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월 5일은 ‘어린이날’이고, 8일은 ‘어버이날’ 그리고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비록 가족은 아니지만 가족만큼 소중한 스승의 은공을 기리는 ‘스승의 날’은 15일이다. 가정은 부부, 부모, 자녀 등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일컫는다. 때로는 입양으로 가족이 되기도 한다. 가정은 인간에게 가장 친밀한 혈연 집단인 가족이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본거지다. 즉, 가정은 단지 건물·가재도구·시설 등이 구비돼 있는 물질적 장소와 환경만을 뜻하지 않고, 의식주를 포함한 인위적 환경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생활 공동체다.
삶의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가르침을 주는 종교(宗敎)도 당연히 가정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물론 각각의 종교는 그들 나름의 교리에 따라 ‘가정’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행복한 가정을 성취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가정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체이고, 그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행복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돼 있다. 구약은 〈창세기(創世記)〉로 시작된다. 〈창세기〉는 문자 그대로 ‘유일신 야훼가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태초에 야훼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해 천지를 창조한다. 창조는 7일 동안 이어졌다. 창조의 마지막인 여섯째 날 야훼 자신의 형상을 본떠 흙을 빚고 생명을 불어넣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탄생시켰다. 아담이 짝이 없어 외로워하자 최초의 여성 하와를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이 만나 이룬 것이 인류 최초의 가정(家庭)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은 위 설명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종교의 교리는 과학적 탐구로 사실 여부가 가려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교리는 ‘믿음’의 대상이지 ‘탐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이 글에서는 〈창세기〉에서 설명하는 ‘인간 창조’와 ‘가정의 탄생’ 이야기 속에 내재된 비유적 의미와 교훈을 찾아볼 뿐이다.
부모를 존경할 수 없다면 공경하는 것 역시 불가능
남자와 여자가 탄생한 후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 것”이라고 첫 가정의 탄생을 설명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중요한 점은 “부모를 떠나”이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사실 일반적인 의미의 부모가 없다. 즉, 생물학적 부모나 하다못해 법적인 부모도 없다. 둘 다 야훼가 창조했기 때문이다. 만약 상징적으로라도 야훼가 부모라면 야훼를 떠나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야훼가 인간을 창조한 후 자신을 떠나라고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은 앞으로 가정을 이루어 갈 부부들에게 주는 비유적인 교훈일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많은 가정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갈등을 겪고 있는 부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요즘 현실이 예전보다 더 살기 어려워 부부간의 불화를 더 많이 만들어 가는지, 혹은 예전에는 참고 있어서 드러나지 않던 갈등이 표면화하는 것인지는 아직 정확히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부부간의 갈등이 많다는 것은 객관적인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필자가 운영하는 상담소에 부부 상담을 문의하거나 직접 상담을 청하는 내담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가 1878년에 발표한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비슷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읽는 독자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현재 부부간의 갈등으로 힘들어하며 상담실을 찾는 부부들의 표면적인 불화의 원인은 각자 다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해 보면 대부분의 원인은 결국 원가족과의 관계 때문인 것으로 드러난다. 즉 부모와 심리적 독립을 하지 못한 결과임이 드러난다.
부부 상담 분야에서 회자되는 말이 있다. “부부가 누워 있는 침대에는 사실 6명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남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으로는 부부의 침실에 두 사람밖에 없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부부만이 있어야 하는 내밀한 공간에도 부모가 있다는 것이다. 즉 부부 두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부모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신체적인 독립은 어머니의 몸에서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에 달성된다. 이후에는 어머니와 하나가 되고 싶어도 더는 하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심리적 독립은 다르다. 신체적 독립처럼 단번에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훨씬 더 성장한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한평생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사람은 그만큼 부모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생존할 수 있는 취약한 아동기를 보낸다. 그리고 청소년기부터 부모와 심리적 독립을 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된다. 이 과정을 '투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만큼 격렬하고 힘들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일방적으로 부모에게 의존적인 관계를 가지지만, 청소년기 이후에는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다가 더 나이가 들면서 부모와 자식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맺는다. 엄밀히 말하면 부모와의 완전한 심리적 독립은 한평생 불가능할지 모른다. 마음속에 내재하는 부모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다만 결혼 후 배우자와 함께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만이라도 독립이 되면 된다. 부모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이 이루어진 후에야 비로소 배우자와 “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개입할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창세기 이후에는 〈출애굽기(出埃及記)〉가 나온다. 출애굽기는 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내용을 다룬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십계명(十誡命)’이 나온다.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야훼로부터 직접 받았다는 열 개의 계명으로 되어 있는데, 1번에서 4번 계명까지는 야훼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그리고 나머지 6개의 계명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룬다. 그리고 야훼와 인간 간의 관계를 다루는 내용을 연결하는 5번째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것이다.
부모와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부부간 근본 불화도 해결
부모를 떠나는 것과 부모를 공경(恭敬)하는 것은 일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있어야 공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맏아들이 부모님을 모시면서 한집에 거주한 이유이다. 공경의 사전적 의미는 ‘공손히 받들어 모심’이다. 일반적으로 공경한다는 것은 ‘우러러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모를 무시하면서 공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공경하려면 먼저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를 존경할 수 없다면 공경할 수도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자식들이 마음속으로는 부모를 공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부모에게 우러러볼 수 있는 면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어렸을 때 무시를 당했거나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의 기저에는 부모와 자신을 적절하게 분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경의 정확한 심리적 의미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지나치게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상과 적절한 심리적 거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신의 자녀보다 옆집의 자녀를 훨씬 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지나친 감정적 개입을 자제할 수 있다. 그것은 옆집 자녀와 심리적으로 더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우리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공통의 유대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가족은 사랑, 존경, 상호 이해로 결합되어야 한다. 가족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의 부모를 떠나 서로 연합하면서 시작된다.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부 사이가 원만해야 한다. 부모와의 심리적 독립은 물론이고, 부부 사이에도 적절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녀와도 적절한 거리를 두며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부모만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공경해야 한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동일체도 아니다. ‘떠남’과 ‘공경’은 모든 가족관계에서 다 적용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