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저녁 5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대한민국여기검·검무협회 주최, 평양검무전승보존회 주관, 이북오도청·평안남도청·진주검무 서울지부·경기검무보존회·승전무보존회·평양검무전승보존회·도연임영순무용단·임플란티아치과 후원의 ‘제5회 대한민국 문화유산 차세대 여기검대제전’ 공연이 있었다. 이들은 충(忠)과 애국 근본의 춤인 검무를 화두로 놓고 진주검무(진주검무보존회), 통영검무(승전무보존회), 경기검무(경기검무보존회), 평양검무(평양검무전승보존회)가 명예와 자존심을 건 차세대 여기검 축제를 해마다 열고 있다.
전통춤 가운데 최고(最古)인 검무(劍舞)는 칼춤, 검기무라고도 불린다. 민속춤과 궁중춤으로 나뉘어 골고루 발전되었다. 원시시대부터 자연스레 의식무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상의 기록은 <동경잡기>, 〈삼국사기〉, 〈증보문헌비고〉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 최근의 검무 연구는 이날 해설은 맡은 김영희의 <검무연구>(보고사)를 들 수 있다. 칼춤은 본디 애국심이었다. 검무 가운데 ‘진주검무’는 당시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1967.01.16) 되었고,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서 시연된 칼 모양은 지금과 사뭇 다른 장검이었다.
임영순 총연출·기획, 정미심 연출의 차세대 여기검대제전 공연에 ① 연희검무 : 강연진 이정민 은상희 이봉주 ② 동기검무 : 강호빈 송린서 ③ 평양검무 : 신여신 은상희 홍의진 이승희 정혜정 정숙경 김영수 김미정(이수자) ④ 진주검무 : 이정민 유혜진(이수자), 조용주 김경화 진필경 이지민 최지수 조서윤(전수자) ⑤ 통영검무(승전무) : 장영미(전승교육사), 신정화(이수자), 이봉주 백정순(전수자) ⑥ 경기검무 : 강연진(이수자), 배소연(전수자) ⑦ 임영순(평안남도 무형유산, 당시 무형문화재 제1호 평양검무 인간문화재)이 출연했다.
2024년 차세대 여기검대제전은 연희검무, 동기검무, 평양검무, 진주검무, 통영검무(승전무보존회), 경기검무, 평안남도 무형유산(임영순 재구성 안무의 독무)에 걸친 일곱 가지 검무를 독무, 2인무, 4인무, 8인무, 군무로 보여주었다. 검무에서 발견되는 첨수무(尖袖舞)는 좁은 소매를 놀리는 춤이다. 손목을 이리저리 놀리며 손바닥을 뒤집고 제치
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엽무(葉舞)라고 부른다. 무용수가 짝을 이루어 피변관(皮弁冠)에 첨수의(尖袖依)를 입고, 칼을 들고 농검(弄劍)·연귀소(燕歸巢)·연풍대(筵風擡) 등의 순서로 추는 춤이다.
연희검무 : 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표 춤이 검무였다. 여러 갈래의 연희가 있을 때마다 검무는 두 번 이상 추어졌으며, 예기(藝妓)들 가운데 최고의 춤 솜씨를 지닌 여령(연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여자)만이 검무를 출 수 있었다. 적을 물리치고 액을 몰아내고 사악한 기운을 베어낸다는 의미의 검무는 연향(宴饗) 후 검무를 춘 예기에게 두둑한 후사를 내리고 인정받고 존귀한 춤이었다. 왕권이 무너지자, 검무는 각 지방으로 흩어져 권번에서 추어졌으며 지방 고유의 특색과 역사 소지의 춤으로 전승되었다. 진주검무의 이정민, 통영검무의 이봉주, 경기검무의 강연진, 평양검무의 은상희의 무용수 넷이 한 무대에서 검무의 복식과 동작의 차이를 보인다.
동기검무 : 조선은 예약 사상을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다. 궁중의 모든 행사는 엄격하게 준비되고 치러졌다. 궁중의 연희는 예(禮), 도(道), 악가무(樂歌舞)가 어우러져 펼쳐진다. 그 준비를 위해서 열 살이 되기 전에 궁에 들어가 엄혹한 훈련을 통해 동기들이 왕 앞에 춤을 추게 된다. 동기(童妓)들은 성인 예기들과 공연(共演)을 많이 했다. 우리가 접하는 검무에서 칼은 꺾여진 날에 고리를 손 자루에 연결해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칼날은 없고 칼끝에 구멍을 뚫어서 고리를 단다. 춤출 때 칼에서는 쇳소리가 난다.
평양검무 : 평양검무 원형, 이봉애 원류 평양검무는 문화적 고유성·역사성 담보의 춤이다. 힘찬 기백과 활달함으로 칼 돌리는 동작 가운데 강약이 교차한다. 평양검무는 외국 사신들과의 무역 거래 등 온갖 연회 때에 빠지지 않았던 레퍼토리의 ‘애국춤’ 이다. 활달하고 에너지 넘치는 남성적 동작과 여성적 교태미가 어울러진 매력의 춤이다. 칼끝으로 땅을 치는 동작 등이 타 검무와 차이점을 보인다. 평양검무보존회는 이 춤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원류 그대로 사회적·당대적·현대적·미래적 가치의 춤으로써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진주검무 : 여덟 명의 무희가 춘다고 해서 '진주 팔검무'라고도 한다. 현존 궁중무용 계열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춤이다. 행사 때 관례로 헌무를 올린다. 남색 치마에 옥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치마를 걷어 사대를 묶고 맨 위에 전복, 머리에는 조선 군모를 본뜬 전립을 쓴다. 색동한삼을 두 손에 낀 평사위로 시작, 한삼춤과 맨손 사위로 이어지다가 칼 사위로 마무리된다. 한 쌍의 곧은 칼을 쓰며 장단 구성이 독특하고 춤사위가 다양하다. 현존 무형문화재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춤이다.
승전무 :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 삼도수군통제영 산하의 취고수청(吹鼓手廳, 유중기 통제사가 1687년 창설), 교방청(정홍좌 통제사에 의해 1697년 창설), 악공조합 등에서 악사와 춤꾼들이 양성되어 장졸들의 사기 양양을 위해 병선과 진지에서 춤을 추었다. 승전무는 북춤과 칼춤이 있다. 통제영 교방청 출신인 김혜근의 제자 승전무 예능보유자 정순남에게서 엄옥자(승전무 예능보유자)가 전수하여 충무공의 춘추향사, 생·기신제 때 헌무한다. 겨드랑이 쌍오리 진격태 등의 춤사위로 조화를 이루며, 굳건한 의지를 북돋운다.
경기검무 : 근대 가무악의 스승 한성준에 의해 무대예술 형식으로 정립된 춤이다. 이후 강선영, 김근희로 이어져 내려왔고, 김근희의 경기검무는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예술성을 인정받아 경기도무형유산(당시 경기도무형문화재 제53호)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활달한 기상과 강한 기질, 섬세한 우아함을 소지한 경기검무는 홀춤과 대무 형식의 검무 모두 전승되고 있다. 공연된 경기검무 2인무는 움직임을 구성하는 사위와 디딤, 기교적 우위를 내비치는 자신감이 화합과 상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평양검무(재안무 구성) :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역사의식을 고취하며 미적 승급의 평양검무는 원형의 춤을 변주시켜 묘미를 끌어 올린다. 춤은 동기(童妓)와 평양검무 이수자를 동행하여 전승의 가치를 이음한다. 이봉애 원류 평양검무(평안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는 문화적 고유성을 담보한 사실(史實)의 춤이다. 힘찬 기백과 활달함으로 칼을 돌리는 동작 가운데 강온의 섬세함이 스며든다. 칼끝으로 땅을 치며 본심을 토로한다. 본류의 춤이 왜곡되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원류적, 사회적 당대의 미래 가치를 소지한 춤이다.
검(劍)은 애국충정의 상징으로서 전 세계의 의식에 사용된다. 검무는 조국을 지키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충정을 촉구하고 미학적 탐구를 원하는 자에게 꿈을 심어준다. 평양 뿌리의 평양검무는 김학선-이봉애-임영순으로 이음한다. 평양검무의 심호흡 조절, 머리쓸기, 땅치기 동작, 두 손 가슴에 모아 칼 돌리는 모둠 사위는 평양검무만의 특징이다. 전국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검무는 진주검무 평양검무 경기검무 통영검무 4개 춤이다. 경외감을 주고 나쁜 기운과 악령을 퇴치할 때 쓰이는 검무가 K-검무가 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 김동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