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온 손님 다시 오게 하려면
바가지 씌울 생각은 아예 버리고
국내 관광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해외에 나가기보다는 국내를 관광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관광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한번 찾은 관광지를 다시 오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국내 여행을 다녀온 내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관광지 물가만족도(5점 만점)는 가구여행객이 3.57점, 개인여행객은 3.61점으로 나타났다. 자연경관(가구여행객 4.14점, 개인여행객 4.12점)이나 숙박시설(4.04점, 3.93점), 교통시설(3.98점, 3.94점) 등의 만족도와 비교해 차이가 있다. 관광 종사자의 친절성에 대한 만족도 역시 가구여행객이 3.90점, 개인여행객이 3.88점으로 낮은 편이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달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지역 관광 종사자의 친절성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49점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그 결과 국내 관광지 재방문 의향은 5점 만점에 3.42점에 불과했다. 이 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내 관광지는 비교적 만족도가 높지만, 그에 비해 관광 종사자의 친절성에 대한 만족도는 낮다.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 중에는 서열의식이 강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부자(父子)’ 중심의 문화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항렬이 다를 뿐만 아니라, 아들을 낳아준 분이기 때문에 동등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 이런 문화에서는 당연히 인간관계에서 서열을 중시하고, 또 따지는 것을 좋아한다. 모든 인간관계는 ‘수직적’인 틀 속에서 서열을 정해야 한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존재할 뿐이다. 윗사람에게는 맹목적으로 존경하고 복종하지만, 반대로 아랫사람에게는 무시하고 군림하려고 한다.
이런 수직적 서열문화에서 손님은 윗사람이며 ‘왕’이다. 그리고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아랫사람이며 ‘하녀’이고 ‘머슴’일 뿐이다. 손님들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이 당연하듯이 행동한다. 그리고 종업원들을 아랫사람처럼 다루는 자신의 모습에서 마치 자신이 윗사람인 것을 인정받으려는 마음까지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이 기대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 권리가 크게 침해된 것처럼 거칠게 행동한다. 얼마 전에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킨 백화점 모녀 사건이 좋은 본보기다. 비록 젊은 주차요원이 불손한 행동으로 충분히 오인받을 수 있었다고 해도, 4명의 아르바이트 주차요원들을 오랫동안 무릎을 꿇게 했다는 것은 소위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부부(夫婦)’ 중심의 문화다. 성인이 된 후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부부는 서로 평등한 관계이고 수평적 문화의 바탕을 이룬다. 이 관계에서는 모든 인간관계는 나이나 직업 등을 불문하고 평등하다는 의식이 강하다. 손님과 서비스업 종사자는 단지 역할로 만나는 것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용돈을 번다. 손님도 종업원을 친구처럼 대하고, 종업원들도 자기들의 일에 보람을 느끼고 손님에게 기꺼이 봉사한다. 물론 그 대가로 팁을 받는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강조하는
"여자를 단골로…" 탈무드 격언
이런 문화에서 종업원들은 친절하게 봉사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를 높이기 위해 최소한도의 서비스만 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봉사를 요구하면 마치 자신을 아랫사람처럼 대하는 것이라는 반감을 가지게 된다. “사람을 뭘로 보고 이래? 내가 이런 데서 장사나 한다고 우습게 보여?”라는 감정이 쉽게 올라온다.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폐습으로 ‘바가지 상혼’이 있다. 바가지 상혼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국내 관광업의 여건이 여름 한철을 중심으로 몰려있기 때문에 ‘한철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성수기에 바가지를 씌울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일견 맞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가 지적한 대로 “관광산업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고 “시간과 비용을 들여 국내에서 여행을 하는 데 여행지에서 불쾌한 경험을 하면 국내 여행지 재방문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광산업 종사자들이 쉽게 ‘바가지’를 씌울 수 있는 이유는 여행객들은 ‘한번밖에 오지 않을 손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는 바가지를 씌우거나 불친절해도 크게 손해 보는 것이 없다. 이래저래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단골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다시 올 사람이라고 여겨지면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라고 여기면 당연히 현재의 자신의 이익을 높이는 상술을 부리기 마련이다.
한번 온 손님을 다시 오게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10년, 20년 같은 곳에서 한결같이 친절한 서비스와 적정한 가격을 받는다면 틀림없이 다시 찾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안정적이고 한번 맺은 인간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경험이 쌓여야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외부적으로는 수없는 외침을 당하고 내부적으로는 탐관오리들의 수탈을 다반사로 경험하는 조건에서는 미래를 생각하고, 비록 불법적이지만 현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상술을 참을 수 없다. 다시 오지 않을 손님을 상대로 내년에도 가게를 계속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면 정도(正道)를 지키며 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장사를 잘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이 곁에 두고 수시로 지혜를 얻는 탈무드에는 장사에 대한 많은 교훈들이 있다. 그 중에 ‘여자를 단골로 잡으라’는 내용이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단골로 잡으면 결국 3대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결혼하면 남편을 데리고 오고, 얼마 후에는 자녀를 데리고 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친정과 시집의 부모까지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결국 3대를 보고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장기적인 안목과 조망을 가지면 당연히 바가지 요금은 사라질 것이다. 다시 올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다.
석학으로 추앙받는 이어령 교수의 말을 빌리면, “과거에는 일을 잘 하기 위해 놀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잘 놀기 위해 일한다.” 하버드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70여년을 추적 연구한 ‘하버드 인간발달 연구’의 결론에 의하면, 잘 노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 그 결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라기보다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한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즐거운 관광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명의 심리학’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