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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으라고 했는데"…여전히 마스크 착용하는 한국인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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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으라고 했는데"…여전히 마스크 착용하는 한국인의 심리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54)] 수치심의 문화와 마스크

정부가 대중교통, 병원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지만 여전히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정부가 대중교통, 병원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 마스크 착용 의무를 해제했지만 여전히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1월 30일부터 대중교통, 병원 등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고 원칙적으로 자율에 맡겨졌다. 이로써 지난 2020년 10월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도입된 마스크 착용 의무는 27개월여 만에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졌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실내는 물론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서구에서는 이 현상이 의아한지 미국의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가 2월 1일 “여러 아시아 국가가 마스크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한국·일본 등에서 여전히 보편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며 그 이유를 집중 조명할 정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일찍 지난해 초부터 이미 실내 마스크까지 해제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뉴욕타임스 분석 '화제'…습관화되어 바꾸기 난감


뉴욕타임스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마스크 착용이 해제됐는데도 벗지 않는 이유로 마스크 착용이 습관이 돼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마스크를 쓰면 화장하거나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 보건 당국이 여전히 착용을 권유한다는 점, 마스크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여겨진다는 점, 미세먼지 등 공해에 대한 마스크의 보호 효과 등을 꼽았다.

이 원인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화장을 하거나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점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여겨진다”고 분석한 점이다. 왜 한국 사람들은 서구인보다 더 화장을 하거나 표정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화장이나 표정 관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이다. 무인도에 혼자 있는 사람이 정성껏 화장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마찬가지이다. 즉 그 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자신이 불편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양 문화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쓰고 다닌다는 것이다. 즉 마스크를 쓰는 것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국가에서 강제로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것에 대해 큰 저항을 하는 서구의 문화에서는 남들에게 잘 보이거나 혹은 자신의 참모습을 감추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동양의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는 뜻이다.

불편함보다는 타인 의식…자신 참모습 감추기 의도

필자는 미국의 대도시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처음 대학촌을 찾았을 때 놀란 것은 가정집의 담이 낮거나 없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어도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탁 트인 넓고 시원한 느낌을 받았다. 담의 역할이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담은 단지 집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일 뿐이었다. 대조적으로 한국의 담은 매우 높다. 담은 집의 경계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안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어쩌면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보다 밖에서는 절대 안을 볼 수 없도록 격리해주는 기능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들이 가깝게 붙어있는 골목에 들어서면 너무 좁고 협소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미국의 주택들은 담이 없거나 낮기 때문에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인다.

또 하나 놀란 것은 담이 낮아서 밖에서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남의 시선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살던 기숙사 옆에는 젊은 부부들이 주로 사는 타운하우스가 있었다. 1층에 주로 대학원에 다니는 젊은 부부들이 살았는데 대부분의 부부들이 진한 애정 표현을 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야간에는 밖이 어둡고 집 안이 밝아서 특히 두 사람의 행동이 더 잘 보이는데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오히려 밖에서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쑥스러워 급히 시선을 돌리곤 하였다. 그러면서 속으로 “밤에는 커튼이라도 좀 치고 살지”라고 중얼거린다. 우리는 아파트라도 1층이나 2층인 저층(低層)에 사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같은 동(棟)이라도 저층은 집값이 싸다. 그리고 제일 선호하는 층은 적당히 높아서 밖에서는 절대로 안을 볼 수 없는 높이에 있는 층이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어야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행동을 자제하고 감정을 억제하며 다른 사람에게 흠이 잡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이런 차이는 휴대전화로 자신의 감정을 간편하게 전하는 이모티콘의 사용에서도 드러난다. 이모티콘은 얼굴 표정을 표현하는 문자로 감정을 전한다. 그런데 이때 감정을 드러내는 얼굴의 부위가 서로 다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기분이 좋을 때 “^^” 이런 모습을 사용한다. 웃는 눈 모양이다. 즉 감정을 눈으로 표현한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D” 이런 모습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입이 웃는 모양이다. 즉 입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눈의 문화’이고 서구는 ‘입의 문화’이다.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이 ‘눈’인 문화와 ‘입’인 문화에서 마스크 착용의 불편함이 어느 쪽이 더 클지는 자명하다. 당연히 입으로 하는 ‘말’이 중요한 서구 문화에서 마스크 사용은 더 답답할 것이다. 마스크는 자신의 뜻을 전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제일 중요한 도구인 입을 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마스크 착용의 신체적인 실질적 불편함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 답답함에서 오는 심리적 불편함이 더 컸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양 문화를 ‘수치심(羞恥心)’의 문화, 서양 문화를 ‘죄책감’의 문화라고 부른다. 수치심은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 좋게 보인다는 것을 인식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을 의식하면서 생활한다.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별로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죄책감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인식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죄책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양심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양심은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도덕이나 생활 규범이 내재화된 것이지만, 일단 내재화된 후에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 행동이 아니라고 위로를 해줄지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죄책감을 느낀다. 양심에 거리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에서는 당연히 체면(體面)이 중요하다. 체면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다. 당연히 남을 대하기에 떳떳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눈’과 평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곳에는 그 체면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문화에는 체면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속담이 많다. “벼룩도 낯짝이 있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한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 “냉수 먹고 이 쑤신다.” 이런 속담들의 핵심은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는 추운 것, 심지어 죽음까지도 불사(不辭)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없는 곳에서는 체면을 지킬 필요도 없다.

화려한 치장도 마스크 일종…'진솔함' 평가받는 사회 돼야


대조적으로, 입을 중시하는 문화 즉 말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당연히 수사학(修辭學)이 발달한다. 수사학은 영어로 ‘rhetoric’인데 웅변이나 웅변가를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이다. 기원전 5세기에서 4세기 초까지 아테네에 살면서 활발하게 활동한 소피스트(Sophist)들은 설득의 기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다. 설득은 상대방이 내 편이 되도록 말로 깨우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득을 잘하기 위해서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말 하나는 번지르르하게 잘 한다”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말을 잘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오히려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라는 격언이 보여주듯이 말을 적게 하는 것이 ‘과묵(寡默)’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마스크를 벗는 것에도 문화가 영향을 미친다. 마스크는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것만이 아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다 안 쓰는데 혼자 쓰기는 쑥스럽기 때문에 코로나19 전에는 독감이 유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는 마스크는 불편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서 해방시켜 주는 고마운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는 마스크를 얼굴에만 쓰지 않는다. 집이나 차, 입고 다니는 옷이나 화려한 치장(治粧)들도 모두 일종의 마스크 기능을 한다. 우리의 ‘민낯’이기보다는 예쁘게 화장한 얼굴, 마스크로 감추고 있는 삶이다. 그래서 명품일수록 더 잘 팔리고 비싼 고급차를 타야 ‘하차감’이 좋다고 느낀다. 겉모습이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허영과 허세가 인정받는 곳에서 마스크를 벗는 것은 큰 위험이다. 마스크는 위생적인 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으로 치장하지 않은 ‘민낯’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될 때, 본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진솔함’이 더 높게 평가받는 사회가 될 때 편한 마음으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