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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엔 일과 놀이 구분않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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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엔 일과 놀이 구분않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지혜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20)] 노는 것처럼 일하고 일하는 것처럼 노는 노년기

일과 놀이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바꾸어야 할 때다. 일하기 위해 놀고, 놀기 위해 일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일과 놀이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바꾸어야 할 때다. 일하기 위해 놀고, 놀기 위해 일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퇴직을 하거나 은퇴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퇴직과 은퇴가 서로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정확히 해석하면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다. 퇴직(退職)은 ‘물러날 퇴(退)’와 ‘벼슬 직(職)’의 합성어다. 즉,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은퇴(隱退)는 ‘숨길 은(隱)’과 ‘물러날 퇴(退)’의 합성어다. 즉 ‘현직에서 물러나거나 사회활동에서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퇴직에서는 ‘현직에서 물러난다’에 주안점이 놓이지만, 은퇴에서는 ‘현직에서 물러나 한가히 지내는 것’에 방점이 찍힌다.

인구의 고령화가 현저하게 시작된 1960년부터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를 중심으로 전생애발달심리학 연구가 활성화되었다. 특히 성공적인 노년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성공적 노년기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등장한 설명이 ‘유리(遊離)이론’이었다. ‘이탈(離脫)이론’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론에 따르면, 노년들은 스스로 활동과 관여를 줄이고 사회는 은퇴하기를 강요함으로써 노화로 인한 사회적 분리를 조장한다. 즉 노년이 되어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노년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진행하는 사회적 철수(撤收)인 셈이다.
유리이론은 ‘은퇴’의 개념과 어울리는 이론이다. 은퇴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직에서 물러난 후 한가히 지내는 것이다. 퇴직과 동시에 자신을 숨기고 조용히 안빈낙도의 생활을 보내는 것이다. 과거에는 관직을 수행하던 고관대작들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낙향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며 ‘낙향거사(落鄕居士)’의 생활을 하는 것이 하나의 모범이 되기도 하였다. 이 이론에 따르면 스스로 사회적 역할에서 벗어나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는 것이 성공적 노화라고 보았다.

현직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서 손떼기…노년 사회가 동시 진행 사회적 철수


하지만 이 이론은 곧 ‘활동(活動)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활동이론에 따르면, 노년기의 유리는 단순히 나이보다는 좋지 않은 건강 상태나 원하지 않는 퇴직 등 나이와는 직접적 상관이 없는 요인들에 의해 일어나는 특수한 상황일 뿐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연령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유리는 증가하지만, 여전히 활동적인 노인들이 더 행복하고 만족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활동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생활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활동이론은 ‘퇴직’의 개념과 어울리는 이론이다. 퇴직은 ‘현직(現職)’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현재의 일에서 물러난다고 은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직업이나 사회적 활동을 찾아 또 다른 현직 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번 퇴직은 영원한 퇴직”이 아니다. 고령화가 일어나기 전인 전통사회에서는 처음 시작한 일이나 직장이 ‘평생직업’과 ‘평생직장’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두 번째 경력(second career)’ ‘세 번째 경력(third career)’까지도 익숙하게 거론되는 사회다.

앞으로는 “죽을 때까지 현직에 있어야 하는 시대”이다. 고령화는 전직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긴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만약 60세에 건강하게 정년퇴직하고 은퇴한다면, 남은 30여년을 ‘전직(前職)’으로 살아야 한다. 계속 현직으로 살기 위해서는 먼저 ‘일’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내려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일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대가를 받기 위하여 어떤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몸을 움직이거나 머리는 쓰는 활동”이다. 간단히 말하면, 일은 무엇을 이루거나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평범한 갑남을녀(甲男乙女)에게 일이란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다. 적절한 보상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돈’이다. 즉,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만약 돈을 주지 않는다면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과 반대되는 것이 ‘놀이’이다. 놀이는 ‘직업이나 일정히 하는 일이 없이 지내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놀이’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놀이에는 “재미있는 일을 하면 즐겁게 지낸다”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직업이 없을 때 “논다”라고 표현한다. ‘놀다’에 서로 상충되는 두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즉, 직업이나 일정한 일이 없을 때도 ‘노는’ 것이고, 재미있는 일을 하면 즐겁게 지내는 것도 ‘노는’ 것이다. 무직인 상태에서 즐겁게 놀기는 어려운 일이다. 상대의 행동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놀고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우리는 기본적으로 노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2002년 7월 <한국여가문화학회>가 발족할 당시 현재도 상임고문으로 계시는 이어령 님의 축사의 한 부분이 지금도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그는 “과거에는 일을 잘 하기 위해(creation) 놀았는데(re-creation), 앞으로는 잘 놀기 위해 일을 하는 시대가 곧 온다. 과거에는 밥을 먹기 위해 짠 반찬을 먹었는데, 앞으로는 맛있는 반찬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 시대가 곧 온다”라는 요지의 말씀이었다. 지금 되새겨보아도 혜안(慧眼)이다.

최근 한 언론매체의 보도에 의하면, 개인이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요즘 비록 아직까지 소수이기는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 ‘파이어(FIRE)’ 바람이 불고 있다. 파이어는 ‘경제적 독립, 빠른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뜻하는 말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은퇴를 꿈꾸는 이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 욕구를 최대한 자제한다. 일찍 은퇴하려면 경제적 독립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급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능한 다양한 수단으로 재산을 축척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또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파이어족도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해보고 싶은 도전이나 삶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이들은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재테크에 몰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돈 버는 방법만 쫓다 보면 재테크의 노예가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삶을 개척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

노년기 유리 퇴직 등 나이 관계없어…여유 있는 생활 즐겨야 성공적 노화


현재에 효율적으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은 과거 부모님들이 살아가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렸을 때 현실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여 “나도 저렇게 살겠다”고 동일시했던 방식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 현실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기댈 기반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일과 놀이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바꾸어야 한다. “일하기 위해 노는 것”이 타당하듯이 “놀기 위해 일하는 것”도 역시 타당하다. 이제는 한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직하면 여유 있게 노후를 즐기는 모습은 노년기를 잘 보내는 한 가지 방법에 불과하다. 은퇴 후 “농사나 지으며” 여유 있게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여유 있게 산다는 것이 무위도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잘 살기 위해서 “Lieben(love) und Arbeiten(work)”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일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일해야 한다. 사랑은 인간의 본능 중 성욕이 승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은 또 다른 본능인 공격성이 승화된 것이다. 사랑과 일을 통해 우리는 기본적 본능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프로이트와 쌍벽을 이루는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Carl Jung)은 일과 놀이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Work playfully, play seriously.” 쉽게 말하면, “노는 것처럼 재미있게 일하고, 일하는 것처럼 열심히 놀자”일 것이다. 더 이상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중요한 지혜다. 바람직한 노년기는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이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기준은 “재미”다. 사는 것이 재미있어야 한다. 노년기에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미덕을 몸에 익혀야 한다. 젊었을 때처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즐거운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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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