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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안무의 '모내기'…새로운 발레 전통을 승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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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안무의 '모내기'…새로운 발레 전통을 승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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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안무의 '모내기'
9월 20일(수) 아르코예술대극장에서 한국발레협회 주최, K-Ballet World 주관, 서울특별시·한국메세나협회·신신제약·한국발레협회후원회 후원, 박경희 안무의 「모내기」가 공연되었다. 발레 레퍼토리에서 추출한 가을날의 「모내기」는 ‘보통 사람은 위대하고 엄청난 일을 해낸다.’라는 것을 메시지로 내보낸다. 「모내기」는 우리 삶 속에 녹아있는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일을 조명하는 작업이다. 박경희의 발레는 늘 새롭고 남다른 시각으로 발레에 접근해 왔다. 신작 「모내기」는 일관된 안무가의 창작 태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전통을 아우르며 현대를 지향하는 작품은 농경 시대의 미덕을 주제의 중심에 둔다. 구심적 주제의 모내기는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는 한모, 한모 논에 모를 심어 기르는 농작법이다. 「모내기」는 자연의 섭리를 일깨운다. 듬성듬성 논에 심어진 모들이 봄을 보내고, 여름의 성숙 시절을 지내면서 무성하게 자라나서 논을 푸르름으로 물들이고 가을이면 누렇게 익어 이웃들의 마음과 배를 채워준다. 하루·한 달·일 년을 모심듯 삶을 심어내고 하루·한 달·일 년이 모여 풍성한 삶이 되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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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후한 첼로 음을 타고 바이올린이 분주함을 이끈다. 한국전통악기를 이용함으로써 발레 군무(발레리노 박경희, 발레리나 김향림 강다영 장다영 정다은)가 분위기를 조성한다. 솔로, 듀엣, 군무로 변주되는 춤은 바닥을 치면서 모내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친밀감의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딴 머리에 하얀 바지와 반바지의 여인들은 일관되고 세련된 동작으로 발레를 견인한다. 음악사용은 「모내기」가 격정적 발레가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남성 독무에 이어 밝은 달 아래 여성 군무가 풍년을 이룬 한가위를 떠올린다.

발레단 ‘녹색달아카이브’(Noksackdal Archive)의 창작발레 「모내기」(Monaeki)는 신비하고 창조적인 느낌의 모던 발레를 무대 공간 위에 펼치고 느낌을 공유한다. 단(團)은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여기며 진정성을 갖고 발레로 표현하고, 무대 위에서 춤추는 무용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관객이라고 여긴다. 안무가 박경희는 「모내기」를 관람할 때만큼이라도 공연의 한 축인 관객이 공연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이타적 기원을 한다. 「모내기」는 자연의 형상, 패턴, 이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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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가 모를 심는 것부터 시작하듯 「모내기」도 삶을 심으며 시작된다. 모를 심은 곳에 벼가 익듯이 우리의 삶도 그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을 표현한다. 익어가는 벼를 보며 우리 삶도 변할 듯 변하지 않으며 수확할 때쯤이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고 보통 사람의 삶도 새로운 삶이 시작되듯 다시 봄이 찾아온다. 「모내기」는 이런 당연한 자연의 이치를 전통적 이미지의 확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첨단의 현대 발레의 숲에서 낭만적 과거를 들추어 현대적 지침을 세우고자 하는 행위는 제2의 자연 창출이다.

「모내기」는 일상의 모내기 없이 살 수 없는 예인들의 삶을 사유한다. 안무가의 서정적 전개 방식은 에피소드적 사연에서 추출한 추상적 구조물로 현대적인 틀을 세운다. 현재의 삶은 애초에 모내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민중의 지혜를 담은 삶의 시작이 모내기와 같음을 강조한다. 끝이 있다면 새 출발이 있으며, 벼에 뜨거운 여름이 필수적이듯 보통 사람도 고난의 시기를 이겨낼 것을 주문한다. 모내기의 과정은 많은 일화를 깔지만 「모내기」는 과정이 약화(略化)되고 내용은 집중되고 일상이 고급화되고 새로운 기운이 충만하다.

안무가는 이미 일상에서 벗어난 그 시절의 삶의 일부분을 현대 발레로 풀어낸다. 평범한 삶과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이 매일 숙제하듯이 모내기를 삶에 녹여낸다. 「모내기」는 특별하지 않은 사람도 굉장하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음을 설득하고 알린다. 모내기 없이는 사람도 나라도 삶도 없다. 그러하기에 안무가는 대중가요를 클래식 창법으로 노래하듯 평범한 모내기를 아주 특별한 일로 표현한다. 그 시절의 사람, 상황, 대상의 본질이 선명하게 지각됨으로써 「모내기」는 구체적이고 투명하고 선명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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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박경희는 좌절의 시대에 시작과 삶을 상징하는 ‘모내기’와 평범한 불특정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모내기’를 통해 관객이 작품을 해석하도록 다양하고 균형감 있는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관객들의 시선에서 무대 위의 무용수들은 특별하지만,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표현한다. 안무가는 결국 특별하게 생각하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건 본인 자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탁선(託宣)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미래를 개척하자는 청춘의 페비안(Fabian)적 사고를 엿보게 한다. 발레리노 박경희의 협동은 건실한 의미적 성취를 달성한다.

박경희 발레리노는 ‘녹색달아카이브’의 대표이자 서울발레씨어터의 단원이다. 「모내기」는 일상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던 모내기와 모내기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 위대한 작업도 그 시작은 미미한 것이며 용기 있는 자라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임을 보여주면서 용기와 응원을 선사한다. 2014년부터 박경희의 단(團)은 ‘국제2인무 페스티발’, ‘PADAF 융복합예술축제’, ‘달서현대춤축제’, ‘인천안무가전’ 등에서 공연하면서 박경희는 PADAF 최우수무용수상(2018), 한국발레협회 창작신인안무가전 최우수안무가상(2022)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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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안무가


발레단(團) ‘녹색달아카이브’의 발레 「모내기」는 한국무용의 동시대 춤과 접점에서 만나는 춤이다. 둘 사이의 미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갈래가 서로 다른 춤은 만물동근(萬物同根)의 희열을 느낄 것이다. 정묘하고 아름다운 감각적 모내기 모습은 카타르시스 적 일면으로 창의성을 높이고 있고, 빈틈없는 구성의 움직임과 절묘한 움직임의 전개는 작품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한다. 밖에 비치는 양상은 자신의 정신을 살찌우는 행위이다. 한국발레협회의 「모내기」 선정 혜안을 존중한다. 「모내기」는 소중한 발레 교본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