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가지 인간관에 반기(反旗)를 들고 나타난 것이 소위 인본주의적 접근이다. 이 인간관은 정신분석적 인간관을 제1세력, 행동주의적 인간관을 제2세력으로 부르고 자신들의 인간관을 인본주의적인 제3세력의 인간관이라고 불렀다. 이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며 존경받을 만하고 그들은 만약 환경조건이 적당하기만 하면 그들의 잠재 능력을 실현해 나가려 한다고 설명한다. 인본적인 접근에서도 우리 주위에는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 악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한 개인이 가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것이 그의 본성이 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선하다. 만약 사람이 악하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이라면, 본성이 그렇다기보다 좋지 않은 환경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하고 존경받을만 해
인본주의적 심리학을 주창하면서 자신들의 심리학을 ‘제3세력’이라고 부른 대표적인 학자는 매슬로우(Abraham Maslow)이다. 그는 “인간의 삶은 그것이 지닌 가장 고상한 열망을 고려하지 않고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성장, 자기실현, 건강에 대한 열망, 정체와 자율의 추구, 우월성을 향한 노력은 이제 의심할 필요 없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으로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본주의 심리학의 선두주자답게 대부분의 인간행동은 의미 있고 값있게 만드는 것은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하려는 경향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완전한 만족상태에 거의 도달하지 못하는 “부족함을 느끼는 동물(wanting animal)”로 이해하고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욕구단계설’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들은 타고난 것이고, 그것들은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일종의 계층적 단계로 배열되어 있다. 즉, 낮은 단계에 있는 강한 욕구가 어느 정도 만족되어야 더 높은 단계의 욕구를 의식하거나 동기와 부여된다고 가정하고 있다. 한 개인이 더 높은 단계에 올라갈수록 그는 더 많은 개성, 인정을 나타나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건강하게 된다.
물론 매슬로우도 이런 동기의 계층적 배열에 예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창조적인 사람은 고된 시련과 사회적 배척과 조소(嘲笑)를 무릅쓰고 자신의 자질을 표현하고 발전을 도모한다. 또는 그들의 가치관과 이상이 너무 강해 그것을 포기하기보다는 기꺼이 배고픔과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무릅쓰는 소수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낮은 욕구단계일수록 그 강도와 우선순위가 강해진다.
그의 ‘욕구5단계’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욕구는 제일 강하고 기본적인 것이 생리적 욕구이고, 그 다음은 안전 욕구,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 자존감의 욕구로 계층화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이 자기실현 욕구이다. 그의 말을 직접 인용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항상 배가 고픈 사람에게 유토피아는 단지 음식이 많은 곳으로 정의된다. 그가 단지 일생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그는 완전히 행복에 도취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그 외의 다른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 사랑, 공동체 의식, 존경, 철학 등은 소용없는 값이 싼 장식품으로 밀려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배를 채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빵만 가지고 살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매슬로우는 욕구 단계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동기를 크게 ‘결손동기’와 ‘성장동기’로 분류했다. 결손동기는 욕구의 하위 단계들 즉 유기체의 생리적 그리고 안전 욕구를 반영한다. 이 욕구들의 유일한 목적은 결손상태, 즉 배고픔, 추위, 불안 등으로부터 야기될 유기체의 긴장을 미리 막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성장동기는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선천적 충동과 연관된 목표를 추구한다. 성장동기의 목적은 경험을 넓혀서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삶의 기쁨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성장동기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즉, 이 동기는 일반화된 위계가 없다. 그에 의하면, “보다 고도로 진화된 사람들이 갖는 ‘법칙’이란 재정상의 안전, 칭찬, 지위, 특권, 지배, 남성다움의 추구보다는 정의, 진실, 선 등의 추구가 보다 알맞은 것이다.”
매슬로우의 이론을 요약하면, 자기실현의 동기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 평범한 사람들은 기본적 욕구의 만족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는 반면, 자기실현의 사람들은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자기 스타일을 보다 더 발전시키려고 한다.
더 크고 더 높은 가치 추구하는 욕구 가져
여기까지는 심리학에 관심을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매슬로우의 이론이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기실현의 욕구 위에 또 다른 욕구, 즉 ‘자기초월(超越)’의 욕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1968년에 출간된 『존재의 심리학을 향하여(Toward a Psychology of Being)』에서 지금까지 그가 주창한 인본주의적인 “제3세력의 심리학(Third Force Psychology)”은 “성격상 과도기적인 것이고, 더 높은 단계인 제4세력의 준비이다”라고 공언하였다.
5단계인 자기실현의 단계를 넘어서는 6단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을 ‘제4세력’이라고 부르고, 이 심리학을 ‘자기초월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단계는 개인의 자기초월일 뿐만 아니라 인간초월(transhumanistic)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단계에 이르면 인간성 정체성 자기실현 등을 뛰어넘으며, “인간적 관심과 필요를 뛰어 넘어 우주적이 된다.” 이 단계까지 다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살아가며, 더 나아가서는 심지어 다른 생명체들을 포함한 자연과 우주(cosmos) 그 자체를 위해서 살아간다. 매슬로우에 의하면, “현대는 현실, 진리, 우리 자신으로부터 감추어진 것에 대한 지식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의 개인적인(personal) 동기는 궁극적으로 비개인적인(nonpersonal)인 것이고, 인간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자기 초월적 단계에 이르지 못하면, “개인은 병들고, 공격적이 되고, 허무적이 된다.” 인간은 결국 그들 자신보다 더 크고 높은 무엇을 추구하려는 절대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설에 의하면, 인간은 크게 세 단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첫째 단계는 결핍동기에 지배받는 삶으로서 생존, 안전, 소속, 인정의 단계를 거친다. 이들 동기는 어느 정도 하위단계가 만족되어야만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또 윗 단계에 머물다가도 아랫단계의 욕구가 만족되지 못하면 다시 내려간다. 결핍동기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람은 성장동기에 지배받는 ‘자기실현’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일단 자기실현을 경험한 사람들은 비록 아랫단계가 위협을 받는다고 해도 결핍동기의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고 계속 실현의 단계에 머문다.
자기실현의 단계에 도달한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기초월’의 단계를 향해 나아가려고 한다. 이제는 단순히 자기를 실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를 초월해 모든 인류를 포함하는 원대한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더 이상 인종, 성, 종교 등 인위적인 범주는 의미가 없어진다. 더 나아가 인간 외에 생명체에도 관심이 확산되는 범우주적 존재가 되려고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