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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곳곳 붓질따라 번지는 소박하고 위대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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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곳곳 붓질따라 번지는 소박하고 위대한 자연

[나의 신작연대기(23)] 박동국 수채화가

박동국 작 '내린천(Naerincheon)', 40.0×80.0㎝ Arches-Watercolor, 2013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내린천(Naerincheon)', 40.0×80.0㎝ Arches-Watercolor, 2013
박동국(朴東國) 수채화 작가는 강원도가 빚어낸 불후의 명품 작가임이 분명하다. 가을 단풍이 수북이 내린 인제 백공미술관에서 그의 22회 초대 개인전이 12월 15일(금)까지 열리고 있다. 가는 곳마다 화제의 주인공이 된 그림 모음집 '발길따라 잉태한 풍경'展만 일곱 번째다. 1층 2개 전시관, 2층 2개 전시관을 꽉 메운 200여 점의 크고 작은 그림들은 작가의 눈에 띈 강원도의 풍광과 사람들의 삶을 같이한 위대한 자연의 서사가 시린 동화의 따뜻함을 표현하고 있었다.

작가는 프랑스 아르슈(Arches) 화지(畵紙)에 유화에 버금가는 고급 물감을 쓴다. 강원도 소재의 작품들은 범인들의 속세를 씻어내는 도구가 되었고, 강원도행(行)을 꿈꾸는 자들의 경전이 되었다. 물로 치유 방법을 터득한 그는 내린천에서 발원하여 속초에 이르는 그림 대장정을 한다. 작가에게 자연의 감동 표현은 수채화가 최적이다. 그의 화제(畫題)는 시제(詩題)가 되고, 작가는 기꺼이 시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에 ‘내린천’, ‘평창의 겨울’, ‘고수(固守)’, ‘자작, 하얀 영혼의 실루엣’, ‘백두산의 겨울’, ‘죽변항’ 등을 명명했다.
박동국 작 '평창의 겨울( Winter in Pyeongang), 40.0×80.0㎝ Arches-Watercolor, 2011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평창의 겨울( Winter in Pyeongang), 40.0×80.0㎝ Arches-Watercolor, 2011
박동국 작 '내린천(Naerincheon), 120.0×240.0㎝ Arches-Watercolor, 2013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내린천(Naerincheon), 120.0×240.0㎝ Arches-Watercolor, 2013


작가의 노트를 살핀다. 박동국은 온전히 강원도 작가다. 문명의 한가운데 수채화만 고집하는 작가는 드물다. 그는 강원도 홍천군 내면에서 태어나서 강원도 국립 사범대 출신으로 강원도 미술 교사를 했고 이제 강원도 대표 작가가 되어 있다. 그는 하늘이 부여한 교사라는 천직을 내려놓고 강원도 대상의 수채화 작업에 너무 신이 나 있다. 그가 채집한 풍경들은 작가의 소재가 되었고, 그가 선정한 정감 어린 수채화들은 자신의 체험을 끌어낸 아린 추억과 삶이 묻어나는 강원도 풍광을 담아 의지적 주제의 심정을 담아낸다.

초대 개인전 22번째 대장정…어릴적 동화같은 따뜻함 표현


일상적 소재가 되었던 설경과 전원의 풍경에는 청빈한 가정에서 유년의 자신을 배양한 그리운 고향의 흔적이 흥건히 담겨 있다. 유채화 시대 이전에 모든 그림은 수채화 시대였다. 뚜렷한 음영의 대비가 없어도 내린천은 강원도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다. 작가는 일이 년에 한 번 전시회를 여는 편이다. 그림을 통해 일 년에 한 번은 사람들과 따뜻함을 나누고 싶은 작가는 ‘내린천’ 연작처럼 ‘관광 엽서’류 그림이 아닌 오지와 조우한 그림을 창작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미학적 가치를 소지하도록 차별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박동국 작 '고수(固守, Solidify, protect), 227.0×107.0㎝ Arches-Watercolor, 2020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고수(固守, Solidify, protect), 227.0×107.0㎝ Arches-Watercolor, 2020

박동국 작 '고수(固守,Solidify, protect), 223.0×107.0㎝ Arches-Watercolor, 2021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고수(固守,Solidify, protect), 223.0×107.0㎝ Arches-Watercolor, 2021


‘내린천’, ‘평창의 겨울’: 흰 눈의 여백으로 내린천과 평창의 풍경을 담는다. 산을 등지고 들어선 집 한 채가 비스듬히 서서 흰 눈을 맞고, 굴뚝에선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대대로 터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나그네이건 반갑게 맞이하는 정과 텃밭이 인상적이다. 단출하고 고즈넉한 산간의 삶 속에 담긴 가족 구성원의 애환을 따스하게 사유한 작품이다. 작가는 외롭고 쓸쓸한 겨울 풍경에서 좀 더 가까이 가면 거룩한 삶의 주체들이 넘실거리며 평화를 일구는 광원리의 설경을 기억에서 추출한다. 강원도의 정서를 그대로 전달하는 그림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따뜻한 봄의 도래를 희망한다.

‘고수(固守)’: 양양 낙산사가 화마에 휩쓸려 문화재 및 여러 부속물이 손실된 아픈 추억이 있다. 작가는 강원도의 풍향과 풍광으로 세상을 본다. 배달겨레는 수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뜨거운 불길과 아픔을 꿋꿋이 버틴 적송(赤松)은 푸른 생명력과 사철 변함없는 자태로 존중의 대상이 된 피사체다. 작가는 그 모습을 아르슈 용지 위에 수채 물감과 먹으로 전반적으로 붉은색이 감도는 단색으로 처리한다. 우국충절의 위용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구성 역시 단순하며 여백의 미를 살린다. 화면 구성의 단순화와 단색 처리는 올곧은 의지로 상징되는 노적송(老赤松)의 품격을 살린다. 색채와 형태의 구성 또한 독특하다.
박동국 작 '빛·돌의 아우라(The aura of light and stone), 62.0×198.0㎝ kraft paper-Indian ink,Watercolor, 2020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빛·돌의 아우라(The aura of light and stone), 62.0×198.0㎝ kraft paper-Indian ink,Watercolor, 2020

박동국 작 '자작, 하얀영혼의 실루엣(Birch, white soul silhouette), 97.0×285.0㎝ Arches-Watercolor, 2017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자작, 하얀영혼의 실루엣(Birch, white soul silhouette), 97.0×285.0㎝ Arches-Watercolor, 2017


‘빛·돌의 아우라’: 울산바위에 대한 비사실적 환상이 만들어 내는 사실성에 감탄한다. 최윤철 미술평론가는 "박 화백의 정서가 개입된 관념적 풍경화는 울산바위의 야경을 담는다. 빛의 표현에 의지한 화사한 달빛과 별빛, 무리 속에서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 울산바위는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할 듯하다. 크고 작은 봉우리 수십 개가 모여 있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의 울산바위는 거대한 병풍처럼 우뚝 솟아 그 웅장한 기세가 관념적 풍경으로 연출된다. ‘빛·돌의 아우라’는 거대한 암석 덩어리로 이루어진 울산바위의 아우라가 밝은 보름달과 무수한 별빛에 의해서 더욱 숭고한 장엄미를 드러내고 있다"고 인상을 적는다.

추억과 삶이 묻어나는 풍광…미학적 가치위한 차별화 시도


‘자작, 하얀 영혼의 실루엣’: 소재는 자작나무로 확대된다. 강원도에는 혼탁한 영혼을 씻어낼 자작나무 숲이 산재한다. 자작나무는 늘 꼿꼿하다. 황량한 겨울을 이고 있는 자작은 영혼의 순례자다. 실루엣은 음(陰) 영역의 단어다. 작가에게 뜨겁게 가슴에 안긴 영혼의 색상은 숱한 하얀색 가운데 강원도 자작을 닮은 하얀색이다. 자작은 ‘자연 속에 깊이 착색된 인간 삶의 내면이며 영혼’이다. 작가는 신성을 드높이며 여백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자작을 스승 삼아라!’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제 껍질을 벗기면서 굳건히 세월을 녹이며 성장하는 백화(白樺)의 신비가 화폭에 담긴다. 밤이 올 때까지 자작나무 숲에서 기도하며 얻은 영혼의 별은 사랑을 가르치고 있었다.
박동국 작 '자작, 하얀영혼의 실루엣(Birch, white soul silhouette), 91.0×117.0㎝ Arches-Watercolor, 2021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자작, 하얀영혼의 실루엣(Birch, white soul silhouette), 91.0×117.0㎝ Arches-Watercolor, 2021

박동국 작 '백두산의 겨울(Mt. Baekdu in winter), 35.0×35.0㎝ Arches-Watercolor, 2010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백두산의 겨울(Mt. Baekdu in winter), 35.0×35.0㎝ Arches-Watercolor, 2010


‘백두산의 겨울’: 잘 알려진 지역을 화폭에 담는 것은 명예 손상의 위험을 수반한다. 이 작품은 특정 장소가 돌출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그림에 몰두하게 한다. 작가는 서민들에 의한 백두산 이야기 회자를 유도한다. 빛을 받은 백두산의 설경은 의외로 소박하다. 혹한의 눈밭 풍경은 친밀감을 자아낸다. 능선 너머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서광은 고귀하게 전달된다. 은은한 구도와 대비만으로도 백두산의 겨울이 감지된다. 수수하면서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의 백두산이 구현된 풍경은 아름답다. 작가는 그림 속에 숱한 사연을 숨겨 ‘백두산의 겨울’ 같은 민족 분단을 끝내고 다음 세대는 능선 넘어 터오는 햇살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죽변항’: 죽변항 풍경이 담긴다. 산이 그러하듯 바다도 늘 같은 빛을 입지 않는다. 속초에서만 볼 수 있는 갯배가 포착되고, 항구 연작은 바다를 끼고 사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포착하는 그만의 독특한 안목이 돋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에는 주름진 어부의 얼굴이나 끊임없이 부딪치는 파도가 강조되지 않고 흔적도 없다. 뱃고동 소리는 마음속에 들어있다. 작가는 속초의 청호동 갯배 주제의 작품에서 아버지들의 실향 아픔을 출렁이는 뱃머리에 실어 여러 번 북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도시 문명의 한가운데 위치하면서 아직도 청호동 아바이 마을에는 줄 달린 갯배가 운행된다. 작가의 자연은 어느 것 하나도 삶을 떠나 있는 관념 속의 그림이 아니다.

수채화만 고집하며 작업 몰두…강요없는 처절한 '畵鬪' 벌여

박동국 화백은 개인展 22회(1996~2023), 3인展 1회(박동국, 최성원, 황금엽, 2010), 국내외 단체·초대전 400여 회에 이른다. 박동국의 제1회 개인展은 춘천미술관에서 시작하여 내설악 백공미술관에서 초대展(‘발길따라 잉태한 풍경’ Ⅶ)으로 제22회 전시회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제3회 개인展(한전플라자갤러리초대展, 2001), 제5회 개인展(인사아트센터, 2008), 제9회 개인전(서울 예술의전당, 2011), 제11회 개인展(갤러리 이안재 초대展, 2012) 말고는 모두 강원도에서 전시회를 연 지독한 강원도 중독의 작가다.
박동국 작 '죽변항(Jukbyeon Port), 30.0×71.0㎝ Arches-Watercolor, 2014이미지 확대보기
박동국 작 '죽변항(Jukbyeon Port), 30.0×71.0㎝ Arches-Watercolor, 2014


박동국은 소박하고 우직한 품성의 전업 작가로서 한국미술협회, 수채화그룹 MULL, G-Art, 아트인강원의 멤버다. 한국미술협회 속초 지부장(2011~2013), 대한민국수채화작가협회 강원도지회장(2012~2013)을 역임했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2013)과 운영위원을 맡은 경험이 있다. 속초시 문화상(2014)·강원미술상(2015)·강원특별자치도 문화상(2023)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다수의 국내 명소와 해외인 일본 돗토리현 청사, 일본 도야마아트캠프센터, 러시아 연해주 주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동국은 특정 스승의 사사 없이 독학으로 수채화 기법을 터득했다. 그는 매일 드로잉으로 작품의 깊이를 가져간다. 수채화는 흔해도 수채화 작가는 드문 세상에 그의 수채화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가는 산에서 영감을 얻고 바다에서 살아있는 삶을 마주한다. 박동국은 현대적 가치를 바탕으로 더욱 사실적 태도로 효과적인 회화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강요된 주의나 그 대안의 강요가 없다. 그는 단 한 번의 기회인 붓질의 처절함으로 화투(畵鬪)를 벌인다. 인물 없는 그림의 스산한 분위기가 사유의 화사(畵師)를 닮아 있다. 그에게 ‘산’은 가슴을 뛰게 하고 혼을 불어넣는 용광로였다. 그도 바닷가의 평범한 사람들의 시선과 얘기에 귀 기울이는 나이가 되었다. 항구 투어의 신작과 설악의 사계에 얽힌 소식으로 우리에게 계속 감동을 선사해 주기를 바란다. 박동국 수채화, 파이팅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