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개장과 함께 조교사로 데뷔한 백광열 조교사는 1988년 서울경마장에서 마필관리사로 데뷔했다. 말단 마필관리사부터 시작한 그는 특별한 지식 없었지만, 그 당시 생소했던 경주마 혈통 연구회를 조직해 국산 경주마 발전에 기여했다.
하지만, 백광열 조교사는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에게 이런 이미지가 따라붙은 것은 ‘김영관(64세, 19조)’의 영향이 가장 컸다. 백광열 조교사는 메이저 경마대회 15승을 거두고 2005년 데뷔 이후 연간 50승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한국 경마 최초로 1500승을 달성한 김영관 조교사의 그늘에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앞뒤 꽉 막혀 융통성 없고 고집불통이라는 핀잔도 받지만 지금까지도 국산 경주마 앞에서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손자뻘의 후배들에게도 서슴없이 물어본다. 그리고 어디든 깨우침이 있으면 너털웃음 지으며 좋아하는 경주마와 함께 전쟁터를 누비는 백광열 조교사를 보게 된다.
백광열 조교사는 “팀원들의 응집된 노력의 결과이며, 뛰어난 국산 경주마를 발굴하고 아픈 말들을 한 마리라도 줄이려고 노력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더 노력해 큰 경주에 큰 말을 만들어내는 조교사로 팬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강세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min382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