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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클래식 발레를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춤 언어'에 관객들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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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클래식 발레를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춤 언어'에 관객들 탄성

[미래의 한류스타(135)] 한혜주(발레리나, 이화여대 무용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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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지젤의 방'(2021, 서강대메리홀)
투명한 녹색 초원을 질주하던 푸른 말을 상상한다/황금 눈동자로 해바라기를 그리며/갈퀴 속에 과거를 꽁꽁 숨기고 살았다/열정을 여러 두름으로 꿰차고/지금에 집중하며 살아가야 한다/푸른 말은 날마다 값비싼 종자가 되어갔다/예술에 라스트가 붙는다고 상상한다/순간은 진주처럼 소중해지고/홍해로 가는 길은 바빠진다/굴비가 바구니에서 소금기를 뒤집어쓸 무렵/바닷가에 수줍게 피던 해당화가 벌떼를 불러온다/여름이 가버린 바닷가에/바람 탄 동백꽃이 아재들의 개그를 즐긴다/여인은 몸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소중한 몸의 신화가 창조되고 있었다/측백나무가 토실한 열매 맺을 때/동백은 겨울을 기다리며 푸르름을 뒤집어쓰고 있었다/진솔한 시대의 아침

한혜주(韓惠朱, Han Hyea-joo)는 계해년 팔월, 아버지 한기엽과 어머니 이애란의 세 딸 가운데 둘째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예원학교, 서울예고, 이화여대 무용과를 거쳐 이화여대 무용학과에서 석사를 졸업한 뒤, 이화여대 무용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혜주는 예원학교 김나영, 서울예고 안윤희 선생에게서 발레를 사사했으며, 대학에서 발레 실기뿐만 아니라 예술철학, 새로운 실기방식, 발레 창작법, 연구방법론을 가르쳐준 이화여대 조기숙이 그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스승이라 할 수 있다. 조기숙 교수를 통해 예술이 세상에 헌신할 수 있는 방향과 따뜻한 시선을 배웠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존중하는 태도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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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지젤의 방'(2021, 서강대메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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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지젤의 방'(2021, 서강대메리홀)


한혜주는 어린 시절, 내성적인 성격으로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소극적인 어린이였다. 그녀의 부모님은 4~5세부터 대학로 어린이 연극과 뮤지컬을 보여주었고, 공연 관람 뒤에는 가족들 앞에서 인형극, 무용, 연극, 노래가 혼재된 자기만의 창작공연을 했다. 그녀의 부모는 혜주에게 내재해 있는 예술적 재능을 눈여겨보았다. 그녀의 숨겨져 있던 재능이 발현되는 순간이 있었다. 유치원 성탄절 발표회 준비에서 대사와 안무를 외우고 흡수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을 때 교사들은 하나같이 놀랐다. 그녀의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혜주에게 미술, 음악, 무용(발레) 교육을 시켜주었다.
초등학생으로서 발레를 배우던 그녀, 1990년대 초반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 볼쇼이 발레단, 키로프 발레단(현재 마린스키 발레단) 등 해외 발레단의 내한 공연이 연달아 있었다. 그 덕분에 혜주는 <지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돈키호테>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등 전막 발레 레퍼토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녀는 발레 공연을 감상한 뒤 상상 속에서 작품 구성과 안무를 떠올려 보았고, 한동안 홀로 작품 속 장면들을 재현하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이 당시 발레 전문학원은 서울 내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소수였고, 학원들이 막 생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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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이야기III'(2022, 이대 삼성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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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이야기III'(2022, 이대 삼성홀)


한창 발레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던 시기에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잠시 발레를 멈춘다. 학교생활을 하고, 방과 후에 자연의 품 속으로 들어가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던 시절이었다. 즐겁게 일상을 지내다가도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 한편이 허전함을 느끼곤 했다. 이를 자각한 뒤 그녀는 부모에게 다시 발레를 배우길 간절히 원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게 된다. 그녀의 강한 의지와 열망을 본 부모는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발레를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부모, 가족의 지지와 희생으로 발레를 다시 시작한 순간을 잊지 않고 있다.

부모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 음악 무용 교육시켜
제일 아끼는 안무작은 첫 개인발표회 작품 '四界'
몸에 내재돼 있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춤에 관심

한혜주는 ‘춤추는 주체로서의 몸’을 최우선으로 두며, ‘춤을 춘다는 것은 단순히 신체적 활동만이 아니며 춤추는 사람의 몸에는 수많은 생각, 기억, 감정, 정서, 느낌, 영성 등이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춤추는 몸에 내재되어 있는 독창적이고 고유한 춤을 찾는 것에 관심이 있고, 그녀의 춤에는 클래식 발레를 기반으로 한 동작에 자신만의 춤 언어가 보인다. 서양의 발레에서 동양적인 선과 에너지가 보이는 이유이다.

한혜주가 제일 아끼는 안무작은 첫 개인발표회 작품인 <사계(四界)>이다. 그녀는 평소 모노드라마와 판소리에서 1인의 연기자가 무대를 이끌어가는 방식에 매력을 느꼈다. 이 작품은 ‘인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홀로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책임졌다. 보통 클래식 발레의 독무가 2~3분인 점을 생각하면, 내레이션 역할을 하는 출연자가 등장하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춤추는 ‘스토리텔러’가 되어 온전히 혼자 50여 분의 춤으로 극을 이끌어간 것은 경이로운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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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몸이야기III'(2022, 이대 삼성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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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세 자매'(2022, 이대 삼성홀)


그녀는 이화여대 연구교수와 여성학과 강사를 지냈으며, 한국소매틱연구교육원 수석연구원으로서 그녀가 안무가로서 작품을 만들 때 무용수들이 동작을 모방하는 방식을 최대한 피한다. 작품 연습 초반에는 안무가의 인도로 진행되는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한다. 이 시간을 통해 무용수 각자의 고유한 움직임을 찾아내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그의 안무방식은 무용수가 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신만의 춤 색채와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춤을 통해 삶을 성찰하게 한다.

한혜주는 ‘조기숙뉴발레단’ 수석무용수(창단멤버)로서 <몸놀이>(2005), <꼼뽀지숑>(2006), <Swan Lake I-사랑에 반하다>(2008), <Swan Lake II –사랑에 취하다>(2009), <Swan Lake III –사랑에 반하다>(2010), <Swan Lake IV –사랑에 통하다>(2011), <그녀가 온다 –여신 서왕모>(2013), <감각의 몸 진화의 발레>(2014), <그녀가 논다 -여신 항아> (2015), <요지경> (2019), <코로나 시대의 나>(2021), <물끄러미, 하염없이>(2021)에 출연했다. 그녀의 삶의 근원 탐구작 <사계(四界)>(2010), <아가(雅歌)>(2010), <PER AGRUM>(2013), <순례>(2015), 몸 이야기 시리즈 <몸이야기>(2019), <몸이야기 II: 몸이 나에게 말하다>(2021), <몸이야기 III: 몸과 다시 만나다>(2022), 고전을 재해석하여 사회문제화한 <햄릿의 방>(2020), <지젤의 방>(2021), <세 자매>(2022)가 자신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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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세 자매'(2022, 이대 삼성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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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안무의 '세 자매'(2022, 이대 삼성홀)


한혜주는 이야기가 있는 모든 장르를 좋아한다. 그녀는 추리소설과 논픽션 소설을 즐겨 읽는다. 추리소설에서 작가가 설정한 촘촘한 구성과 등장인물 간에 치밀한 심리적 묘사를 위주로 본다. 논픽션 소설에서는 역사 속 인물이 새롭게 재현되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며, 작가가 어떤 지점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있는지를 배운다. 그녀는 PAF 춤연기상(2009년), 이화여대 우수학위논문상(박사학위과정)(2016년)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혜주는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장면 연출, 연기, 배우들의 호흡 등을 배운다. 한혜주는 작품을 반복해서 보는 편인데, 극의 구성과 전개 과정, 연출 방식, 배우의 표정·목소리·몸짓 등 연기 디테일을 살핀다. 고전·대중 음악 감상 시 작곡자의 주제와 콘셉트의 전개 방식과 변형에 신경을 쓴다. 그녀는 성악가가 자신만의 목소리로 곡에 생명력을 더하는 것과 무용수가 자신만의 움직임 색채를 찾는 것은 닮았다고 생각한다. 노래는 소리와 호흡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들으며, 춤출 때 사용하는 힘과 호흡 조절에 적용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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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주 발레리나


한혜주는 춤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춤으로 세상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미래의 한류 스타이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굳건히 뿌리를 내리려면 많은 배움을 몸으로 흡수하고 길고 고독한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이 시간이 충분히 이뤄졌을 때 조금씩 자신의 예술과 춤의 싹이 움트게 된다. 예술가가 성장하기 위해 활용되는 효율적인 시간 사용은 그 이상의 성과를 요구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반(反)하는 행위이다. 예술가 스스로 견디어야 하는 시간이지만 이를 지켜봐 주는 주변의 끈질긴 응원 또한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이러한 비효율적인 시간을 허용해 주었을 때 수많은 예술가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건투를 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