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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갱년기'는 다시 새로워지는 시기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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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갱년기'는 다시 새로워지는 시기라는 뜻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3)] 중년의 불안정은 변화의 에너지

중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년은 지난 날의 치열한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중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당황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중년은 지난 날의 치열한 삶을 정리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이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최근 한 종교단체에서 기획한 '북 콘서트'에 초대되었다. 필자가 2021년 출간한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를 미리 읽고 저자를 초청해 강의도 듣고 질문도 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제는 나로 살아야 한다'는 우리 삶에서 중년(中年)은 어떤 시기인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나름 쉽게 소개한 책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중년'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 이유는 중년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생애가 길어지면서 제2, 제3의 경력을 쌓아야 하는 과제를 새삼스럽게 깨닫기 때문이다.

이날 '북 콘서트'에서는 미리 받은 질문들과 함께 현장에서도 중요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다. 그만큼 중년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것을 웅변으로 증명해 주었다. 이 중요한 질문들 중에서도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 몇 개를 소개하고 그 답을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많은 분들이 중년에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 당황하면서 그 의미를 알고 싶어 했다. 특히 중년 남성들이 자신이 겪는 심리적 변화에 대해 궁금해하고 걱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전 세계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중년에 나타나는 공통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중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심리적 변화는 '남성의 여성화'와 '여성의 남성화'다. 거의 모든 문화에서, 그리고 거의 모든 중년이 겪는 심리적 변화라면 그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면 전혀 걱정할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겨야 할 현상이기도 하다.

사람은 여성 혹은 남성으로의 성별 특성을 가지고 태어나기보다는 양성적(兩性的·bisexual)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 어린이들을 조금 자세히 관찰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고정관념에 따른 성(性) 정체성으로 여자애들은 여성답게, 남자애들은 남자답게 키우고 치장하는 것뿐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옷이나 헤어스타일 등을 빼면 남학생이나 여학생이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는 여학생들이 키도 남학생보다 크고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곤 한다.

불안정하고 불안이 많은 시기…본래 참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청소년기(靑少年期)에 들어서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청소년기는 말 그대로 소년 즉 '어린이' 시기와 청년 즉 '어른' 시기가 혼재돼 나타나는 시기다. 더 이상 어린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과도기적인 시기다. 애벌레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고치를 틀고 큰 변화를 겪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이 큰 변화를 겪는 시기다. 우리는 애벌레 시기와 나비 시기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큰 변화는 고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볼 수 없다. 이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에 단순한 '변화(change)'라기보다는 '변형(transformation)', 즉 '탈바꿈'이라고 부른다.

청소년기는 바로 고치 안에서 일어나는 변형의 시기다. 다만 그 변형이 얼마나 힘든지를 우리가 직접 볼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일어나는 변화는 한마디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기준은 생물학적으로는 '생식(生殖)' 능력의 유무다. 즉 자식을 생산할 수 있는지 없는지다. 청소년기는 어른이 돼가는 시기이므로 생식 능력을 갖추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자애는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자로, 여자애는 어머니가 될 수 있는 여자로 변화하는 시기다. 이때 나타나는 변화를 '제2차 성징(性徵)'이라고 부른다. 제1차 성징은 수태될 때 이미 결정된다. 여자애에게서 나타나는 생물학적 변화가 더 뚜렷하다. 여자애는 어머니가 되기 위해 '초경(初經)'을 경험한다. 그리고 아기를 생산하기 위한 몸을 갖추기 시작한다. 아기를 해산하기 위해 둔부(臀部)가 발달하고, 태아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유방(乳房)이 발달한다.

남자애도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목소리가 굵어지고 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등 외면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더불어 성기(性器)가 커지며 몽정(夢精)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하기에 적합하도록 어깨가 넓어지고, 엉덩이는 상대적으로 작으며, 운동에 필요한 근육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생물학적 변화 외에 심리적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 어린이와 어른을 구별하는 심리적 구분은 '독립성(獨立性)' 여부다. 지금까지 부모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았지만 어른이 되어 자신의 자녀를 생산한 후에는 어른으로서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독립을 이루어야 하는 공통의 과제 외에 전통적으로 남자는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밖'에서 다른 남자들과 경쟁하고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해야 하고 조직을 통솔할 수 있는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반면에 여자는 '안'에서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며 가정을 관리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어린애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정서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성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각 조직이 발달시킨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름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경향을 학습하고 발달시키게 된다.

가정 위해 자신은 뒷전인 삶…자녀 양육의 책임에서 자유


이 과정을 거치면서 태어날 때 양성적이던 성향이 남성적인 성향과 여성적인 성향으로 분리되기 시작해 청년기에 그 차이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남성적이 되기 위해 남자들은 원래 가지고 있던 여성적인 성향을 억압하고, 마찬가지로 여성적이 되기 위해 여자들은 남성적인 성향을 억압한다. 결국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은 자녀의 생산과 양육이라는 모든 생물의 기본적인 욕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 발달한 것이다.

중년기(中年期)는 청년기와 노년기의 '가운데[中]' 있는 시기다. 즉 더 이상 청년은 아니지만 노년도 아닌 시기다. 그래서 중년기는 청년기와 더불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안이 많은 시기다. 이제는 자녀 양육의 책임에서 점차 벗어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녀들이 청소년기에 도달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하므로 자녀의 양육에 투자하던 많은 양의 심리적·생리적 에너지가 이제는 다시 원래 자신의 참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폐경(閉經)을 겪는다. 폐경은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심리적으로는 이제 자녀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나 본래의 참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준비하는 시기라는 의미다. 그래서 원래의 양성적인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억압하고 있었던 성향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여성들에게는 지금까지 억압됐던 남성적 성향이,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억압돼 있던 여성적 성향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변화가 소위 남성의 여성화, 여성의 남성화로 보이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성이나 여성이나 원래의 본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중년기와 함께 자주 쓰이는 '갱년기(更年期)'의 본래 뜻은 '다시' 또는 '새로워지는' 시기라는 것이다. 중년은 다시 새로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해야 삶의 의미·보람 느낄 수 있어


중년이 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가정을 떠나 혼자 있고 싶어지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도 자신의 참모습을 찾으려는 바람과 연결돼 있다. 지금까지 자녀 양육과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책임 때문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자신보다는 자녀와 가정을 더 생각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중년이 되면서 자녀도 성장하고, 또 직장에서도 퇴임할 시기가 다가오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길어진 여생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숙고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제 남은 생애에는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고 싶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중년에 양성화되면서 좁게는 부부 사이에, 그리고 넓게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다. 자녀의 생산과 양육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의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극대화한 청년기에는 부부 사이에도 서로의 생각과 감정의 차이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와 편견으로 갈등이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중년에 다시 양성화가 되면서 억압돼 있었던 이성(異性)의 경향이 표면화되면서 서로 간에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이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면서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여러 전생애발달심리학자들이 중년이 돼서야 비로소 자기실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청소년기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부모나 사회에 대해 반항하는 것은 애벌레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 속에서 변형이 일어나야 하듯이 꼭 필요한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중년기에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정상적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한다면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인생 후반부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기반을 닦을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