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사건을 살펴보자. 지난 9월 같은 학교 여자친구와 합의 후 성관계를 맺었다가 성폭행범으로 몰릴 뻔한 중학생이 교육청으로부터 징계를 받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은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생 A군은 지난 해 말 같은 학교에 다닌 B양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서로 사귀기로 했고, 첫 데이트를 하는 날 바로 성관계를 맺었다. 이틀 뒤에 다시 만나 두 번째 성행위를 했다.
초중고생의 감수성 어른 상상 초월…연루 학생 나이 점점 연소화 충격
거의 같은 시기에 한 아파트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10대 학생들이 성관계를 하다 주민신고로 경찰에 검거된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 이들은 하의를 모두 벗고 있었다고 한다. 사건에 연루된 남학생은 고등학생이고 여학생은 중학생이었다.
또 발령받은 지 2개월이 된 한 초등학교 여자담임교사가 반 남학생에게 성희롱성 메시지를 받았다며 공개한 사진이 충격을 주고 있다. 이 메시지에서 초등학교 남학생은 “선생님 XX에 XX 넣어도 돼요?”라며 노골적인 성희롱 발언을 했다. 너무 충격이 크고 대처 방법을 몰라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교사들만 활동할 수 있는 비공개 카페에 이 사실을 알리고 조언을 구했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19세기 미국 언론인 찰스 대너가 한 이 유명한 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지금 위에서 제시한 사례들이 언론에 실리는 것은 마치 사람이 개를 물은 것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경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생활을 하고 있다며 애써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현재는 극히 일부 청소년들의 일탈로 치부될 수는 있지만 대다수의 청소년들에게 파급 효과는 클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혼란을 줄 소지는 충분히 있다.이 사건들을 기화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을 다시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한 쪽에서는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성교육을 빙자한 ‘순결교육’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변화된 청소년의 ‘성 현실’을 인정하고 효과적인 피임법 등 실제적인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반대편에서는 오히려 그런 교육 자체가 청소년들의 문란한 ‘성 의식’을 부채질한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는 ‘성교육’의 방향과 효과를 다루기 이전에 교육 자체의 목적과 방법부터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현재의 청소년들의 ‘성 의식’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성의식이나 가치관은 다른 주제의 의식과 마찬가지로 일률적이지 않다. 나이든 어른들을 능가할 정도로 보수적인 학생들부터 자유로운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개방적인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을 견지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어느 것이 옳은지에 대한 토론보다 더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설득과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프로이트의 큰 공헌은 인간의 마음을 마치 신체처럼 구조와 기능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선명하게 설명해주었다는 점이다. 어느 대상이든 연구를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 구조와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신체는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기 비교적 쉽다.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부(解剖)’하면 되고, 일단 구조를 이해했으면 그 기능은 ‘생리(生理)’를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기 몹시 힘들었다. 그래서 주술이나 주관적 경험과 설명이 너무 많이 들어가 과학의 경계 밖에 존재하는 영역으로 치부하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본능(이드)’ ‘자아’ ‘양심(초자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요인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본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욕구이다. 그 중 인간의 정신생활에 제일 강한 영향을 주는 것이 ‘성욕’과 ‘공격욕’이다. 사람은 가능하면 이 욕망을 많이 만족하려고 한다. ‘양심’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인간의 인간됨을 증명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일상적으로도 비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하(卑下)하여 “인간도 아니다”라고 욕을 하곤 한다. 양심은 특정 사회나 조직의 규율, 가치, 규범 등이 내재화된 것이다.
그런데 본능과 양심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그런 본능과 양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두 요소는 현실과 접촉하지 않는다. 욕망을 해결할 현실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에도 계속 욕구를 해결해달라고 자아에게 요구한다. 역시 양심도 현실과 접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적 여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양심적으로 살 것을 강요한다.
중·초등생층으로 내려가…미끄럼틀에서 10대 성관계 중 검거도
현실을 도외시한 욕망충족의 욕구와 냉엄한 재판관 같은 양심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이 바로 자아(自我)이다. 자아는 우리 마음에서 유일하게 현실과 접촉하는 부분이다. 욕망이나 양심 모두 현실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대 심리학은 욕망을 중시하는 정통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자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크게 변화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욕망과 양심은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건강하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작금의 성교육의 현실은 한편에서는 욕망에 기초한 진영과 양심을 기초로 한 진영(陣營)간의 대립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프로이트는 성숙한 삶의 특징을 ‘즐거움의 극대화, 처벌의 극소화’라고 간결하게 정리하였다. 일견 양립(兩立)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삶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루는 것이 바로 자아(自我)이다. 자아가 강하지 않으면 한 쪽에 굴복한다. 그래서 ‘욕망의 극대화’만을 추구하든지, 아니면 ‘처벌의 극소화’만을 목표로 살게 된다. ‘욕망의 극대화’는 기본적 욕구인 성욕과 공격욕이 극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어되지 않은 욕망의 극대화는 ‘범법(犯法)’으로 귀결된다. 반대로 ‘처벌의 극소화’는 양심이 극대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즐거움이 없는 ‘박제(剝製)’된 삶이다. 이 두 방향의 극대화를 잘 조정하고 욕망의 극대화와 처벌의 극소화를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임무를 자아가 지고 있다.
이 어려운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자아는 한편으로는 현실적 여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욕구의 요구를 달래야 한다. 동시에 양심의 가차 없는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타협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양쪽이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승화’와 ‘유머’ ‘이타주의’와 같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이용하는 것이다. 성숙한 삶이란 ‘사회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욕망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삶이다.
교실이나 여타의 교육 현장에서 말로 옳고 그름을 설명해서 자아가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아와 타협해야 할 양심의 크기만 강화될 뿐이다. 자아는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강해지는 것이다.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강해지는 것이 자아이다. 어린이는 자라나면서 자신의 자아의 크기에 맞는 방식으로 양심과 욕망 사이의 타협을 배워나간다. 이 과정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성숙해 간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