한 집단생활에서 우리 아이들은 아침 기상곡 하나로도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순수성을 가진 존재이다. 비록 <독립군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매일 바뀌는 아침 기상곡을 들으며 잠이 잘 깨이고 출발이 좋아졌다는 아이들을 보면 웃음이 난다. 아이들은 그렇게 때로는 양보하고 때로는 타협하며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배운다. 그 모습이 참 눈부시다.
하미정 세종국제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