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의 심오함은 관객과의 소통이 필요하고 주제를 암시하는 제목은 세련되고, 정제되어야 한다. 바르게 짜인 구성은 기교적 우위를 떠나 관객에게 안정감을 준다. 강나인 안무의 「전이(轉移)」, 이가은 안무의 「In(認)」, 심경보 안무의 「Trust yourself」, 이정빈 안무의 「라벨」, 정현선 안무의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것들, 그 속에서 빛나는 [ ]」는 의지적 작품이었다. 걸작은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쳐, 깊은 사유의 결과물로 태어나며 수정될 수 없는 완벽성을 지녀야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현대무용이 주창하는 시작의 창대성이다.
강나인 안무의 「전이(轉移)」: 임종의 순간, 전이로 인한 끝없는 고통.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뒤흔들며 절망으로 빠뜨린다. 죽음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고, 신체적·정신적 붕괴 과정을 탐구한다. 빨간 끈이 고통의 전이와 그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시각화한다. 끈의 얽힘과 풀림은 고통과 변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도구,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고통과 몸부림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의지와 그 끝에서 남길 흔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탐구한다.
고통의 표현을 신체의 움직임에 녹여내기 위해 기괴한 동작이 드러나며 다양한 몸부림, 얽힘과 떨림, 저항의 움직임을 통해 전이가 신체와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화한다. 영화 <The Ring>(링)의 OST인 한스 찜머(Hans ZImmer)의 ’Television‘(텔레비전)과 ‘This is Going to Hurt.’(상처 받을 거야)를 사용하여 고통과 죽음의 불확실성을 강화한다. 음악의 불안정하고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맞물려 고통의 깊이를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한다. 기본기에 충실한 움직임은 삶의 음계를 변주한다.
이가은 안무의 「In(認)」: 이차 성징으로 급변하는 여성의 몸을 동인(動因)으로 한다. 신체의 선이 두드러지게 달라진다. 신체가 주는 부담과 불안, 감정은 쉽게 흔들리고 깊이를 더해간다. 흔들리는 감정을 직면하고 몰입함으로써 외부에 대한 인식은 점차 흐려지고, 자신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에서 상대의 변화 또한 이해하고 수용하며, 점차 서로 안정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뒤섞인 숨소리는 이윽고 하나가 되어 균형을 이룬다. 직선에서 곡선으로, 구에서 가시로 변하는 신체와 정신의 이미지로 내면의 심연을 탐구한다.
여러 방향과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 무용수들이 겹겹이 쌓이며 엉키고 응어리진다. 서로 다른 꽃잎 분장은 개인의 변화와 개성을 상징한다. 우지코브의 ‘back stage’와 ‘clean up’이 음악이다. 곡선 강조와 여성 신체의 변화를 부각한다. 두 손을 교차시켜 손가락을 세운 상징 동작은 초반의 날카롭고 예민한 감정과 중·후반부의 감정의 일렁임을 담는다. 마무리는 무용수들이 일렬로 앉아 호흡을 맞춘다. 가장 앞의 무용수를 들어 올리며 서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청춘 여성들의 소녀적 상상이다.
심경보 안무의 「Trust yourself」: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끔 흔들린다. 자신을 믿는 과정 중 수없이 많은 감정이 오가지만 이겨내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한다. 인간의 감정을 두 개로 나눠 무용수 두 명이 불안감과 믿음의 역을 맡는다.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불안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 연출된다. 두 사람이 한 인간의 감정이 되어 자신을 믿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떼어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이다. 열정의 이인무가 국제무용제의 성격을 대변한다.
하수 업 스테이지에서 업혀 나와 분위기를 어둡게 끌고 센터 상수 쪽으로 간 뒤 두 무용수가 접촉 진행 후 센터 업스테이지에서 서로로 밀어내고 뿌리치고 얽힌다. 표정 연기(센터 다운스테이지까지 이동) 후 접촉한다. 마무리 방향 이동(상수 다운스테이지)에서 상수 업스테이지까지 진행, 무용수 B에게 무용수 A가 매달렸다가 떨어지며 종료된다. 초반에 업고 나왔다가 후반에는 어깨가 가볍게 내려놓아 편해진 느낌이다. 무드음악이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며, 중간부터 가벼운 비트가 섞이고, 페이드아웃 음악으로 종료된다.
이정빈 안무의 「라벨」: 사회학에서 라벨링 이론(낙인이론)을 무용화한다. 춤은 편견에 대한 주제, 라벨 붙이기를 주제로 삼는다. 실수는 오해를 낳고, 편견으로 남는다. 작품은 편견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긋난 편견인 비뚤어진 전람품을 주문한다. 비뚤어진 마음은 기울기, 각도는 편견으로 비유된다. 삐뚤어진 마음의 기울기가 있는 각도는 상투적이고 강압적이다. 행동 억압은 편견에 갇힌 시선이며 행위를 타락시킨다. 편견에 갇힌 시선들은 ‘나’를 편견에 갇힌 시선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재미있는 발상으로 액자는 편견에 갇힌 상태를 표현한다. 액자를 돌리고 던지고 밀어내는 반복 행위는 손 이외 발등, 발가락, 손목, 팔꿈치 등을 사용, 편견이 다양함을 나타낸다. 액자를 두드리고 들어가는 장면은 밀어내지 못해서 조심스러운 방법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중간까지 액자와의 접촉은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오는 느낌을 주고, 마지막에 탈출하여 자유로운 영혼의 움직임은 다채롭다. 다시 액자를 짊어지게 되고 편견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느낌을 준다. 마지막의 노래는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담는다.
정현선 안무의 「불완전해서 아름다운 것들, 그 속에서 빛나는 [ ]」: 제목이 상상을 부추긴다. 다양한 상상에서 출발한 안무가는 이스라엘 전쟁 상황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한다. 불완전함을 의미하는 고장난 라디오를 소품으로 사용하고 평화에의 고장과 젊은이들의 일탈은 순간적이니 양해를 구한다. 순수를 지향하는 5인의 여성 군무는 불완전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이며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안무가는 랜턴으로 세상을 살피며 자신들의 미래와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한다.
청춘은 아름다우며 순수를 돋보이게 한다. 청춘은 미완이기에 성장하고 발전한다. 완벽함은 때로 냉정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성장이 동반하는 떨림과 불완전한 균형은 따뜻하고 강한 공감을 끌어내며 감정을 깊이 있게 만들어준다. 청춘은 불완전해서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그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하게 빛나는 아름다움이란, 곧 불완전함이다. 전쟁에 고통받는 시민을 연기하는 무용수 4명은 머지않아 찾아올 평화 속 빛나는 마음들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2024 SangSang & Vision 국제무용페스티벌’ 신인데뷔전은 남진희 예술감독의 열정적 추진력과 최효진 연출의 노련미가 빛을 발한 현대국제무용제였다. 하루에 수용한 국제무용제는 시간적 아쉬움을 남겼지만, 출연진과 스태프진의 노련한 조화로움으로 떠오르는 안무기들을 진심으로 격려한 무용제가 되었다. 다양한 소재로 관심을 집중시킨 다섯 편의 현대무용은 떠오르는 안무가들에게 자신의 장단점을 인지시킨 소중한 무대였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서언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제공 한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