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서구 문화를 개인주의적 문화이고, 반면에 동양 문화는 집단주의적 문화라고 칭한다.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일인칭 주어는 단수형인 '나(I)'인 반면, 집단주의적 문화에서의 일인칭 주어는 복수형인 '우리(we)'다. 우리 문화권에서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영어로 번역해 보면 두 문화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 집에 놀러갈래?"라고 이야기하지 "내 집에 놀러 갈래?"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차이는 '우리 집사람'을 영어로 직역하면 듣고 있던 외국 사람이 깜짝 놀랄 것이다. 일부다처제도 아니고 일처다부제도 아닌데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이라고 하면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한국 문화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저 사람의 남편이 나의 남편이기도 한다?'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는 '우리'라는 것이 그 만큼 자연스러운 문화다. 오히려 '나의 집' 혹은 '나의 아내'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대조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영어의 'self'에 해당하는 '자기' 라는 단어가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간혹 친밀한 사이의 두 사람이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으로 자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 사용법은 지금 우리가 논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물론 영어의 self에 해당하는 우리 단어가 없다고 해서 한국인에게 self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래적 개념에 상응하는 자국의 단어가 없을 때는 그 개념에 부착된 사회적 표상과 그 개념이 함축하는 사회적 현상이 그 개념이 존재하는 문화권보다는 덜 현저하다는 것이다. 서구인과는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self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도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가장 중심이 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의 특징, 인간관계, 한국문화 또는 가치관 등을 설명하기 위해 self와 대응하는 우리의 개념을 찾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 문화에서 '우리'는 자연스러워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이상으로 삼는 우리의 문화적 이데올로기에서 마음은 무엇보다 '서로 통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마음은 상호 독립적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서로 통해야 하므로 경계가 상호 침투적이며 개방적이다.
특히, 마음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라는 것은 최소한 둘 이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집단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우리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집단 내에서 구성원 간에 서로의 마음이 통해야 한다. 옆 사람과 마음을 통하려는 내가 벽을 쌓고 있으면 관계의 형성은 물론 발전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 마음이 열려 있는 관계를 맺을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우리 문화권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一心同體)'이 곧 한국 문화에서 가장 바람직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다.
일단 마음만 통하면 한국 사람에게는 내 것, 네 것이 없게 된다. 일단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제3의 그 무엇, 바로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인간관이며 한국 문화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마음이 통해서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된 상태를 정다운 관계라고 한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닫아 서로 통할 여지가 없는 사람을 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 문화권에서 '정 없는 놈', '정 떨어진다'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처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과 바람직한 인간 그리고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와 서양인 간에는 차이가 많이 있다. 이 차이는 자살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자살이란 부정적 정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행복하다거나 보람을 느낀다거나 하는 긍정적 정서 상태에서 자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서구와 우리 문화에서 제일 자주 나타나고 행동에 많은 영향을 주는 가장 기본적인 부정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self'는 다른 사람과 분명히 구별되는 '나'를 의미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나는 유일하고 개별적이고 다른 사람과 분리된 존재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긍정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개성이 드러나는 것이고 독립적인 것이며 자유로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서의 바람직한 가치는 '독립' '자유' '자기 결정성' '일관성' 등이다. 반면에 이 같은 가치를 중요시하는 문화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부정적 정서는 무엇일까? 이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일 쉽게 경험하는 부정적 감정은 아마도 '외로움'일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가 너무 심하고 지속적이면 '불안'을 느낄 것이고 '우울'해질 것이다.
마음이 통하면 부정적 정서 사라져
그렇다면 한국 문화에서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인 부정적 정서는 무엇일까? '우리'의 관계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의 관계다. 이런 관계에서는 이미 하나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구태여 나의 마음을 알려야 하는 관계는 이미 바람직한 관계가 아니다. 이와 같은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알아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경우 섭섭함을 느끼고 억울하고 화가 난다.
이런 문화 속에서 생활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화(火)'가 제일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부정적 감정이다. 따라서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종교인과 심리학자 및 정신의학자들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타계하신 노벨평화상의 후보자이며 세계 불교계의 상징적 인물인 티베트의 승려 틱낫한(Thich Nhat Hanh)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 마음속의 부정적 정서는 모두 우리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는 독인데, 이 독을 하나로 묶어 '화'라고 알려 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여자들은 보통 화를 너무 참아서 화병에 걸리고, 남자들은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폭력적으로 변한다. 우리에게는 효과적인 '화풀이'가 매우 중요하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