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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산책 (21)] 바람직한 연주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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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산책 (21)] 바람직한 연주자의 모습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영화 '남한산성' 작곡)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영화 '남한산성' 작곡)
바른 연주에 대한 인식은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악곡을 정확히 이해하고 작품의 예술성을 바르게 파악하여 실행해야 한다. 연주의 의미가 악보에 나타난 실제의 음을 재현시켜야 하므로 작곡가의 작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연마된 연주가는 월등한 음악성과 세심한 주의력을 갖추고 작품을 최상의 위치로 끌어 올릴 수 있다. 연주자는 고도로 팽창된 기교로 해석을 과장하는 일과 유사한 현상이 있으므로, 연주를 거듭할 동안 자신의 예술성을 평가받아야 한다.
비평가는 연주가의 이런 노력을 놓치지 않고 작품 이면의 예술성을 어느 정도 표현했는지에 대해 예리한 평가를 한다. 연주자와 비평가는 마치 톱니바퀴와 같은 연계성을 갖는다. 이런 이치가 모자란다면, 생명력 있는 연주와 예술적 가치는 구할 수 없다.

작곡가는 악보에 표시된 그대로 연주하기를 규정하지만, 연주가는 표현성의 한계에 부딪혀 사실상 70% 이상만 접근해도 작곡가의 취지를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그만큼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되기는 수월하지 않다.
노련한 연주가일수록 예술적 의지와 표현성이 강해 악보에 의존하기보다 곡의 내면적 해석에 접근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자 점차 작곡과 연주가 철저히 분열되어 독립적인 역할에 충실하게 되었고 주관적 해석의 중요성과 한계에 신중하게 되었다.

작곡가는 작품에 대해 세밀한 표현과 작곡가의 스타일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작곡가와 연주가 사이의 보이지 않는 분쟁도 이런 점에서 빈번하다. 비평가는 작곡가와 연주가의 상호 관계에서 빚는 마찰을 조율하는 역할과 문제점을 해결하는 ‘음악 실천’을 해왔다.

작곡가-연주가-비평가는 일직선상에서 연계성 있게 놓여 있다. 음악이 정상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가치 있는 노력이 필요하며 분업화된 세 분야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작곡을 말할 때 무엇보다 사상적인 것과 이론적인 것을 바탕으로 정서적인 체험으로 주로 문학적인 소재를 갖고 음악화하는 데 그쳤다. 작곡가는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연주가들에게 부탁할 때도 강력한 주관성을 갖는다.

바람직한 연주자의 모습은 작품을 자기의 인격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자아와 성격의 빛을 거울에 비추듯 재연해야 하고, 작품에 대해 작곡가와 연주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 연주가는 객관적인 해석에 무게를 두고 연주해야 한다.

요컨대 연주의 객관성과 주관성에 관한 문제는 연주가가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악보에 충실한 것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작품이 너무 과도하게 난해하면 그 작품은 일부 전문 연주가에 국한되기 쉽다.

현대 음악의 기교적 발달은 전문 연주가들의 대거 출현을 부추겼고, 음악계의 새로운 발전을 가져왔다고 본다. 극도로 연주하기 힘든 작품은 전문 연주가들에게 익숙하여 아마추어 연주가에겐 기피 하는 현상까지 생긴다.

현대곡을 연주할 때, 간혹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연주가가 난해한 작품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채 악보에 치중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연주회는 청중에게 매우 위험한 시도이며 체험이다.

연주는 행복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호흡이 바람직한 연주의 원동력이다. 연주가 단순히 연주자의 무대예술로 끝난다면 한정된 시간예술 안에서 연주의 재정립은 불가능하다. 연주 평은 시대 변천에 따른 연주에 대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연주와 비평은 긍정과 부정의 상호작용을 갖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연주자는 비평이 반영될 때, 비로소 유기적 발전과 급격한 변형을 볼 수 있게 된다. 현대는 우리 고유의 음악은 제쳐두고 장르 별로 변형된 음악들이 넘친다.

시대적 급변인지 개선인지 경계가 모호해서 씁쓸하고 거부감마저 든다. 음악이 연주를 통해 사람의 편안한 휴식이 되어야 그 본질적 특성에 근접한다고 본다면, 연주자는 효율적인 선곡과 연주를 통해, 비평의 수용자로서 더 적극적이고 관대한 자세가 필요하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