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후 동서로 분단됐던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되었다. 독일 통일의 준비 과정과 통일 과정 그리고 통일 후의 과정을 살펴보면 진정한 통일은 참 지난한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적‧경제적‧정치적 통일의 과정도 힘들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심리적 통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지금도 다른 영역의 통일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가지만, 아직도 과거 동·서독 사람들의 심리적 통일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아직도 통일이 된 것을 불만으로 여기고 통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와 같은 그 어느 관계보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완전한 심리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말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있다. 그 뜻은 문자 그대로 ‘한마음 한 몸’이라는 뜻으로, 하나처럼 서로 굳게 결합되어 있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의미한다. 그래서 바람직한 부부를 일컬어 ‘일심동체’인 상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부부들은 자신들이 절대로 ‘일심동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또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꼭 ‘일심동체’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심리학은 ‘개인차’를 기초로 하는 학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에게 개인차가 없다면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요즘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기(器機)가 휴대전화이다. 휴대전화는 같은 회사에서 출시된 것이라면 기능이나 디자인이 다 동일하다. 만일 어느 한 개가 다른 것들과 다르다면 이는 개인차가 아니라 ‘불량품(不良品)’이다. 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일란성 쌍생아라도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동일할 수는 없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용모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성격이나 가치관도 똑같을 수는 없다. 이는 사람이 타고난 유전자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차의 근원을 경험적으로 밝히는 학문이 심리학이다.
한쪽만 살리는 통일보다는 양쪽 인정하는 '통합' 필요
사람의 본질이 이처럼 각각 고유(固有)하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 이외에 본질적으로 같을 수는 없다. 만약 부부가 갈등이 하나도 없이 산다면 이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잠재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만약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을 멈추면 그것이 바로 상징적으로 죽은 것이다. 전도양양했던 젊은 정치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더 이상 정치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 때 그 정치인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인으로서의 잠재력을 더 이상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정치생명은 죽은 것이다.
이런 연유로 사실상 ‘심리적 통일’, 즉 다른 두 개체를 심리적으로 하나로 만든다는 것은 한쪽을 죽이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상대와 함께 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가치관이 다른 상대와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기꺼이 포기하는 존재는 없다. 그리고 없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가치관은 삶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조직이나 문화도 ‘통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조직이나 문화에서도 조직원 사이에 서로 공유하는 동일한 가치관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건 조직이건 가치관이 다른 존재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심리적 ‘통일(統一)’이 아니라 ‘통합(統合)’을 이루는 것이다. 비슷해서 혼동되기도 하지만 분명히 구별해서 사용해야 할 단어가 ‘통일’과 ‘통합’이다. 통일은 영어로 ‘unification’이다. 이 뜻은 ‘하나로(uni) 만들다’라는 것으로 ‘통일’과 동일하다. 하지만 통합은 영어로 ‘integration’이다. 통합은 ‘여러 요소들이 조직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통일과 통합은 하나로 만드는 것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통일은 다른 것들을 모두 동일하게 만들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인 반면, 통합은 다른 것들을 모두 인정하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즉, 통일과 통합은 다른 것을 인정하는지 여부에서 차이가 난다. 결혼 생활에서 통일을 이루고 싶다면 두 사람의 차이를 제거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대조적으로, 결혼 생활에서 통합을 이루고 싶다면 먼저 두 사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차이는 함께 가야 할 부분…더 벌어지기 전 남북통일 빨리 이루어야
필자의 부모님은 평양에서 피난을 나오셨다. 그래서 일 년 내내 평양냉면을 즐겨 드셨다. 필자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유명하다는 평양냉면집을 순례하면서 그 맛을 즐겼다. 하지만 아내의 부모님은 함흥에서 피난을 나오신 분들이다. 당연히 아내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함흥냉면을 즐겼다. 문제는 결혼 후 냉면을 먹을 때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중 어느 것이 더 맛있는지에 대해 아내와 논쟁을 하곤 했다는 것이다. 필자의 주장은 냉면은 면 맛으로 먹는 것인데 함흥냉면은 회와 매운 양념을 먹는 거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동치미 국물에 국수를 만 것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것이었다. 몇 년 논쟁을 벌이다 결국 형편에 따라 먹는 것으로 타협했다. 오래 먹다 보니 필자도 함흥냉면의 맛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아내도 평양냉면의 맛을 즐기게 되었다. 이제는 어느 냉면이 더 맛있는지에 대한 논쟁 자체를 안 한다. 그 논쟁은 필경 불필요한 갈등을 낳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둘이 함께 냉면을 먹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통일과 통합의 큰 차이는 나와 다른 점에 대한 시각의 차이이다. 통일을 원하면 나와 다른 것은 제거해야 할 불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이상 차이가 벌어지기 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빨리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차이가 더 벌어지고 통일하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차이는 없애야 될 부분이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부분이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 부부가 ‘냉면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하나만 먹어야 되는 것이고, 다른 것은 없애야 된다. 내가 선호하는 냉면 외에는 맛이 없기 때문이다. 대조적으로 ‘냉면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각의 냉면 맛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즐기는 것이다.
남과 북은 하루빨리 통일되어야 한다. 이것은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소원’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심리적인 면에서는 통일보다는 통합을 인정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고,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과 경험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사회 현실을 보면 먼저 우리 사회 안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심리적 통합의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극과 극으로 갈라져 서로 상대를 없애야 할 적폐로 단죄하고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남과 북의 평화적인 심리적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망상(妄想)에 불과하다.
동시에 이미 우리 사회에 와있는 북한의 문화와 가치관을 경험한 탈북자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탈북자는 빨리 한국 문화에 적응하게 만들어야 하는 심리적 통일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통일 이후 심리적 통합을 이룰 교육과 경험을 앞당겨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필요한 대상으로 인정해야 한다. 탈북자들과 함께 남과 북의 심리적 통합을 앞당겨 맛볼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