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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와 노년기 사이 새로운 '인생의 황금기' 누리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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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와 노년기 사이 새로운 '인생의 황금기' 누리는 시기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2)] 숙년기(熟年期)의 출현

인생 생애발달 단계에서 중년기와 노년기 사이의 숙년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첫 직업에서 퇴임한 뒤 비로소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인생 후반기의 황금 시기가 숙년기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인생 생애발달 단계에서 중년기와 노년기 사이의 숙년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첫 직업에서 퇴임한 뒤 비로소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는 인생 후반기의 황금 시기가 숙년기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관습적으로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전 생애를 크게 5단계로 나눈다. 이 단계들은 아동기(兒童期), 청소년기(靑少年期), 청년기(靑年期), 중년기(中年期) 그리고 노년기(老年期)이다. 그리고 아동기를 더 세분하면 영아기(嬰兒期), 유아기(幼兒期), 유년기(幼年期) 그리고 아동기(兒童期)로 나눌 수 있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같은 단계로 전 생애를 구분하고 있다.

전 생애 발달심리학에서 이렇게 시기를 나누는 이유는 각 시기는 그 전(前) 시기와 후(後) 시기와 다른 발달 특징이 있고, 그 시기에 해결해야 하는 발달 과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각 시기의 발달 특징과 발달 과제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져 있기도 하지만, 인생의 후반부로 갈수록 사회문화적 환경에 따라 변해왔다. 우리의 발달단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환경과 여건에 따라 항상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소년기가 생긴 것은 긴 인류의 진화 역사 속에서 또 한국의 역사 속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04년에 출생한 필자의 할머니는 15세에 결혼해서 18세에 아들을 낳았다. 평양 근교의 농촌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않았다. 지금으로 보면, 중학교 2학년에 결혼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된 것이다. 필자의 할머니가 특별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의 여성은 그 나이보다 일찍 결혼해서 아기 엄마가 되는 시절이었다. 현재로 보면 전형적인 청소년 시기에 이미 결혼해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 보냈으니 필자의 할머니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여성들에게는 딱히 청소년 시절이 있지 않았다. 단순히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직행하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1924년에 출생한 필자의 어머니는 평양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리고 졸업 후 20세에 결혼했다. 필자의 어머니에게는 당연히 청소년기가 있었다. 담장을 이웃하고 있는 남학교 학생들이 방과 후 따라오는 경험도 하였고, 몰래 흠모하는 남학생으로부터 쪽지도 받았다. 즉 5000년 역사에서 필자의 어머니부터 청소년 시기를 겪었다. 청소년기는 불과 100년 전부터 한국인의 삶에 나타난 시기였다.
전통적으로 ‘어른’은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많더라도 혼례를 치르지 않은 처녀 총각은 어른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혼례를 치른 후 머리를 올려야 비로소 어른 대접을 받았다. 또 가족을 부양할 직업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결혼하는 시기와 직업을 갖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필자의 아내는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에 결혼했고, 필자의 딸은 대학원 두 곳을 졸업한 후 34세에 결혼했다. 그만큼 자신이 원하는 직장을 찾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처럼 전 생애를 구분하는 단계는 새로 생기기도 하고, 그 진입 시기가 느려지기도 한다.

필자의 가족사를 이처럼 밝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분류하던 발달의 각 시기가 과연 현재 우리의 삶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적합한 틀인지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발달은 청년기에 끝나고, 그 이후에는 눈에 띄는 발달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릭슨(Erik Erikson)이 전 생애에 걸친 자아 발달을 연구하면서 영아기에서 노년기까지 심리사회적 발달을 8단계로 제안한 후 출생에서 사망까지 전 생애를 걸쳐 사람은 발달한다는 견해가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는 8단계, 즉 영아기, 유아기, 유년기,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그리고 노년기에 걸친 심리사회적 변화를 제시했다.

숙년기는 양육·경제력에서 자유로워


하지만 이 이론도 1980년도에 소개된 것으로 이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사회문화적 변화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괄목할 변화는 인류의 고령화이다. 옛적에는 꿈에나 그려볼 수 있었던 장수(長壽)가 이제는 현실로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회갑연(回甲宴)을 성대하게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다. 사회문화적인 환경이 변하면 우리의 삶도 따라 변한다. 그래서 이제는 수명이 길어진 현재에도 전 생애를 8단계로 나누는 것이 과연 적합한지 꼼꼼히 따져볼 때가 되었다.

0세의 출생자가 향후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연수를 ‘기대수명’이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에는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62.3세였다. 그 후 1980년에는 66.1세, 2020년에는 83.5세였다. 2021년 현재 남자는 80.6세, 여자는 86.6세로 평균 83.6세이다. 이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은 1970년에 비해 21.3세를 더 살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는 ‘고령사회’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하지 않을뿐더러 100수(壽)를 누리는 노인들도 가끔 볼 수 있다.

일반 회사의 경우 대부분 정년이 60세로 정해져 있지만 정년을 채우고 퇴임하는 경우는 10% 안팎에 불과한 형편이다. 평균 49세에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을 찾는다. 그만큼 첫 번째 직장을 천직으로 여기고 퇴임할 때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은퇴하는 삶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이지 않게 되었다.

50세 이후 새로운 직장을 찾아 자기 자신을 가꾸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제2의 경력을 가지는 중년을 ‘신중년(新中年)’이란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이제는 전통적인 중년과 노년 사이에 새로운 발달단계를 규정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는 단순히 첫 번째 직업에서 퇴임하는 시기까지 중년기로 여기고, 퇴임 후에는 노년기로 치부하는 생애관(生涯觀)은 더 이상 100세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이제는 처음 직업을 그만두고 다음 직업을 가지는 시기를 따로 독립적인 시기로 규정하는 것이 전 생애를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할 것이다.

60~75세까지 인생의 절정기


필자는 중년기와 노년기 사이에 ‘숙년기(熟年期)’라는 새로운 시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직업을 퇴임하고 완전히 직업에서 물러나는 시기까지를 ‘숙년기(熟年期)’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 시기는 자녀 양육과 독립적 삶을 살기 위한 경제적 책임 등에서 비교적 자유스러워진 때부터 더 이상 어떤 종류의 경제적인 일에서 물러나는 시기까지를 일컫는 시기이다. 생물학적 나이로 언제 시작해서 언제까지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다. 인생의 중반 이후부터 생물학적 나이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숙년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인생에서 제일 무르익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자 ‘숙(熟)’은 ‘익다, 한도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숙년기는 인생에서 제일 무르익은 시기이자 절정에 다다른 시기라는 의미이다. ‘자기실현’을 삶의 목표라고 설명한 정신의학자 융(Carl Jung)은 우리 삶에서 중년과 노년이 되어야 비로소 자기실현을 이룰 수 있다며 인생 후반기 삶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에 따르면, 자기실현은 그동안 별로 빛을 보지 못한 우리 성격의 억눌렸던 부분들이 힘을 얻어 삶의 전면에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성격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함께 있는데 젊은 남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남성성이 두드러지고 여성성은 억압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중년 이후에는 남자에게도 여성성이 표면에 나타나게 된다. 융에 따르면 성숙한 성격은 어느 한 면도 억압되지 않고 다 같이 나타나서 원(ring) 모양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숙한 성격을 다른 말로 ‘원만(圓滿)하다’고 표현한다. ‘원만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성격이 모난 데가 없이 부드럽고 너그럽다’는 것과 ‘서로 사이가 좋다’는 것이다. 모든 특성이 동일한 강도로 표현되는 것이 모가 나지 않은 것이고, 그 결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그런 의미에서 삶의 절정에서 이제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중년과 노년 사이의 시기를 ‘숙년기’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숙년기에는 일의 의미가 단순히 경제적 소득이나 사회적 인정의 욕구를 뛰어넘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해진다. 진정한 자기실현의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다.

나보다 남 위해 사는 새 삶 중요


매 시기 이루어야 할 과제가 있고, 그 과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는 대상이 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의 만남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교사’를, 청소년기에는 ‘친구’를, 청년기에는 ‘배우자나 연인’을, 중년기에는 ‘자녀’를 만나는 것이 각 시기의 발달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중요하다. 숙년기는 진정한 자기실현을 하는 시기이므로 ‘나’, 즉 ‘자신’을 만나야 한다. 젊었을 때는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양육하고 출세를 하기 위해 대부분의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숙년기에는 그동안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절정(絶頂)의 시간을 맛볼 수 있다. “이제야 인생이 무엇인지 알 만한” 시기가 되는 것이다.

100세를 넘기고도 왕성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하는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명예교수는 “60대 초중반에 은퇴하면서 삶도 마무리로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은데 반대입니다. 이때부터가 진짜로 인생의 황금기입니다. 나보다 남을 위해 살면서 보람찬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60세가 되면 인생이 사실상 끝난다고 인식했다. 교육을 받고 60세까지 일을 하는 2단계로만 살아왔다.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늙고 만다. 이제는 60세 이후 새로운 삶을 꾸리는 3단계로 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60세에서 75세까지가 인생의 절정기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