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8일 저녁 일곱 시 삼십 분, 국민대 예술대극장에서 판댄스컴퍼니(총예술감독 이미영 국민대 무용전공 교수) 주최·주관, 이길현·장민혜 공동안무의 「CODE–강강ː술래」 공연이 있었다. 소통의 민요춤 ‘강강술래’가 상징적 코드가 된 작품은 인간의 삶을 조망하고 있었다. 인간이 삶을 구성하는 태도, 삶에 대한 목표가 민요춤 ‘강강술래’를 주제로 반복, 순환되고 있었다.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저마다 조화를 통해 유지된다. 나만의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평상심으로 살아가며 춤추는 자들의 순간을 대하는 모습들은 창호를 타고 들어오는 빛줄기와 닮아있다. 순간은 빛이 되고, 모인 빛줄기는 삶을 인도한다. 반복과 순환의 춤이 무르익어가면 내 안에 이는 바람이 순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자신의 힘이 됨을 깨닫게 된다.
「CODE–강강ː술래」는 도입부와 3장으로 구성된다. 굴렁쇠 같은 순환 위에 포착된 인간의 삶은 원근감을 상실하기도 하고 단색화의 극치 같은 백색 유희를 연출하기도 한다. 기승전결의 춤은 서무(序舞) : ‘삶은 순환과 반복이다.’ 1장 : ‘끝없는 변화를 통해 반복되는 원’, 2장 : ‘틀 속에서 끝나지 않는 관념의 굴레’, 3장 : ‘이 모든 순간이 어긋나거나 연결되는 것이 곧 춤이다.’로 진용을 갖춘다.
서무(序舞) : ‘삶은 순환과 반복이다.’ 인간의 삶은 백지 위에서 시작된다. 그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은 인간이다. 달은 인간의 심상이며 마음의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다가갈 수 없는 달은 달항아리가 되기도 하고, ‘강강술래’의 벗이 되기도 한다. 때론 정제되어 무대 위에서 인간이 부리는 도구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달은 모든 갈래의 훌륭한 오브제가 되어 있다.
맨 첫 장면은 작품의 주제를 읽게 한다. 안무가는 연속적으로 돌아가는 ‘팽이 놀이’(spinning top)를 빗대 반복되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다. 코드 ‘강강술래’를 입력하면 나타나는 첫 화면, 작품의 큰 주제인 반복과 순환의 삶을 암시한다. 익숙한 소재의 낯선 감각적 상상은 한국 창작무용을 현대무용에 버금가는 컨템포러리 댄스의 현주소로 이끈다.
네 명의 무용수는 팽이의 회전에 집중하며 사각의 형태를 유지하며 움직인다. ‘반복, 순환, 틀’의 표현이다. 이후 어딘가를 향해 전진하는 열한 명의 무용수는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며 등장한다.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다. 앞을 향해 전진하던 무용수들은 원형의 형태로 만들어지며 그 안에서 다양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1장 : ‘끝없는 변화를 통해 반복되는 원’: 군무 속 무용수들의 단절되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삶의 반복성과 순환성을 나타낸다. 강강술래 속에 담긴 청어엮기, 기와밟기, 대문열기 놀이 구성을 활용하여 강강술래의 유희성, 즉흥성, 리듬성을 표현한다. 반복된 일상에 익숙해진 우리가 문득 느끼는 순간들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소중한 것이라는 나타낸다.
군무의 움직임에서 두 명씩 마주하는 배치는 삶 속에서 사람들이 마주하는 상황과 감정적 요소들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시간, 사람, 감정, 환경 등 무수히 많은 요소와 마주한다. 이때 한 명의 무용수는 관찰자적 모습을 보인다. 그로 인해 웃고, 울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정을 간직하며 살아간다.
반복적으로 호흡을 내뱉으며 리듬을 타는 모습은 쌓여가는 숨소리를 통해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다. 무용수들은 놀이하고 음악의 리듬을 타며 크고 작은 흥겨움을 보여주며 인생의 ‘희’와 ‘락’을 표현한다. 순간들이 쌓여가고 겹쳐지면서 다시 어딘가를 향해 전진한다. 그 이후에는 ‘노’와 ‘애’의 감정들을 보여주며 삶의 다양성이 이어진다.
2장 : ‘틀 속에서 끝나지 않는 관념의 굴레’ ; 춤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으로 구성된다. 지구별에는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 힘든 고난과 역경에 마주하면서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하는 사람, 수동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 자기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서 객관적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군상이 들꽃처럼 펼쳐져 있다.
알 수 없는 외부의 자극으로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하며 이동한다. 상황의 몰입을 깨우치는 자극을 통한 자각의 표현이다. 진전의 착각, 모든 상황과 형태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자신이 만든 관념 속에서 결론을 내리고 결과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틀이다. ‘틀’이라는 키워드는 인생을 완성하는 하나의 점으로 포함된다.
상(像)의 실제(實在), 삶의 틀, 물음의 틀에 대한 사유의 장(場)이다. 아크릴 상자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확장된 실시간 카메라의 오브제는 시선의 한계를 보다 구체화한다. 공은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입체, 무수한 순간이 모인 삶의 집합체, 향방을 모르는 삶의 모습이다. 무용수들은 각자 삶의 공을 튕기는 행위를 반복하며 카메라는 자신의 삶을 관조한다.
3장 ; 이 모든 순간이 어긋나거나 연결되는 것이 곧 춤이다 ; ‘백색유희’의 가공할 변주, 무대에 놓여 있는 하얀 공들은 그저 공이라는 물체, 색이 없는 하얀색이 아니라 단색화의 품위를 갖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집약된 상징이다. 반복적 일상이 유지되고 순환되는 것은 나, 너, 우리가 몸속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삶의 과정과 순간을 표현하는 공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오고 튕겨지고 구른다. 그 목적지는 물리적 힘을 가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예상외의 경로로 튕겨 나가는 모습은 위태한 보통 사람의 삶과 매우 닮아있다. 무용수가 바라보는 시각의 표시로 카메라를 장착한 무용수가 모든 상황을 카메라의 렌즈 안에 담는다. 카메라가 담는 틀의 의미이다.
스치고 지나면 별것 아닌 불안하고 떨렸던 지난날과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나열되고 마지막 부분에서 공을 최대한으로 들어 올렸다가 한 번에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은 깨달음을 보여준 뒤에 나타나는 장면은 여러 순간이 부딪히고 깨지는 모든 과정들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판댄스컴퍼니의 「CODE–강강ː술래」는 유사성에 흡수되지 않고 독립 개체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무용수들(김도은 김지효 박미정 이길현, 장민혜, 장이정, 정도이, 정미애, 유소정, 김은주, 김시은, 이수아, 이유림, 제지나, 허예원)이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춤추는 것처럼,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춤을 추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정답의 질주가 아니라 지금의 순간을 느끼고 마음에 담아 두기 위해 달려간다. 선한 움직임의 연결로 빚은 춤은 오롯한 신비를 부른다. 경험의 픽셀을 쌓아가며, 변화되고 새로운 자극을 통해 춤은 만들어진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채워지는 삶 속에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ː술래 강강ː술래’는 고단한 일상을 녹이는 위안의 하얀 달을 주문 용어로 삼는다.
희로애락에 걸린 인생의 사계를 변주해내는 박경소의 ‘달빛’ ‘공기의 흐름’, 박석주의 ‘심현’, 서정민의 ‘먼동이 틀 무렵’ Ver.2, 아마씨의 ‘가을밤’ ‘신부용당’ 詩, 오음의 ‘혼원술래’, BLNDR의 ‘Silent Quest’, 황진아의 ‘Ground, 사이’가 음악감독 양용준과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놀라운 춤을 안무한 안무가는 물론 백색 판타지를 창출한 조명감독 노상민을 주목한다.
2010년 ‘민요로 보는 춤’이라는 타이틀로 시작으로 판댄스컴퍼니(2009년 창단)는 우리 고유문화의 본질인 한국 민요춤이라는 한민족의 가장 근본적인 움직임을 담고 있는 춤을 바탕으로 다양한 창작작품을 생산해내며, 공연·교육 콘텐츠로도 발전시켜 나아가고 있다. 그들이 한마음으로 큰 판을 벌인 결과는 판댄스컴퍼니 정체성과 색깔을 분명히 한 작품을 직조한 것이었다.
민요춤은 조상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소리, 노래에 맞춰 추는 춤을 자연스럽게 포용한다. 판댄스컴퍼니는 우리 문화에 담긴 소리와 몸짓, 그 안의 중심인 사람에 대해 집중하여 예술로 연구하고 공연하고 있다. 무용수들은 저마다의 다양한 움직임 어법과 메시지를 담는 표현을 채집하고 춤추어 왔다. 그들의 십 년 노력은 「CODE–강강ː술래」라는 감동적인 예작(藝作)을 통해 입증되었다. 이길현, 장민혜 두 공동안무가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