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교수신문>이 ‘오리무중(五里霧中)’을 그 당시 사회상을 제일 잘 반영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채택한 이래 매해 12월 연말기획으로 한 해의 사회상을 제일 잘 반영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고 있다. 교수들이 정의한 2021년 한국 사회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그 뜻은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것으로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한패가 된 것을 말한다.
고양이와 쥐는 서로 천적 관계…고양이가 쥐 잡아 먹는 것 당연
‘묘서동처’를 추천한 영남대 철학과 최재목 교수는 “각처에서, 또는 여야 간에 입법, 사법, 행정의 잣대를 의심하며 불공정하다는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라며, “국정을 엄정하게 책임지거나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시행하는 데 감시할 사람들이 이권을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이 돼 이권에 개입하거나 연루된 상황을 수시로 봤다”라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 말에 의하면, ‘묘서동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심리학과 마음의 건강을 공부하는 필자는 ‘묘서동처’라는 사자성어를 접하고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가 떠올랐다. ‘성격장애’는 ‘행동, 습관, 사고방식 등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으로서 미국정신의학회(APA)에선 거기에 더해 전반적이고 완고하며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시작되어 계속적으로 생활에 불행과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로 정의한다. 간단히 말하면 성격이 너무 이상해 당사자나 주변인이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정신질환에는 세 가지가 포함된다. 정신병, 성격장애, 그리고 신경증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 제일 어렸을 때와 관련 있는 것이 정신병이다. 그리고 성격장애는 청소년기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혼란을 많이 느끼는 시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기에 고착된 증상을 보이는 성격장애는 한 마디로 어른이 되어서도 청소년들과 비슷한 정서와 행동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법을 집행하고 감시할 사람들 이권 노리는 사람들과 한통속
청소년기는 소위 ‘정체성(identity)’를 형성해야 하는 시기이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확립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이다. 청소년기는 어린이와 어른 시기가 겹쳐있다. 그래서 하루에도 열두 번 어린이와 어른의 모습이 교차한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다.
심리적으로는 어른이 되기 위해 ‘독립(獨立)’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〇〇〇의 자녀’로서 ‘의존적’으로 살아왔다. 의존(依存)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물론 어린이에게 다른 것은 일차적으로 ‘부모’이다. 즉 어린이는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지해서 살아오는 존재이다. 의존적인 상태에서는 자신이 결정할 필요도 없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가장 완전한 의존상태는 자신이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지 못 하는 것이다. 독립해야 한다는 당위는 알지만 현재 자신이 의존적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의존적 생활의 전제조건은 ‘나’와 ‘너’가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더 이상 완전한 의존적 관계는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나는 ‘나’로 살아야만 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정체감’을 확립한다는 것은 자신이 부모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지금까지는 ‘〇〇〇의 자녀’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부모와는 다른 ‘〇〇〇’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와 나 사이에는 아무리 가까워도 넘을 수 없는 경계(境界)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부모의 사랑이 ‘내리사랑’인 것은 그냥 ‘내 새끼’이니까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내리사랑에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경계’가 없다. 그냥 ‘나’와 ‘너’가 하나로 ‘융합(融合)’ 되어 있는 상태이다.
청소년기에 정체감이 확립되지 않으면 ‘역할 혼미(昏迷)’가 일어난다. 즉 자기가 누구인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부모인지 자녀인지에 대한 분명한 경계도 없다. 그리고 자신이 고양이인지 혹은 쥐인지에 대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묘서동처’가 일어나는 것이다. 자신이 고양이인 것을 확실히 알고 고양이답게 살아간다면 쥐와 사이좋게 함께 있을 수가 없다. 쥐도 자신이 쥐인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으면 고양이와 마음 편하게 함께 있을 수가 없다. ‘묘서동처’는 정체감이 확립되지 않은 존재들의 생활방식이다.
청소년기 정체성 형성할 시기…'나는 누구인가' 질문에 답해야
경계선 장애는 대인관계에서 아직 ‘나’와 ‘너’가 분명히 분리되지 못한 성인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들이 주로 나타내는 특징은 자제력이 없고 매우 충동적이며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이다. 또 심한 정서적 불안정과 함께 자신의 자아상, 목표 등이 불분명하거나 혼란스럽다. 또한 상대편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거나 무시하는 등 격렬하고 불안정한 대인관계 때문에 반복적으로 정서적인 위기를 일으킨다. 너와 나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하나라고 느낄 때는 기분이 고양되지만,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면 크게 불안해하면서 상대에게 불평한다. 어린이들은 부모와 융합의 상태에서 분리되어야 한다. 그리기 위해서 ‘정체감’이 확립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서 ‘나’와 ‘너’가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가 되는 ‘통합(統合)’이 되어야 한다. 통합은 분리, 즉 독립을 전제로 한다.
융합과 통합은 엄연히 다른 심리적 상태다. 융합은 분리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와 ‘공서적(共棲的)’ 관계를 맺는 것이다. 태아가 어머니와 탯줄을 통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흡사한 상태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 상태는 ‘기생(寄生)’하는 상태이다. 반면에 통합은 분리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나’와 ‘너’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성숙한 관계가 된다.
‘묘서동처’는 융합의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통합의 상태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엣 성현의 가르침 중에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는 것이 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통합의 상태에서의 ‘묘서동체’이다. 반면에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융합의 상태에서의 ‘묘서동체’이다. 작금의 우리 사회의 모습은 동이불화의 상태, 즉 융합의 상태에서의 ‘묘서동체’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