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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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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57)] 직업과 행복

대학은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또래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미래를 설계하고 행복을 꿈꾸는 곳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대학은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한 공부만을 하는 곳이 아니다. 또래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미래를 설계하고 행복을 꿈꾸는 곳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공부 좀 한다는 이과생들이 대거 의대에 진학하는 쏠림 현상이 심각해 대학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는 지적이 잦다. 이런 가운데 학원가에 ‘초등학생 의대 준비반’까지 등장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예전에도 과학고·영재학교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원들은 있었지만, 이제는 ‘초등 의대반’을 뽑는데 경쟁률이 예사로 10 대 1을 넘는다고 한다.

학원가에서는 초등 6학년 학생들은 벌써 늦었다고 불안감을 조성하면서 초등 4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자문하고 있다고 한다. 학원 관계자는 “요즘은 의대에 보내려면 최소 초등 4학년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초등 6학년 커리큘럼의 경우 중학교 1~2학년 과정을 여러 번 공부하고 중3 기본 개념까지 공부한 학생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4년 치 선행학습이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 최상위 1%를 향한 경쟁에 학원들의 ‘공포 마케팅’이 가세해 초등생 의대 준비반이라는 웃지 못할 풍경까지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일부 학원에선 초등학생보다 더 어린 유아도 의대 준비를 미리 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한 학원 대표는 “몇 년 새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연령대가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본인의 적성을 제대로 찾아볼 새도 없이 부모의 희망에 따라 의대에 가는 현상은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또 지나친 선행학습은 아이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학습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조기 교육 열풍이 불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는 ‘IQ 210의 신동’이라고 한때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웅용 씨이다. 그는 1967년 일본 후지TV의 ‘만국 깜짝쇼’에 출연했다. 후지TV는 김웅용과 도쿄대생 2명을 무대에 등장시켜 칠판에 적분 문제를 내주고 풀게 했다. 생후 4년 8개월의 김웅용은 도쿄대생들보다 먼저 문제를 풀어 환호를 받았다. 지금 60~70세인 사람들은 그가 어린 나이에 일본의 TV에 나와 엄청난 천재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의 우수성’을 느끼며 함께 기뻐했다.

흥미 하락 역효과…학원 '공포 마케팅' 가세


‘IQ 210의 신동’으로 알려진 그는 생후 3개월에 “엄마, 아빠”를 말했고, 5개월 때는 서서 걸었으며, 1세 때 천자문을 뗐다고 한다. 한글은 이틀 만에 익혔고, 3세 때는 '별들에게 물어봐라'란 책을 냈다. 아들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한 김웅용의 부모는 직접 아들을 가르치다가, 1966년 4월 아들을 한양중학교에 청강생으로 보냈다. 다섯 달 후엔 한양대 물리학과에 특별 입학시켜 공부하게 했고, 1969년엔 건국대로 옮겨서 공부를 시켰다. 이후 그의 행적은 10년 가까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979년 대입 준비를 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초·중·고등학교를 일반 학생들처럼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해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검정고시를 통해 1981년 충북대 토목공학과에 입학해 학부와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학교를 제 나이에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또래 친구도 적다. 그래서 대학 진학 후엔 못 마시는 술도 마시고 동아리 활동도 열성적으로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친구가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는 요즘 부모들의 지나친 영재교육에 대해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공부 잘하고 어려운 문제 몇 개 더 푼다고 인생이 행복해지는 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나씩 성취하면 돼요. 만족한 삶을 살려면 주변에서 도와줘야 하죠”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제일 행복했던 시기는 “제 인생의 절정기는 대학 시절이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외톨이로 지내다가 친구가 생기니 정말 좋았어요. 또래 친구를 사귀고 맥주도 마셨지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늘 혼자 있다가 드디어 저랑 공감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거죠. 동아리에 7개나 가입했어요”라고 답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은지를 묻자 “초등학교에 입학하겠습니다. 1966년에 한양대를 다니지 않고 그냥 제 나이에 맞게 초등학교를 갔더라면 이 모든 일들이 없었겠지요”라고 답했다.

최근에 또 한 사람의 ‘천재’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송유근 씨는 한때 ‘IQ 187’의 천재로 불리면서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1997년생으로 6세 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고, 대학 수준의 미적분 문제를 풀며 ‘천재 소년’이란 칭호를 얻은 그는 초등학교 6년 과정을 무려 3년 만에 마치고 중학교·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그러고는 2005년 8세의 어린 나이에 ‘최연소’로 인하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지만 3년 동안 물리학과에서 53학점, 학점은행제에서 115학점을 취득한 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대학을 그만두었다. “초끈 이론이나 빅뱅 이론 같은 것을 연구하고 싶은데 학부에서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당시 그가 내놓은 대학교 자퇴의 이유였다.

정규교육 건너뛴 신동들 "친구 없어 가장 불행"


이후 2008년 12세의 나이로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입학 허가를 받아 천문우주과학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다. 국내 각 대학에서 양자장론, 핵물리학, 위상수학 등 평소 관심 있었던 분야를 공부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가 외국 학술지에 게재했던 논문이 표절로 판명되면서 등재가 취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의 지도교수는 해임까지 되었다.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는 2019년 9월, 재학 기간 안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를 제적 처리했다.

2018년 가을, 그는 일본의 오카모토 명예교수와 함께 새로운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으며 20세의 나이로 권위 있는 천문학회지인 영국 왕립천문학회지(MNRAS)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그는 2018년 12월 입대해 2020년 8월 병장으로 제대했다. 송유근 씨의 나이는 여전히 젊다. 그리고 그 나이에 걸맞게 군복무까지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이제부터 자신의 재능을 행복하게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먼저 신동의 길을 걸어간 김웅용 교수의 전철을 밟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기를 바란다.

1938년 미국의 하버드(Harvard) 대학교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심리학적 연구가 시작되었다. 연구비를 후원한 그랜트(William T. Grant)의 이름을 따서 일명 ‘그랜트 스터디’라고 불린 이 연구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심리학적 비결을 탐구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 학생들의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의 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학생 268명을 선발한 다음에, 그들의 실제 삶에 대해 장기-종단적인 연구를 수행했다는 점이다. 장기-종단적 연구의 장점은 나이와 관련된 행동의 변화를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연구는 그 후 연구 참가자들의 삶을 약 85년 이상 추적 조사하고 있다. 현재도 진행 중인 이 연구의 공식적인 이름은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연구(Harvard Study of Adult Development)’이다. 연구 대상자가 여성 그리고 빈민가 출신의 남성들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명문대학에서도 우수하다고 선발된 학생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예상대로 연구 대상자들은 정계, 법조계, 경제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하였다. 케네디(John F. Kennedy) 미국 대통령도 이 연구 참여자였다. 하지만 모든 연구 대상자가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하버드대 '그랜트 스터디'…"좋은 대인관계가 성공 요인"


대학생 시절부터 중년기·노년기까지 이어가면서 이들의 성공 요인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공의 필수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지능·학력·연줄 등은 성공적인 삶과 별로 상관이 없다는 예상 외의 결과가 나왔다. 하버드대 남자 졸업생뿐만 아니라 지능이 높은 여성과 빈민가 출신까지도 공통적으로 나온 요인은 ‘원만한 대인관계’였다.

자녀들이 의대에 입학하기를 원해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진학반’에 보내는 부모들의 바람은 결국 자녀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일 터이다. 그렇다면 하버드 연구가 9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며 알아낸 결과를 깊게 새겨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자녀들의 행복은 의대 입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의대 진학반’에 보내는 대신,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놀게 해야 한다. 지능이 높다면 이래저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때 '천재'라고 이름을 떨쳤던 사람들의 실제 삶에서도 입증된다. 이제는 원하던 대학교수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고백하는 김웅용 교수는 만약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 대신에 초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제일 행복했던 때는 대학교에 다닐 때라고 말하면서 “친구가 행복의 비결”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랜트 스터디의 두 번째 연구책임자였던 베일런트(George E. Vaillant) 교수는 연구 결과를 다음과 같이 한 마디로 요약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대학의 점수가 이후 50년의 인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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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