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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이 만나 시(詩)로 부대끼며 신비적 몸짓으로 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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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예술이 만나 시(詩)로 부대끼며 신비적 몸짓으로 승화

[나의 신작연대기(35)] 박명숙 예술감독(현대무용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의 '시(詩), 현대무용-만남'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
6월 19일, 26일 오후 3시 양일간 경기도 광주 ‘박물관 얼굴’(관장 김정옥 중앙대 명예교수)에서 광주시·‘박물관 얼굴’ 주최로 박명숙서울댄스씨어터(예술총감독·연출·안무 감독 박명숙 경희대 명예교수, Myung 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초청공연 '시(詩), 현대무용-만남'(Poem, Contemporary Dance-Encounter, 이하 만남)이 있었다. 극장은 별다른 장치 없이도 훌륭한 공간이었고, 황지우(너를 기다리는 동안, While Waiting for You), 강은교(우리가 물이 되어, We become Water), 윤동주(자화상, Self-Portrait), 하덕규(가시나무, Thorn Tree) 시인의 시가 진정성 있는 무용수들의 열연으로 격조의 현대무용이 되었다.

한적한 시골에 터를 잡은 사람들이 모여 분주해진 마을을 이루고 무위자연하고, 예술가들이 서로 넘나들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공연을 하는 가운데, 자연 한가운데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박물관은 경기도 광주에서 꽤 이름난 명소가 되어 있었다. 그곳의 보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92세의 대한민국예술원 명예회장 김정옥 선생이 계셨다. 생각해 보니 ‘박물관 얼굴’은 박물관이 아닌 시절에 다녀간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가도 와본 듯한 느낌이었다. 관객들도 그런 마음으로 이곳을 찾아와서 공연을 보고 다녀가는 곳이 되었다.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Poem, Contemporary Dance-Encoun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Poem, Contemporary Dance-Encoun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


연극(김정옥), 무용(박명숙), 영화(김동호)에 대한 예술 사랑의 전통과 느낌이 이어지며 시(공연의 대본)와 무수한 조각(박물관에 전시)과 미술품(박물관에 전시)이 자연의 음악(새와 바람)과 어우러진 호수, 어우러진 풍경은 그 자체가 예술이었다. 자연 한가운데 위치한 박물관은 현대무용을 수용하고,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공연장을 꽉 메운 중년의 고급 관객들이 진지하게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춤은 경쟁하는 이데올로기의 늪을 우회하여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시인의 심상을 드러내며 미학의 상부를 건드리고 있었다.

황지우•강은교•윤동주•하덕규의 시가 춤꾼들 만나 격조있는 춤사위로 '탈바꿈'


의지적 공연의 주인공은 안무 감독인 대한민국예술원 종신회원 박명숙(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 수상)이다. 그녀는 현대무용 '예수그리스도 수퍼스타'의 주역 '막달라 마리아'역으로 21년간 출연해 일반 관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현대무용가다. ‘박명숙댄스씨어터’(1978)를 창단해 위대한 이성인 몸을 탐구적 대상으로 삼아 여러 갈래에 걸친 시대정신을 현대적 몸짓으로 표현하여 감성을 복원하고 미학적 경지로 이끌어 왔다. 이 현대무용단은 300여 회의 공연과 '황조가'(서울무용제 대상 외 5개 부문 수상) 외 다수의 수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요 안무작은 '초혼'(카네기홀·1981), '혼자 눈뜨는 아침', '에미', '유랑', '윤무' 등이 있다.

춤은 몸으로 쓰는 시다. 시는 사람을 중시한다. 시인(詩人)은 있어도 시가(詩家)나 시자(詩子)는 없다. 안무가나 안무자는 있다. 자연을 포용한 시가 무대 위에 올랐다. ‘얼굴’에서 춤은 한적한 절집에서 신비적 몸짓을 던지고 떠난 춤이다. 옷깃 인연을 만든 '만남'의 공연작들은 주제적 시를 동인(動因)으로 삼았고, 별도의 무대 세트는 필요하지 않았다. 모든 공연 상황과 흐름은 자연스러운 ‘어우러짐’을 지향했고 출연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그래도 의미를 강하게 하는 음악, 의상과 천, 의자, 탁자 같은 소품이 동원됐다.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hile Waiting for You,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


첫 번째 시와 현대무용의 만남은 경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슬기·김승아 공동 안무·출연의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남녀의 사랑과 갈등을 다양한 움직임으로 묘사한 현대무용은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흑백의 말아 올린 치마, 황금색과 흑백의 머리카락 등으로 성격을 구분한 두 사람은 설렘에 대한 다양한 심리를 가능한 한 시적 움직임으로 담아낸다. Cessura의 ‘Ever So Blue’가 우울감을 불러내면서 시작된 춤은 Anna의 ‘Parola’ 열정을 거쳐 Rave의 ‘Winds over SF’로 경쾌함에 와닿는다. 너를 기다리는 청춘의 어느 날, 내가 바라는 어떤 것은 찾아 나설 때 비로소 찾아온다. 그렇게 영글어 가는 시간.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있다’. 등을 맞대고 서로 자기의 길을 가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적 이미지로 남는다.

예술에 대한 믿음, 자연과 인간의 순수성 존중 '건전한 문화 만들기'


두 번째 ‘만남’은 당신이 늘 햇살이 되기를 기원하는 여류 시인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다. 박명숙댄스씨어터의 정단원인 김현주·이소영·서해린 공동 안무·출연의 이 작품은 물과 불의 속성과 상징을 빌려 서로 다른 개체들이 '우리'로 합일하는 세상에 대한 소망을 표현한다. 죽음을 초월하는 시인의 관조가 젊은 춤꾼들에게 스며들어 느림의 미학을 창출한다. 시인은 숙성의 표시로 불이 아닌 물을 선택해 흐르는 물로 만나기를 권유한다. 타다 남은 초들이 죽음이 스쳐 갔음을 알린다. 수묵의 롱스커트 여인들이 느린 템포와 고요한 분위기의 첼로 협주곡의 리듬을 받아내면서 죽음의 의미를 되살린다. 아마 삼우제인 모양이다. Olafur Amalds의 ‘Only The Winds’(오직 바람만이)만이 사연의 깊이를 알리라.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면 사연을 알게 된다.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We become Water,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Self-Portrait,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Self-Portrait,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Self-Portrait,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Self-Portrait, 2024. Photograph ⓒ Eunbi Jung.


이수윤(춤창작집단 '존재' 대표)은 윤동주의 ‘자화상(自畵像)’을 홀춤으로 안무·출연했다.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거친 짐을 걸치고 있는 듯한 두툼한 원피스,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세상을 뜻하는 얼굴을 가린 망사 모자,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의자에 묶인 여인이 일제 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의 상황을 읽게 해준다. Ezio Bosso의 ‘Rain, in Your Black Eyes’가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을 싣는다.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묻는 자기성찰의 춤’은 ‘Harmonies des bois, Op. 76: No. 2 Les Larmes de Jacqueline’(나무숲의 조화 76번, 자클린의 눈물 두 번째 곡)으로 상황이 설명된다. 춤의 후반부는 모자를 벗어내고 앉은 자세에서 일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담는다. 논 우물 속에 비쳤던 아름다웠던 풍경은 사라지고 자유를 간절히 원하던 이는 ‘추억처럼 있습니다’를 연이어 읊조리며 춤은 종료된다. 시와 춤이 일치를 이루며 슬픔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은 담론을 일구어냈다.

자연 포용한 무대위의 詩, 별도의 무대세트 없이 공연 '어우러짐' 표출


마지막 '만남'은 정은비(박명숙댄스씨어터 기획 PD & 정단원) 안무, 하덕규의 대중시 ‘가시나무’로서 이수윤·김현주·이소영·서해린·김슬기·김승아에 이르는 이전 작품 무용수 모두(6명)가 출연하는 ‘얼굴’ 극장으로서는 매머드 공연이었다. 대형 천 속에 다섯 명이 들어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의 모습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누군가는 떨고, 고독한 공포의 시간은 흐른다. 객석에서 나타난 여인은 그들을 위로한다. Benedictus의 2 Cellos가 퍼지면서 대형 천은 걷히고, 사자의 영혼이 살아난다. 가시나무새는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안무가는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것은 가장 처절한 고통에서 피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가정으로 우리 삶과 예술에 대한 은유를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듯 아리게 느리게 사유한다.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이미지 확대보기
Myungsook Park Seoul Dance Theatre, Thorn Tree, 2024. Photograph ⓒ Eunbi Jung.

박명숙 예술감독(현대무용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미지 확대보기
박명숙 예술감독(현대무용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박명숙의 '시(詩), 현대무용-만남'은 작품당 15분씩을 배당해 네 편의 단편소설을 읽는 분위기를 창출한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낯선 곳에서 초대받은 공연은 기대감을 훨씬 넘어선 예상외의 소득이었다. 예술에 대한 신앙 같은 믿음과 노련한 경험이 자연과 인간의 순수성을 존중하게 했다. 나와 예술을 찾아가는 박명숙의 춤의 여정은 작지만, 담대한 낭만극 행(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역 문화에 도움이 되겠다는 건전한 생각으로 알찬 무용 작품을 만들어 건전한 문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뜻에 경의를 보낸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Eunbi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