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행동에 무의식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준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공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마치 눈에 보이는 신체를 연구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명한 점일 것이다. 어느 대상이든지 학문적으로 연구하려면 그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 한다. 해부학의 도움으로 우리의 몸의 구조를 알고, 생리학의 도움으로 기능을 알게 되면서부터 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프로이트는 우리 마음이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 요소는 이드(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 그리고 이 요소들의 역동(力動)에 의해 행과 불행이 결정된다. 이 세 요소가 서로 통합돼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하면 사람의 마음은 평안하고 삶의 목표를 이루는 방향으로 순항하고 그 결과 즐거워진다. 반대로 이 세 요소가 서로 다투고 지속적으로 갈등을 야기하면 정신적으로 병들게 된다.
내 생각이 절대 옳다는 건
미성숙한 존재 시인하는 꼴
프로이트의 이론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치료이론을 발전시킨 정신의학자 프리츠 펄즈(Fritz Perls)는 ‘상전(上典, top dog)’과 ‘하인(下人, under dog)’이라는 개념으로 정신역동을 설명하고 있다. ‘게슈탈트(Gestalt)’ 치료라고 알려진 이 이론에 따르면, 마음속에는 분열되어 서로 갈등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들이 서로 대화하도록 해 내면을 통합할 수 있게 도와주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거부하고 부인해 왔던 성격의 일부 기능을 통합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이때 힘이 강한 쪽을 ‘상전’이라고 칭하고, 힘이 약한 쪽을 ‘하인’이라고 비유적으로 부른다. 우리는 양극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위에서 이 양극적 성향 중에 어느 한 측면을 강화하면 그 성향은 ‘상전’이 된다.
동시에 한 측면을 비판적으로 보거나 처벌하면 그 측면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거나 억압하여 자신의 내부에서 소외시켜 버린다. 이 부분을 비유적으로 ‘하인’이라고 부른다. 하인은 억압되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비록 힘은 적고 목소리는 약하지만 틈만 나면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 욕구가 충족되도록 요구한다. 그것도 본래적으로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둘 간의 대립이 문제인데, 갈등하는 내부 부분들 간의 대화를 유도해 합리적인 해결책을 낳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게슈탈트’ 치료의 목적이다. 이 치료법은 내면에 존재하는 갈등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상전’과 ‘하인’을 통합하기 위해 ‘두 의자(two chairs)’나 ‘빈 의자(empty chair)’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두 의자’ 기법은 지금까지 억눌려 크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하인’이 자신의 요구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법이다. 강압적인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인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 부인은 남편에게 순종하는 ‘정숙한 부인’의 역할을 하라는 ‘상전’의 목소리에 눌려 남편에게 항의하고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고 싶어 하는 ‘하인’의 목소리를 억제하고 있다. 이 결과가 화병으로 나타나 결혼 생활도 불행하고 건강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 경우 한 의자에 앉아서는 ‘상전’의 목소리를, 그리고 다른 의자에서는 ‘하인’의 목소리를 내도록 해서 남편에 대한 요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이 과정을 통해 내면에서 혼란스러워하던 갈등이 외부로 표현되면 이 부인은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된다.
‘빈 의자’ 기법은 빈 의자를 두고 마치 자기와 다른 중요한 사람이 그곳에 앉아있는 것처럼 가정한 다음, 그 사람에게 자신이 하지 못했던 감정이나 생각을 두려움 없이 표현하도록 하는 것이다. ‘빈 의자’에 다양한 대상들을 앉힐 수 있다. 남편에 대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인의 경우 빈 의자에 남편을 앉히고 실제 생활에서는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혹 두려워서 표현을 잘못하는 경우 옆에서 힘을 내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치료가 될 수 있다.
모든 심리치료 및 상담의 근본 목적은 다양한 우리 성격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없애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없애려고 한다고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 자체가 성격의 특성이고, 그 성격이 반영된 우리 삶의 본질이고 특성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통합을 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인정하고 타협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전’과 ‘하인’ 모두 우리가 잘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인의 목소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표현하도록 허락하고 조장하여 서로 타협하고 화해해야 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개인의 심리적 치료를 위해 고안된 다양한 이론들과 기법들은 현실에서 상담의 영역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삶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성숙한 부부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부부관계에서도 상전과 하인이 존재할 수 있다. 한쪽이 강압적이고 주도적인 반면 다른 한쪽이 위축되고 숨죽이며 산다면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실제로는 화목하지 못하다. 하인의 역할을 하는 쪽이 심리적으로는 죽어 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가치 지향하는 정당
타협없이 욕구만 분출하면
'진흙탕 개싸움'으로 전락
정치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어사전은 정치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치는 각각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다양한 정당들이 경쟁하는 것이다. 그중 선거를 통해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은 여당(與黨)이 되고, 소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은 야당(野黨)이 된다. 내각책임제 정치제도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여당에서 정권을 잡고 야당은 이를 견제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린다. 여러 정당이 경쟁하고 다양한 정당에서 대표로 선출된다고 해도 연정이나 합당 등의 수단을 통해 결국 여당과 야당으로 이분화된다. 각각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양대 세력이 권력을 가지려고 다투고 겨룬다. 권력을 가져야만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여당이라면 야당의 요구를 들어주고 타협하면서 협조를 구한다. 하인인 야당은 자신들의 요구를 끊임없이 드러내지만 여당과 타협하면서 현실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다음 기회에 여당이 되면 채우려고 노력하면서 더 큰 목적에 순응한다.
상전과 하인이 서로 상대를 인정하고 통합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이 평화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국가에서도 상전과 하인이 통합되지 않으면, 더 큰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없고 계속 진흙탕의 개처럼 볼썽사납게 으르렁대고 싸우게 된다. 통합하기 위해서는 다투면서 동시에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성숙한 마음은 상대를 물리치고 완전히 제압해 없애는 것이 아니다. 서로 통합(統合·integration)하는 것이다. 통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것이 정상(正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 주장만이 절대선이고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미성숙한 것이다. 인간은 전지전능할 수 없는 존재이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어떤 가치이든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동시에 그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나 도구 역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할 때 비로소 성숙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이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동시에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도 결국은 자신을 실현하고 행복해지려는 목표는 동일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와 다른 존재는 없애야 될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인정하고 타협하고 화해할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가치나 견해에 자신이 없다면 자신과 다른 의견을 철저하게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 없을 때에만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상적(理想的)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 광적(狂的)으로 집착한다. 이런 현상을 ‘전체주의’라고 부른다.
미성숙한 정치를 지켜봐야만 하는 국민은 불행하다. 허구한 날 ‘진흙탕 개싸움’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진흙탕의 개싸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볼썽사납게 싸우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정당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하지만 그 양상이 가치와 목적을 상실하고 싸움으로만 전락하면 ‘진흙탕의 개싸움’이 된다. 국민은 허구한 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진흙탕의 개싸움’을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