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 회장을 지낸 적이 있는 필자로서는 후배 사회심리학자들이 현재 한국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제점을 뽑고 그 이유를 찾아내려는 노력에 고마움을 느낀다. 심리학자들의 진지하지만 외로운 연구 활동의 결과를 실생활에 적용하고 어려운 사회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보탬이 된다면 그 나름대로 학문 활동의 보람이 배가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사회심리학자들이 현 한국 사회에서 주목할 현상으로 뽑은 ‘집단 극화’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 글을 쓰는 데 사회심리학회에서 집단 극화에 관해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많이 참고했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집단 극화’ 현상을 이해하기 바란다.
새 근거 확보로 의견 강화
타인보다 우위 차지 심리
집단 극화가 일어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주된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설득력 있는 주장(persuasive arguments)’ 가설이다. 설득력 있는 주장은 주제에 대한 특정 입장이나 관점을 뒷받침하는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제시하는 진술 또는 주장이다. 설득력이 있으려면 증거나 논리 및 추론에 기반한 주장을 해야 한다. 이런 증거나 논리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토의하게 되면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 새로운 근거들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새롭게 확보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의견을 더 강하게 견지할 수 있게 된다.
둘째는 ‘사회 비교(social comparison arguments)’ 가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확한 자기 평가를 얻기 위한 내재적 동기가 있다. 개인은 사건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이고 자신을 정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자신의 능력과 의견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어떤 영역이든 타인보다 우위(優位)를 차지하고 싶어 한다. 집단 내에서 토론할 때도 집단에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쪽으로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나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의견이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한다.
사회 비교 이론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유사성에 대한 욕구’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의견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능력이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이때 다른 사람들은 나와 더 유사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도 다른 사람과 더 유사해지도록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더욱 극화되어 간다.
셋째는 ‘사회 정체성(social identity)’의 영향이다. 사회 정체성은 사회적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지각에 기반한 자기 개념의 일부이다. 사회적 행동은 개인 간 행동과 집단 간 행동 사이의 연속체 상에서 변화한다. 완전한 개인 간 행동은 개인의 특성과 두 사람 이상의 사이에서 존재하는 개인 간 관계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행동이고, 완전한 집단 간 행동은 둘 이상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사회적 범주 소속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집단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구성원은 집단이 어떠한 주제에 대해 극단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인식하면, 자신의 입장도 집단의 입장과 일치시키려 한다. 또한 사람들은 외집단 구성원의 의견보다는 내집단 구성원의 주장에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며, 내집단을 외집단과 구별하고자 하는 동기로 인해 더 극단적인 방향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집단 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사회 현안을 해결하려 할 때 그 현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집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집단 극화의 기본 전제가 ‘비슷한 의견을 가진 동질 집단’이니까 집단 극화 현상을 막으려면 당연히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집단에 포함되어야 한다. 만약 비슷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로만 집단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면, 당연히 반대되는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맡은 사람을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모두가 찬성하는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다. 악마의 변호인을 통해 집단의 의견이 극단으로 치우치는 일을 방지하고, 토론을 활성화하거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는지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고대로부터 ‘산헤드린(Sanhedrin)’이라는 최고 의결기관이 있었다. 이 최고 법정 기구에는 대제사장 포함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장로 등 백성의 대표 71인으로 구성되는 것이 전통이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독특한 관례가 하나 있었다. 만약 어떤 피고의 유무죄를 가리는 결정을 내려야 했을 때, ‘만장일치’가 나오면 그 결과에 대해 무효를 선언한다. 그 결과를 아예 불법으로 간주하고, 심지어 그 피고를 풀어주었다는 기록까지 있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대인의 지혜가 지금도 세계를 호령하는 막강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대의견 말할 사람 필수
완전 다른 의견 경청해야
집단극화 탈피할 수 있어
다양한 집단원으로 구성되면 개방적인 토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들이 제약 없이 자유롭게 개진되어야 ‘집단 사고(Group Think)’의 위험에 빠지지 않을뿐더러 ‘집단 극화’ 현상을 방지할 수 있다. 미국 케네디 정부 최악의 판단이라 일컬어지는 쿠바 피그만(The Bay of Pigs) 침공은 매우 통제적인 환경에서 결정되었다. 집단의 리더가 의제와 질의 내용을 결정하고 일부 회의 참석자에게만 의견을 물어 다른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 개방적인 토론 분위기여야만 현안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공유되어 집단 극화를 방지할 수 있다.
'집단 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끔은 나와 생각이 같은 집단에서 일부러 빠져나와 나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학회는 조언하고 있다. ‘집단 극화’가 동질(同質) 집단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면 개인적으로 이질(異質) 집단에 속해,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 보아야 한다. 일종의 ‘자기 객관화’ 현상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동일한 집단에서는 볼 수 없는 사안의 이면(裏面)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보는 자기 객관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성숙한 사람만이 할 수 미덕(美德)이다. 그래서 '집단 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과 교육이 중요하다. 먼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것을 포용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이것은 구호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경험과 교육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다양한 집단 간의 이해와 타협을 이끌어내는 대화와 협상 방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