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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y up'은 자신 낮추고 부인 추켜세우는 고급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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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ry up'은 자신 낮추고 부인 추켜세우는 고급 표현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36)] 문화의 변화와 결혼양식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5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5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함께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5월 20일부터 2박 3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는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답게 가는 곳마다, 하는 말마다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중에도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윤 대통령과 함께 부인 김건희 여사와의 짧은 만남에서 건넨 대화였다. 이 만남에서 그는 윤 대통령에게 "우리는 뛰어난 부인을 얻은 행운아"라는 표현을 했다. 영어로 'married up'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 말은 물론 직업 외교관 못지않게 능수능란하게 외교적 수사(修辭)를 구사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이다. 자신(남편)을 낮추면서 상대의 부인을 추켜세우면 결국 상대도 기뻐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marry up'이라는 표현을 조금 전문적인 용어로 말하면 'hypergamy'라고 하고 '상승혼'이라고 한다. 'hyper'는 '과도하거나 지나침'을 나타내는 접두사이고, 'gamy'는 결혼을 의미한다. 즉, 'hypergamy'는 자신의 신분에 지나치는 결혼이라는 뜻이다. 결국 'marry up'은 자신에게는 과분한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을 낮추고 부인을 추켜세우는 고급 표현이다. 'hyper-'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치-'이다. '치-'는 '위를 향하여', '위로 올려'를 뜻하는 접두사다. 그래서 'hypergamy'를 우리말로는 '치혼사(婚事)'라고도 부른다.
'hypergamy'는 원래 인도와 같이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여성이 자신보다 높은 계급의 남성과 결혼하기 위한 관습을 뜻한다. 여자가 결혼 후에는 남편의 사회적 신분을 그대로 물려받기 때문에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이나 가문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집안의 여성을 귀족 가문과 결혼시킴으로써 인척 관계를 넓히고,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으려 했다.

바이든, 윤 대통령에게 "우린 뛰어난 부인 얻은 행운아"


하지만 이런 경향은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다. 2017년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진행된 연구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암컷이 일반적으로 우세한 수컷을 짝으로 선호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성들이 문화적으로 성공했거나 문화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파트너와의 결혼을 선호한다는 입장은 전 세계에서 진행한 연구가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6개 대륙과 5개 섬에 걸쳐 37개 문화권의 1만 명의 사람들을 포함한 연구에서 여성들은 모든 문화에서 남성들보다 "좋은 재정 전망"을 높게 평가했다. 29개의 표본에서, 예비 배우자의 "야망과 근면함"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중요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발표된 연구에 대한 메타 분석을 통한 연구에서도 4명의 여성 중 3명은 예비 결혼 상대에게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평균적인 남성보다 더 중요하게 평가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공약대로 청와대를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그 중에서도 내밀하게 느껴지는 영부인 집무실 '무궁화실'이 공개됐다. 접견실로도 사용되던 이 공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직전 대통령 부인들 11명의 초상 사진이 벽에 걸려있는 것이었다. 방에 그 방을 사용한 이전 사람들의 초상을 걸어둔다는 것은 그들의 공적과 과오를 널리 알려 후대에 그 방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귀감을 삼으려는 뜻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배우자의 초상을 걸어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공적은 과연 무엇인가? 물론 내조를 잘 했다고 그 공을 치하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내조가 다른 일반 부인들의 내조보다 초상이 청와대에 걸려 두고두고 후대에 기릴 만큼 특별한 것이었을까? 남편이 대통령으로 봉직하고 있을 때에는 물론 대통령의 부인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초상을 걸어둘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초상이 벽에 걸린 이유는 단지 대통령의 부인이었다는 것 말고는 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 또한 변형된 '상승혼'의 한 단면일 것이다.

직업 외교관 못지않은 능수능란한 외교적 수사 표현


'hypergamy'는 비단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물의 암컷들이 'hypergamy'를 선호한다. 즉, 모든 암컷들이 힘 있는 수컷을 선호한다. 그 이유를 사회생물학에서는 암컷과 수컷 사이의 '자손번식'의 효율적 책략의 차이로 설명한다. 생물학에서는 모든 생명체의 가장 중요한 생존 이유를 '자손번식'이라고 가정한다. 모든 생명체는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번식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 번식의 단위가 개체인지 혹은 유전자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결국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려는 것은 동일하다.

자손을 많이 번식시키는 데 수컷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가능한 한 많은 암컷을 임신시키는 것이다. 수컷에게 정자는 사용하면 또 생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다. 그리고 동물의 세계에서 임신과 양육의 책임은 일반적으로 암컷이 지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많은 암컷을 임신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암컷의 자손번식 책략은 사뭇 다르다. 암컷은 많은 수컷을 상대한다고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암컷은 한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손의 숫자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범위 안에서 많이 낳거나 적게 낳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암컷에게는 상대하는 수컷의 수보다 자신과 자신이 낳은 새끼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보호해 줄 수 있는 수컷이 더 중요하다. 그러기위해서는 당연히 힘이 있는 수컷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만약 힘이 약한 수컷의 새끼를 낳았는데 강한 수컷에게 밀려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생존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동물의 세계에서 모든 암컷이 자신보다 강한 수컷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남편 대통령으로 있을 때 부인에게 합당한 예우 해줘야


하지만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단지 생물학적인 본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본능과 마찬가지로 문화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문화는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한 집단이 선택한 생활방식이다. 환경에는 자연환경과 인공환경이 있다. 자연환경은 지리적 조건과 기후 등으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거나 바꾸기 매우 힘든 것이다. 과거에 자연환경이 사람의 삶의 양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새삼 논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인공환경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환경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등의 발달로 인한 사이버환경 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의 활용 등도 대표적인 인공환경의 예이다. 최근에는 인공환경이 자연환경보다 더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 늘어가고 있다. 문화는 빠른 속도록 계속 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괄목할만한 변화는 남자와 여자의 삶의 방식에서 나타나는 변화이다.

이제는 여성의 삶이 가정 내에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는 역할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여성들도 자신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남성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되었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여성이 구태여 남성의 힘을 빌려 사회적인 상승을 도모할 필요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제는 남편과 부인을 '일심동체'로 간주하고 남편의 지위가 곧 부인의 지위가 되는 경향도 사라지고 있다. 또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남녀가 동등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문화에서는 '동질혼(homogamy)'이 성행하게 된다.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능력 등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이다. 2015년에 는 전체 혼인의 78.5% 이상이 동질혼으로 이뤄졌다. 동질혼 비중이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한 마디로 '상승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동질혼은 여성들의 학력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어느 제도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이 있다. 상승혼이 사라지고 동질혼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문화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동질혼은 계층 간에 또 다른 분리를 낳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끼리끼리' 결혼하다 보면, 기존의 사회적 계층이 더욱 공고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결혼은 '인류지대사(人倫之大事)'이다. 그리고 문화에 따라 변한다. 어쨌든 최강국의 대통령이 자신은 좋은 부인을 얻은 운 좋은 남자라고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보기 좋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자신의 남편이나 부인을 'better half', 즉 자신보다 더 나은 반쪽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