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28.1%)보다 '종교에 관심이 없어서'(39.7%)가 더 많았다. 무종교인들의 과거 종교 경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과거에 종교를 가졌던 무종교인은 30.4%였고, 그 가운데 3분의 2는 개신교였다. 그만큼 개신교에서 실망해 종교를 떠나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무종교인의 70%는 종교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무종교인들 중에 종교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5년 전 40.4%에서 31.1%로 10%포인트 가까이 줄었고, 필요 없다는 응답이 필요하다는 응답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종교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고, 현실 문제에 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남기'…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종교
종교는 우리 삶의 근원적인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제도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을 제외하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종(種)은 없다. 고릴라나 침팬지 등의 영장류가 인간처럼 사회생활을 하고 가족을 형성하고 살아간다고 해도 이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에 아무리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부족(部族)일지라도 모두 부족 특유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인간 존재의 근원과 맞닿아 있는 활동이다.
기독교 경전인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모든 창조 중 제일 마지막에 창조되었다. 특히 인간만이 유독 하느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이 특정 종교의 교리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종교와 인간의 삶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어에서 종교를 뜻하는 단어는 'religion'이다. 이 단어의 기원에는 두 라틴어가 있다. 하나는 'legare'라는 단어고, 그 의미는 '묶다' 또는 '연결하다'이다. 이 어원에서 나온 영어 단어로는 뼈와 뼈를 연결해주고 관절의 안정성을 제공하는 '인대(靭帶)'를 뜻하는 'ligament'가 있다. 're-' 는 '다시[再]'를 뜻하는 접두사다. 그렇다면 'religion'은 '다시 묶다' 또는 '다시 연결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종교는 다시 묶거나 또는 다시 연결하는 과정을 뜻하는 말이 된다. '다시'는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하여"라는 의미다. 즉 원래의 행동이나 상태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묶거나 연결한다'는 것은 원래 묶여 있거나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동시에 현재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필요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에는 원래의 상태가 무엇이고, 무엇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다. 'religion'의 어원에 관한 또 다른 설명은 'religio'에서 유래했다는 것인데, 이 단어는 '거대하게 큰 힘'에 대한 언급 또는 그 힘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감정에 대한 언급을 함축하고 있다. 'religion'이라는 단어의 두 기원을 합치면 원래의 뜻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종교(religion)라는 단어에는 사람은 원래 거대하게 큰 힘에 묶여 있거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현재는 그 거대한 힘에서 분리되어 있는 상태고, 다시 그 거대한 힘과 연결되어 하나가 되려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한자어 종교(宗敎)는 '일의 근원이나 근본 또는 우두머리나 가장 뛰어난 것'을 뜻하는 '마루 宗(종)'과 '가르칠 敎(교)'로 구성되어 있다. 그 뜻을 풀어보면 종교는 '가장 근본적이고 뛰어난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근본적이고 뛰어난 것은 무엇일까? 宗의 본의는 조상을 모시고, 제사 활동을 거행하는 사당, 종묘를 가리키기도 한다. 제사(祭事)는 사람이 신과 교통하고 대화하기 위한 행위로, 신에게 복을 빌거나 신의 힘에 의지해 재앙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한자어 '宗敎'나 영어 'religion'의 공통점은 사람을 뛰어넘는 거대한 큰 힘 또는 신(神)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표현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신과 교통하고 대화를 통해 다시 하나가 되려는 사람의 근본 열망이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현실 문제에 답 주지 못해"…탈종교화 속도 빠르게 진행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언명했다. 문화를 '한 집단이 주어진 환경에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형성된 생활양식'이라고 한다면,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종교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 부족(部族)은 크기에 관계없이 그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질 필요가 있고, 또 실제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종교의 모습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문화에 따라 또는 개인마다 그 '거대한 힘'을 무엇이라고 주관적으로 느끼는지가 다르고,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지가 다를 뿐이다.
'Homo sapiens'인 사람이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은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고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인간만이 그 사실을 절절하게 깨닫는 존재다. 그 한계를 느끼는 순간 사람은 괴롭고 불안해지고 부끄러워진다. 죽음에 다가간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완전하고 거대한 '그 무엇'과 다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인간이 피할 수 없는 근원적인 두려움과 부끄러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이것이 종교의 본질이고, 동시에 인간은 본질상 종교적이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면 작금에 나타나는 현상, 즉 무종교인이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수가 늘어간다는 것은 본질적 모순(矛盾)처럼 보인다. 한국에서 실시하는 거의 모든 종교 관련 조사는 종교단체 가입 여부를 가지고 종교인 여부를 판단한다. 다시 말하면, 직접 종교인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종교단체에 속해 있는지 여부로 종교인 혹은 무종교인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런 조사 방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가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의 99% 이상이 불교, 개신교, 천주교에 속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종교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종교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추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말해 '무종교인'이라는 것이 종교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종교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과거에는 '종교적(religious)'이라는 표현과 '영적(spiritual)'이라는 것이 거의 같은 의미로 쓰였다. 하지만 현대는 '종교적' 성향과 '영적' 성향을 분리한다. 따라서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not religious, but spiritual)'이라는 표현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종교단체 가입자수 줄어도 종교에 관심있는 사람 많아
현재의 종교적 현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기존의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에 공식적으로 속해 있는 사람의 수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종교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종교적인 인간의 본질이 변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종교에 실망해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 것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종교를 '성스러운 존재나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해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대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기존의 종교를 떠나거나 처음부터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첫째는 기존의 종교에서 떠나는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현실에 안주하고 기존의 틀을 고수하려는 기존의 종교가 해오던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기존의 종교에 속해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찾아가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는 무엇인지에 대해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경제적 가치가 최우선으로 간주되고,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는 문화에서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삶의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종교적 형태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종교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과거의 종교가 밝히 보여주듯이 어느 제도이든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새롭게 출현한 또는 출현할 종교 형태의 장단점에 대한 이해를 통해 종교 본연의 역할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