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2025년 지속가능발전 5대 지지대의 건전성
② 광복 80주년에 BTS를 다시 본다
③ 대한민국의 핵무장론
④ 트럼프 2기 미·중 통상 갈등의 전망과 대응
⑤ AI 슈퍼사이클의 시작점과 AI CEO
⑥ 기술과 시장의 주도권 싸움이 결정하게 될 반도체 산업
⑦ 정밀 의학시대와 AI 헬스케어
⑧ 금리인하와 공급부족에 따른 집값 향방
⑨ 1000만 관객 영화와 K-Movie
⑩ 세계 정치·경제 판을 뒤흔드는 글로벌 사우스
내년 주택시장의 향방을 놓고 다양한 전망이 나온다. 우선 금리 인하와 공급물량 부족 등에 따른 가격 상승 가능성 요인과 하락 요인이 상존한다. 정부의 대출 규제가 본격화한 점이 집값 상승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다 당초 집값 상승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경제 낙관 전망도 비관론으로 점차 바뀌고 있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보호무역 강화, 전쟁 국가 수준으로 폭락한 주식시장, 자영업 몰락 심화 등이 변수로 꼽힌다.
아무리 금리가 하락하고 주택공급이 부족해도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집값은 하락할 수 있다. 주요 국가 중에 독일과 홍콩 집값이 유독 하락세인 것을 보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주택공급은 부족하지만 경제상황이 악화하면서 주택 수요를 급격하게 위축시킨 결과이다.
◆ 전문기관들 집값 하락 전망했지만, 급등한 이유?
집값 전망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가 터지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다. 올해 집값과 관련해 건설산업연구원은 당초 전국은 3% 하락, 수도권은 1% 하락을 전망했고, 주택산업연구원은 전국 1.5%, 수도권 0.3% 하락을 각각 전망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지난 6월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4000만 원을 돌파,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는 등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급등 현상이 발생했다. 금리인하, 경기회복 기대감, 수도권 주택공급 부족 등이 복합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주택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을 잡겠다는 ‘8.8대책’(국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았다. 그린벨트 해제 등을 통해 수도권에 8만 가구 주택공급을 약속했다.
공급확대 정책은 장기 대책으로, 효과를 내려면 적어도 7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택지 보상, 인프라 확충, 아파트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공급 대책은 '차기 정부', 아니 '차차기 정부'에서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규제 대책이 빠진 ‘8.8공급 확대 정책’은 오히려 집값 자극 대책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집값이 계속 오르자 금융감독원이 9월 대출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결국 11월에 들어서야 하락세로 돌아섰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출 규제의 효과가 서너 달에 그친 과거 사례를 들어 내년에 집값이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집값 상승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윤석열 정부가 정책을 제대로 펴지 못해 집값을 올렸다는 식으로 비판을 하지만, 전 세계에서 비슷하게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 전세계에서 집값 급등이 발생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6월 ‘전세계 집값이 다시 치솟고 있다’는 특집기사까지 내보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주택가격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3% 이상 상승했다. 미국 집값은 1년 전보다 6.5% 올랐고, 호주 집값은 5% 올랐다. 미국의 경우, 2020년 2%대로 떨어진 모기지 금리(장기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6~7%까지 치솟았지만, 오히려 집값은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이코노미스트는 10월에는 전 세계 부동산 수퍼사이클(장기 상승)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코노미스트가 이런 대담한 전망을 한 이유는 뭘까. 이코노미스트가 대세 상승론을 제기한 근거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참조할 만하다.
첫째, ‘집값 상승=공급증가’라는 전통 이론의 붕괴이다. 보통 집값이 치솟으면 건설사들이 공급을 늘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서 집값이 하락 사이클을 그린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 국경 봉쇄,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초인플레이션이 연이어 터지면서 집값 상승기에도 주택 공급이 과거 호황기처럼 크게 늘지 않았다. 미국은 총 600만 채의 공급이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지난해 주택공급(인허가)이 전국 39만 가구로, 10년 평균에 비해 31%가 줄었다. 특히 서울은 2만5000가구로 10년 평균의 65%가 줄었다.
‘집값 상승=공급증가’라는 공식이 깨진 근본 이유는 대도시의 개발 가능한 토지의 고갈, 대도시 집중 현상의 심화이다.
둘째, 이자율 하락의 본격화이다. 팬데믹(코로나 19 전세계 유행) 기간 중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극단으로 이자율이 낮아졌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으로 공급망 중단과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발생한 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발 고금리가 저금리로 바뀌고 있다. 금리 인하가 집값 상승에 영향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셋째. 이민과 관광객 증가로 주택수요가 증가한다. 팬데믹으로 중단된 이민과 관광객 증가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OECD 38개 회원국으로 영주권을 받고 이민한 사람은 650만 명으로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해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간 국가는 미국으로, 전년(104만8700명) 대비 13.4% 증가한 총 118만9800명이다. 이민자 증가율은 1위 영국이고 2위는 한국이 차지했다. 한국으로 온 이민자는 2022년 5만7800명에서 지난해 8만7100명으로 50.9%(2만9300명) 급증했다.
관광객도 급증하고 있다. 올들어 1~9월 방한 관광객은 1200만 명으로, 전년 동기 760만 명보다 60% 급증했다. 관광객 증가는 내수 경기부양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에어비앤비(공유숙박서비스) 수요로 주택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 내년 집값 전망에 등장한 돌발 변수
그렇다면 한국 전문기관들의 내년도 집값 전망은 어떨까?
건설산업연구원은 내년 수도권 주택 가격이 1.0% 상승하는 강보합세를 보이는 반면, 지방은 2.0%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시장의 심리가 연초 대비 상당폭 회복됐지만 여전히 과거 대비 부담스러운 가격 수준이며 9월 이후 은행의 대출 심사 강화, 전반적인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올해 상반기 나타났던 가격 상승 수준을 보이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은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입지, 신축 구축별 차별화 양극화’ 현상이 전망된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는 “대출규제는 과거에도 여러 번 시행된 적이 있지만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면서도 “연간 국민평균 소득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입주 물량 부족이 예상되지만 금리와 대외변수가 가격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전체 여건보다 선호 지역 내 공급 부족이 가격 결정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금리 인하와 공급 부족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론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후 일부 제동이 걸리고 있다. 트럼프가 금리 인하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감세, 관세 인상, 이민 단속을 추진하면서 내년에 추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정책으로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 트럼프 당선 이후 수출중심의 기업들의 주가가 빠지기도 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약속했고 실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결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춰 금리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약속한 모든 수입품에 10~20%, 중국 수입품에 최소 60% 관세 공약이 자칫 무역 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경제 공황을 일으킬 정도로 무모한 정책을 펼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 한국, 선분양 통한 대량 주택공급시스템 붕괴 조짐
트럼프 변수 등으로 내년 집값을 전망하는 게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한국의 주택 공급 시스템이 과거와 같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여러 통계로 주택 공급 감소가 확인되고 있고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 높다.
특히 선분양을 통한 주택 대량 공급 시스템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선분양제는 집값을 사전에 확정, 공사기간에 집값이 오르면 수분양자에게는 엄청난 이익을 준다. 건설사들도 수분양자의 대출로 공사비를 조달하기 때문에 자금 조달이 쉬어 대단지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었다. 한국에 대단지 아파트 공급이 많은 것은 바로 선분양제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문제는 선분양을 했는데 공시 기간에 원자재, 인건비 등 공사비가 오르면 건설사는 치명상을 입는다는 점이다.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원자재와 인건비가 급등하고 금리가 급격하게 변동되면서 선분양한 건설사들은 예상치 못한 막대한 손실을 봤다. 지방 건설업체들은 물론, 대형 건설사들도 실적이 나빠지면서 주택공급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경제가 대내외 변수로 파멸 수준의 침체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주택시장은 수퍼사이클은 아니더라도 공급 부족과 금리 인하의 영향으로 오름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이영한 등 27인(2024.10.), ‘2025 대한민국 대전망’, 케이북스의 내용을 근거로 작성됐다>
차학봉 땅집고 미디어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