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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트라우마' 하루 빨리 씻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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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트라우마' 하루 빨리 씻고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자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31)] 대통령 선거 이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자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설치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제20대 대통령선거일인 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설치된 개표소에서 관계자들이 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있다. 특히 스포츠를 가리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의 드라마나 영화는 유명 작가들이 각본을 쓰고 그 각본에 따라 배우들이 연기한다. 작가들의 역량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따라 시청자나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포츠는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상황이 반전된다.

스포츠에서 결과가 뻔하다면 관중석은 텅 빌 것이 분명하다. 수천, 수만 명의 관중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기대하는 것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드라마와 같은 반전이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에 직접 참가하는 관계자들이 승부를 걸고 미리 조작하는 것을 제일 엄하게 처벌한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승부 조작에 관여한 선수나 임원은 영구 제명(除名)의 중벌을 받는다.

선거는 각본없는 드라마처럼 환호와 탄식 교차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선수 겸 감독 피트 로즈(Pete Rose)는 기록을 많이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메이저리그 통상 최다안타(4256개), 최다출장(3562경기), 최다타석(1만5861번) 등의 대기록 보유자이다. 하지만 감독 시절 자신이 감독으로 있는 팀의 승부를 걸고 도박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 화려했던 모든 기록이 물거품이 됐고, 1989년 메이저리그에서 영구 제명되었다.

2022년 3월 9일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결과로, 많은 사람들을 기뻐 환호하거나, 탄식하며 울게 만들었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0.72%의 근소한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갈렸다. 두 개의 사전 출구조사 결과가 서로 달랐을 뿐만 아니라 개표 초반 근소한 차이로 앞서가던 후보가 개표 50% 시점부터 역전해 계속 그 박빙의 리드를 지켜 나갔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관심이 있던 많은 유권자들이 최종 결과가 나온 새벽 4시 이후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TV 개표 상황 중계를 지켜보았다.

승자와 패자로 갈린 감정 추스르는 데 꽤 시간 필요


지지하던 후보가 당선되어 기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또한 많은 사람들은 낙심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낙선한 사람들은 실망스럽고, 나름 국가의 장래에 대해 불안한 마음이 클 것이다. 이런 기분은 당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거 이후 아직까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심리적 트라우마는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더욱 크게 나타난다.

선거전이 시작되면 흔히 집단적 정체성이 형성되고, 이는 선거 기간을 거쳐서 점점 공고해진다. 즉,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동일시(同一視)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막연히 특정 후보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감은 시간이 지나며 강한 믿음으로 발전하고, 마치 자신과 동일한 존재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해 비난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자신이 비난을 받은 것처럼 화가 난다. 반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동료애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또한 상대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나 불편감은 선거 기간을 거치면서, 단단한 혐오감과 분노로 커져 나간다. 그리고 '타집단 배척'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상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찾아올 엄청난 파국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물론 이런 파국에 대한 불안은 주관적인 것이다. 즉 자신의 마음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극적 상상은 임박한 객관적 현실처럼 경험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동감해주는 분위기 필요


선거가 끝난 후에 많은 사람이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불편과 불안을 흔히 선거 후 스트레스 혹은 선거 후 집단 트라우마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심리적 트라우마는 예상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사건 이후에 경험하는 정신적 불편감을 말한다. 현재 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전쟁 때문에 겪는 고초와 불안이 심리적 트라우마이다. 하지만 선거 후 스트레스는 이보다 강도는 덜하지만, 역시 심리적 트라우마이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된 쪽이나 낙선한 쪽 사이에는 엄청난 감정의 골이 생긴다. 이 감정의 골을 메우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해야 한다. 물론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나왔다면 일단 기쁠 것이다. 자신과 의견을 같이했던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충분히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감정은 '나'를 주어로 시작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나는 (바랐던 결과가 나와) 기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다. '나'를 주어로 이야기해야만 상대방에 대해 조소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지금 무엇보다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느끼는 참담함과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도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들도 '나'를 주어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나는 지금 너무나 황당하다" "나는 지금 너무 화가 난다" "나는 지금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라고 말해야 한다.

대통령은 임기 5년 선출직이라는 사실 알아야


그리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한 언젠가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억눌린 감정이 외부로 표출되면 과격한 폭력적 행동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억눌린 감정이 내부로 향하면 심한 우울과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게 된다. 심한 경우 이 두 가지 상반된 상태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함께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관계는 상대가 있는 것이고,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다.

특히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고 동감하는 것이 대인관계의 기본이다. 이를 위해서는 '너'를 주어로 상대의 감정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너는 지금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구나" 또는 "너는 지금 너무나 속상하구나" 등의 말로 상대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한다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즉 상대방의 감정에 맞장구를 쳐줘야 한다. 상대방의 말의 표면에 나타나 있는 내용보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정을 알아주면 더욱 효과적이다.'기쁨은 함께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다. 감정을 함께하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함께 한다는 것은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나'의 감정만이 아니라 '너'의 감정도 배려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대가 나와 같은 기쁜 감정일 때는 표현하고 함께 기뻐하면 기쁨이 배가 된다. 하지만 상대방이 나와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너'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배려하고 공감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기쁘다고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웃고 떠드는 것은 예의가 없는 것이고, 자기중심적인 미성숙한 행동이다.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칭송을 받게 된 이유는 신에게 지혜를 간구하고 받았기 때문이다. 솔로몬 왕이 얻은 지혜의 히브리 원어는 '듣는 마음'이다. 그는 진짜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를 듣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현명한 재판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식이 아니라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특히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당선된 쪽에서는 패배한 쪽에서 느낄 열패감과 불안함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해주어야 한다. 0.72%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는 것은 나처럼 기뻐하는 사람만큼 크게 실망한 사람들이 거의 같은 수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번에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쪽에서는 이번에 선출된 대통령은 5년 임기의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5년 후 선거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