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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이란?...고종과 왕세자, 1년간 조선왕궁 떠나 러시아 공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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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이란?...고종과 왕세자, 1년간 조선왕궁 떠나 러시아 공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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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이 30일 포털에서 관심이다.

아관파천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일본군의 무자비한 공격에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1896년(건양 1) 2월 11일부터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공사관)에 옮겨 거처한 사건이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우월권을 확보하고 청으로부터 랴오둥반도 등지를 할양받아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독주를 우려한 열강, 즉 러시아가 주동하고 프랑스·독일이 연합한 이른바 삼국간섭으로 랴오둥반도를 청에 반환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영향력에 자극되어 조선에서는 배일친러적 경향이 싹트게 되었다. 그동안 친일 세력에 눌려 있던 민비의 척족세력과 함께 구미 공관과 밀접한 접촉을 가지며 친미·친러적 경향을 보이던 정동파 인사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 역시 미국 공사와 재한 미국인을 포섭하고 민비 세력에 접근하여 친러정책의 실시를 권유하였다. 이에 친일 세력은 급격히 세력을 상실하며 김홍집 내각이 붕괴되었다.

그 후 일본 공사 이노우에의 매수 정책에 따라 김홍집 내각이 성립되었지만, 민비 세력과 친미·친러파가 요직을 장악하였다. 내각은 일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개혁 사업을 폐지하고 친일파를 축출하였다.

또한 일본에 의해 육성된 훈련대마저 해산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신임 일본 공사 미우라는 1895년 음력 8월 20일에 일본인 낭인과 훈련대를 경복궁에 침입시켜 민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세력을 만회한 일본은 친일 내각을 성립시켜 단발령 실시를 포함한 급진적인 개혁 사업을 재개하였다.

하지만 국모 시해로 인해 고조되었던 백성들의 반일 감정은 단발령을 계기로 폭발하여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초래하였다.


온기동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1699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