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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예술감독의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춤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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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예술감독의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춤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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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자 출연의 부채춤(김백봉류)
6월 29일(토) 오후 3시, 7시(2회 공연), 서울남산국악당에서 2024 서울남산국악당 공동기획, 김백봉춤보전회·전은자무용단·장인숙희원무용단·조성민무용단·서울남산국악당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문무용지원센터·INSIGHT MOTION 후원, 전은자 예술감독의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 공연이 있었다. 이날 공연은 전통춤, 신무용, 신전통춤에 대한 향방을 모색하는 담론의 자리가 되었다.

한국 근대무용사 백년에 걸린 공연의 레퍼토리는 태평무(한성준제 강선영류), 교방굿거리춤(김수악제 김경란류), 장고춤(김백봉류), 소고시나위(윤혜정 안무), 춘풍화무(임관규 안무), 여백(정혁준 안무), 구음검무(김경란류 장인숙 재구성), 부채춤(김백봉류)으로 구성되었으며, 전은자(성균관대 무용학과) 교수는 “세상의 세찬 바람 속에서도 춤의 시간을 지키는 이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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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옥 춤의 태평무(한성준제 강선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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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옥 춤의 태평무(한성준제 강선영류)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는 한국 무용계를 든든하게 버팀목하고 있는 중견 무용수들(임성옥, 장인숙, 안나경, 최희아, 조성민, 정혁준)의 진전, ‘장인숙 희원무용단’ 단원(노수연, 김채린, 김진성, 심지윤)의 약진, 전은자의 옛춤(부채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춤들은 과장과 억지를 걷어내고 춤의 정신과 미학적 형식, 공연작의 내용과 관객과의 조화를 고려한 우리 춤과 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이날 공연은 견고한 우리 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들로 가득 찬 춤 전문가들의 결사 항전의 모습을 보였다. 동시대적 감성과 감각은 새로운 문화원형을 창조한다. 닮은 듯 서로 다른 생각들이 ~주의를 만들고 발전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르네상스의 반복은 각오해야 한다. 옥양목, 비로도, 나일론으로 변하는 도도한 흐름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공존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장인숙 희원무용단의 교방굿거리춤(김수악제 김경란류)이미지 확대보기
장인숙 희원무용단의 교방굿거리춤(김수악제 김경란류)

안나경 춤의 장고춤(김백봉류)이미지 확대보기
안나경 춤의 장고춤(김백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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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경 춤의 장고춤(김백봉류)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는 임성옥 춤의 ‘태평무’(한성준제 강선영류)로 문을 열었다. 임성옥은 무용계의 화목과 무궁영화를 축원하는 듯한 격조의 춤을 선보였다. 절도있게 몰아치는 발디딤새가 신명을 불렀고, 기량 과시의 자신감이 두드러졌다. ‘태평무’는 근대 전통 무악의 거장 한성준이 경기도 무속 장단으로 구성한 춤을 제자 강선영이 홀춤, 왕과 왕비의 이인무, 무리춤 등의 구성과 품격의 무대예술로 발전시켰으며, 강선영의 제자 임성옥이 타 무용수와의 비교와 노출이 심한 ‘태평무’를 익숙한 수사의 춤으로 연행(演行)했다.

‘강선영 탄생 100주년 명가 강선영-불멸의 춤’ 「태평무」에 출연했던 임성옥은 경기도당굿 가락에 맞춘 춤을 스승 강선영이 생전에 강조한 초반 한삼춤의 유연한 곡선 선형과 이어진 원돌림의 발디딤, 엇박과 정박을 넘나들며 몰아가는 발짓춤의 역동성을 임성옥의 즉흥적 신명으로 잘 표현했다. 일상의 좋은 기억의 인간 감정과 자연과의 조화는 춤의 모범이 되었다. 임성옥은 ‘CID-UNESCO 전통무용 전문가과정 강선영태평무’ 지도교수이며, 서울국제댄스페스티벌 인 탱크(2020년~현재) ‘해설이 있는 K-Dance’ 공연감독이다.

‘교방굿거리춤’(김수악제 김경란류)은 ‘장인숙 희원무용단’ 단원(노수연, 김채린, 김진성, 심지윤)의 4인무로 재구성되어 화려한 형식미와 교태미로 우리춤의 다양성을 선보였다. 이 춤은 진주권번의 마지막 명인 김수악이 남긴 굿거리 여덟 마루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몸 자체가 음악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있으며 김경란이 추구하는 즉흥성과 개성을 소고 가락에 추가하여 독무로서의 완성도를 높였다.
최희아 춤의 소고시나위(윤혜정 안무)이미지 확대보기
최희아 춤의 소고시나위(윤혜정 안무)

조성민 춤의 춘풍화무(임관규 안무)이미지 확대보기
조성민 춤의 춘풍화무(임관규 안무)


이 춤은 경남무형유산 제21호의 덧배기의 풍류적 바탕에 정재의 기품 있는 몸짓이 돋보인다. 아름다운 색상의 한복은 사계에 담은 자연의 모습이며, 한국적 여성미와 생기발랄한 움직임에 다양한 독무와 군무의 진법과 조명의 신비감은 순응적 자연의 흐름과 즉흥적 요소가 멋을 더 한다. 남성 구음도 의미가 있으며, 맨손 춤에서 소고춤으로 넘어가며 극성을 강화하면서 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장고춤’(김백봉류)은 서울시전문예술단체인 김백봉춤보전회 회장 안나경이 어머니 김백봉의 춤을 투사한다. 장고는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악기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악기이다. 궁편과 채편의 운율이 음과 양,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며 조화를 이뤄내는 홍의 본이요. 멋의 상징이다. 빨간 몸통이 여인의 정열을 닮아있다. 안나경은 어머니의 기억 속에서 익숙하게 장고의 미학을 풀어낸다.

김백봉류 장고춤은 크게 여인의 향기(독무), 여인화사(군무), 타의예(설장고) 3종류가 있다. 안나경 독무의 장고춤 「여인의 향기」는 청치마에 연노랑 저고리를 입고 비스듬히 장고를 메고 오락가락하면서 민요 태평가를 타며 흥에 따라 춤춘다. 여인은 빠른 회전과 급정지를 조율해 내며 장고와의 완전한 합일을 이룬다. 치마가 빠르게 퍼졌다가 모이는 동작의 태평스러운 여인의 흥취를 표현한다.

소고를 이용하여 시나위 형식으로 구성한 윤혜정 안무, 최희아 출연의 신전통춤 ‘소고시나위’는 소고 놀음의 움직임과 교방에서 이루어지는 교방 소고의 특징들을 절묘하게 혼합한다. 미묘한 울림에서 넓은 영역의 역동을 구사하는 ‘소고시나위’는 소고의 기교가 한국 춤의 기본 정서가 조화를 이루도록 안무된다. 최희아는 패랭이 모자에 소고를 들고 남성 구음에 맞추어 자신의 개성을 춤으로 전한다.

최희아는 ‘최희아 리-감댄스컴퍼니 대표’이며 평양검무 이수자이다. 그녀가 추는 ‘소고시나위’는 춤의 산책로에서 만나는 음(音)과 색(色)의 무조(舞調)를 창조한다. 춤 구사의 절정에서 단순한 형식적 틀이 아니라 무색(舞色)을 편성한다. 최희아의 지적 리듬감이 번지는 춤은 전통춤의 상징성을 존중하도록 만든다. 남산국악당은 소고춤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양식 변천의 공간이 되었다.
여백(정혁준 춤, 안무)이미지 확대보기
여백(정혁준 춤, 안무)

구음검무(김경란류 장인숙 재구성, 출연 엄정아 노수연 김채린 심지윤 김진성)이미지 확대보기
구음검무(김경란류 장인숙 재구성, 출연 엄정아 노수연 김채린 심지윤 김진성)


임관규류 ‘춘풍화무’는 여인의 단아하면서도 힘찬 기상을 표현한다. 용인대 무용과 객원교수 조성민이 출연한 홀춤 ‘춘풍화무’는 한국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정서를 뚜렷하게 담아낸다. 바람과 어우러져 온갖 꽃들이 만발하는 봄철, 바람을 상징하는 부채 여인의 절제된 기교와 담백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이 번진다. 조성민은 처용무 이수자로서 다양한 영역의 춤을 추며, 우수 안무작을 선보이고 있다.

조성민은 국립무형유산원 개막공연 ‘풍장’(2024) 안무,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2024) 안무감독, 2023년 전국체전·장애인체전 안무감독, 뮤지컬 「명원 신궁중다례」, 「왕의 녹차」 안무 등의 실력으로 운기 생동의 춤으로 스승 임관규의 ‘춘풍화무’를 연홍(緣紅)이 오렌지색을 감싸는 늦은 봄날의 화사를 만들어 내었다. 역동과 섬세한 묘사가 일체를 이룬 작품은 우리 춤의 순수를 견인하고 있었다.

‘여백’(餘白, 정혁준 안무·출연)은 “누구는 비었다 하고/누구는 찼다고 한다/누구는 허하다 하고/누구는 실하다 한다/이 세상 모든 풍진(風塵)이/ 부글대며 삭나보다.”라는 변영교의 시를 밑바탕에 둔다. 국립부산국악원 상임 안무자를 역임한 그는 여유와 자신감으로 춤의 품격을 불러온다. 세상의 모든 잡사를 커다란 도포의 띠에 포획하고, 대도무문의 길을 나선 자는 화평의 인자(因子)를 구사한다.

춤의 미학적 형식과 구성에 집중한 정혁준은 춤은 추는 것이 아니라 편성하는 것임을 밝힌다. 국립부산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한 그는 「붉은 머리학 이야기」의 진정성을 이어갔다. 고고하고 차별화된 춤은 깊은 호흡으로 길게 높게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도포를 벗고 추는 춤은 중량감과 집중도를 더욱 보탰다. 망건을 쓰고, 녹음 음악을 사용한 기교와 힘의 운용은 창밖의 선홍(鮮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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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음검무(김경란류 장인숙 재구성, 출연 엄정아 노수연 김채린 심지윤 김진성)

전은자 출연의 부채춤(김백봉류)이미지 확대보기
전은자 출연의 부채춤(김백봉류)


경상남도 무형유산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이자 서울교방 동인인 장인숙(장인숙 회원무용단 대표)이 재구성한 ‘구음검무’(김경란류)는 장인숙이 재기발랄한(엄정아, 노수연 김채린, 심지윤, 김진성)과 함께 출연하여 분위기를 압도한 작품이다.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김수악의 유작인 구음에 진주검무 춤사위를 얹어 김경란이 독무로 만든 작품을 기반으로 장인숙이 역동성을 얹어 구성한 6인 검무이다.

궁중정재의 형식미와 색채를 지녔으며 느린 듯하다 몰아치는 우아한 한삼 사위, 화려하고 현란한 칼 사위. 소박한 듯 매혹적인 맨손 사위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전통춤의 어법을 통한 무게감과 구성으로 기존의 검무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맨손 춤에서 검무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의 춤은 사연을 불러오며, 검무의 변형, 그 혁명적 상상력이 전통춤의 아름다운 변주를 이끌고 있다.

전은자(성균관대 무용학과 교수) 출연의 ‘부채춤’(김백봉류)이 이날 공연의 마무리 춤이 되었다. 김백봉의 예술관이 가장 잘 집약된 부채춤이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부채춤으로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미이며, 왕성한 생명력의 표현이다. 긴 투병 시간을 이겨내고 퇴임을 바로 앞에 둔 지긋한 나이의 스승에게 제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서 격려했다.

‘부채춤’은 김백봉에 의해 서울 시공관의 공연(1954년 11월)에서 독무로 공연된 이래 오늘날까지 한국 무용의 대명사처럼 잘 알려진 작품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초청받아 군무로 재구성된 이 춤은 국내외의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극찬받은 바 있다. 1992년 한국무용협회로부터 명작무로 지정받았으며, 2014년에는 평안남도 무형유산 제3호로 지정되어 활발한 전승 작업을 펼치고 있다.

「시간의 춤 情을 나누다」는 춤 이면의 전은자 교수에 얽힌 사연이 관심을 끌었다. 기획·제작감독 장승헌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가 사회를 보면서 공식적 활동이 마무리되는 사연을 밝혔다. 음악감독 김주홍(장단·구음)이 이끄는 국악단은 전통춤 공연의 상당수를 장악해 온 단체의 연주회 분위기와는 차별화되는 장단(이호원, 김태호), 아쟁 조성재, 대금 이광윤, 피리 강완규, 가야금 김나영, 거문고 최유빈, 구음 김보라의 연주로 새로운 편성의 맛을 보여주며 잊지 못할 석별의 밤을 만들었다. 마음을 준 만큼 세상은 밝아진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이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