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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민족무용단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법고창신으로 스승의 춤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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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민족무용단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법고창신으로 스승의 춤을 기리다

정은혜 대본·원작·안무, 이금용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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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대본·원작·안무, 이금용 연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십이월을 연 춤, 대전시립연정국악원 대극장, 정은혜민족무용단이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이란 무제(舞題)로 화려하게 꽃 피운 동시대적 일무·춘앵전·처용무·학춤의 변신을 연행했다. 이 춤들은 「태례」·「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처용」·「유성학춤」의 창작소(巢)가 된다. 어느 학술원에 올리는 보고서 같은 이 춤들의 원전은 순종 앞에서 춤추던 전통춤의 전설, 김천흥을 기리는 예술적 문화유산이었다.

김천흥 학(學)의 견고한 근착(根着), 바른 수계의 현장을 지켜보는 일은 아름답다. 상상 저편의 상층부의 춤을 내림하여 시대의 미토스로 삼는 작업은 김천흥의 무위의 춤과 심성을 드높이며 정은혜 춤을 인지시킨 작업이었다. 정은혜는 김천흥의 춤 정신을 통째로 이어받고자 노력하면서 시대적 흐름과 주변의 춤 예술가들의 활동 사항을 지켜보고 배움을 청했다. 처용무와 학무로 춤의 깊은 역사성을 알렸다.
심소(心韶) 김천흥(金千興, 1909~2007)의 제자 소헌(素軒) 정은혜(鄭殷惠)는 ‘정은혜민족무용단’을 통해 지난 38년 동안 현대와 소통하며 김천흥의 유산을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실천해 왔다. 내용과 형식에서 압도적 우위를 선점하는 춤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한성준-김천흥-정은혜로 이어지는 춤 유산은 시대적 변천을 거치면서 다듬어져 네 개의 창작 작품으로 태어났으며, 이음의 학(學)의 근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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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대본·원작·안무, 이금용 연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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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대본·원작·안무, 이금용 연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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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대본·원작·안무, 이금용 연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

「태례」(太禮, Taerye-The Rite of Origins) : 김천흥의 종묘제례악 ‘일무’에 근거한다. 원형 속 의미를 다지고 새로워지는 취지로 빚은 작품이다. 제례무는 천지자연, 인간조상, 인류문화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인간을 편하게 위로하는 근원을 찾아 제례의 무궁한 의미를 상징화한다. 한민족사 속에서 뿌리와 시조, 조상이나 천지·자연께 올리는 예(禮)를 한국인의 정신 이미지로 형상화한다. 원로 무용인들과 대를 이을 후손들이 혼심의 힘을 다해 올린 의식은 구조적인 요소와 묘사적인 요소에서 진정성을 보였다.

영상은 하늘이 열림을 알린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받들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빗소리에 이어 현의 소리가 들린다. 검은 두건의 사람들의 자연과 조상에 대한 경외감이 비친다. 숫자의 운영에 이어 기도가 퍼진다. 샤막의 극적 이용과 사운드의 운용이 눈에 띈다. 무리는 검은 제복으로 모두 종이학을 들고 어울림의 춤을 올리는 정성을 보이고, 서로를 받들고 아우르는 선언적 움직임을 펼친다. 출연진은 기꺼이 김천흥 무(舞)의 투사품이 되었다. 상상력이 가득한 춤은 촘촘한 구성으로 기교적 우위를 보였다.

「태례」는 그리이스나 로마의 신전 의식에 견줄 수 있는 미의식의 전통적 모습을 보여준다. 정은혜 안무의 안무적 확장성은 한계를 잃은 지 오래이다. 출연 : 이병옥(국가무형유산 송파산대놀이 명에보유자), 이금주(전 울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 허순선(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 최영숙(전 국립무용단 주역단원), 장유경(계명대 무용학과 명예교수), 조경진(아트 진 컴퍼니 대표), 허은찬(대전현대무용단 대표), 최재호(전국무용제 대전대표 참가), 김민혁(예술단체 DMR 대표), 오해초(吳海超, 충남대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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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앵전-그 역사적 풍경으로 바라보기」(Chunaengjeon-the view as a historic scenery) : ‘춘앵전’은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1809~1830)가 어머니 순원숙황후의 생신에 올린 춤이다. ‘춘앵전’에는 춤 작가이며 안무가이었을 22세(향년 20세)에 타계한 효명의 넋이 스며들어있다. 작가의 상상, 버들가지에서 노래하는 꾀꼬리를 바라보며. 사랑하는 여기(女妓)에게 자기의 정감을 이야기하고 춤추게 한다. ‘춘앵전’의 연행에는 효명세자의 느낌과 그 느낌으로 춤춘 여기(女妓)의 지극한 마음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창사는 슬픔을 탑재한다. 효명세자의 제삿날에 오래 살아남은 어미는 세자의 혼을 부른다. 나뭇가지를 든 효명세자는 긴 호흡으로 이승의 어미를 만난다. 안무가는 1999년 초연 때 창무 포스트극장에서의 느낌을 불러온다. 길고 무거운 하얀 천이 상징하는 영혼의 이음과 느릿한 아쉬움이 빼곡하게 들어박힌 춤은 애잔한 풍경으로 삼기에 족하다. 안무가가 ‘춘앵전’을 바라보는 시선은 피상적 춤의 아름다움보다 이면에 숨어있는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노련한 움직임으로 미학적 격상을 실현한다.

1828년 초연된 ‘춘앵전’은 궁중악사 김창하의 절대적인 도움이 있었다. 정은혜 안무의 ‘춘앵전’ 서사는 비극을 깔고 있다. 정은혜는 왕자의 꾀꼬리의 노래에 대한 감흥을 들어줄 상대를 여기(女妓)로 설정하고, 작품을 전개 시켰다. 화려한 화관과 의상 대신 백색 이미지를 강조한 춤은 어미의 슬픔을 극대화하면서 춤의 깊이감을 수용하였다. 출연 : 정은혜(순원숙왕후, 충남대 무용과 명예교수), 이규운(효명세자, 국립정동극장 안무자), 류은선(충남대 강사), 나소연(한국무용가), 허이진(꾀꼬리, 충남대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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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Cheo Yong) :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2009.09.)으로 등재된 국가유형유산 ‘처용무’가 원전이다. ‘처용무’는 신라시대 '처용설화'에서 유래한 가면무이다.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이 두드러진 이 춤은 섣달그믐날 밤, 역신을 쫓아내던 의식이었다. 정은혜는 김천흥의 ‘처용무’ 이수 기간 내내 처용무의 엄정한 기예에 심취했고, 박사 논문 ‘처용무의 동양사상적 분석을 통한 무의(舞意)연구’에 내재된 사상에 천착하면서 천 년 춤의 가치에 압도당했다. 이 춤은 남다른 해석과 빼어난 묘사력을 보여주었다.

창작무용 「처용」은 ‘처용의 야회’, ‘처용 아내의 외로움’, ‘역신의 침입’의 세 개의 갈등 고리를 갖는다. 처용의 깨달음에 이르는 「처용」은 장엄과 역동으로 에로틱한 광경을 연출한다. 뚜렷한 장면별 음악에 맞춰 깨달음에 이르는 처용의 관용, 체념의 미학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2024년의 「처용」은 여전히 컨템포러리 댄스를 자극하며 건실한 내면과 창작성을 견지한다. 안무가 정은혜는 전통적 관습을 존중하면서도 스승의 미래를 선견하며 변신(metamorphosis)으로 창작품을 조율해 내었다.

「처용」은 여전히 소중한 정은혜 레퍼토리이다. 기하학적 조형에 걸린 화려한 공간미, 색상과 사운드를 계산한 비주얼, 인원(독무에서 군무에 이르는)과 진법(동선의 효율적 이용)의 운용, 앵글과 위치를 고려한 움직임, 수레와 창문, 달과 같은 상징적 도구의 의미 창출 사용, 「달꿈」(1998)은 처용 각시의 시선이었고, 「처용」(2010)은 처용의 덕에 집중하여 대한민국무용대상에서 대통령상(2011)을 받았다. 「처용」은 세대 간의 문화적 사안에 대한 해결과 성숙도를 보여주며 철학적 깊이와 문화적 가치를 깨닫게 한다.

「처용」은 정형의 틀을 사유한다. 끝없는 깊이감은 출연자의 춤 수련 정도를 자연스럽게 표출한다. 신화의 세계에서 시작한 춤은 기교적 전위(轉位, displacement)를 거쳐 걸작이 되었다. 처용이 대리석의 목신(牧神)이 되는 듯한 기분이 감지되었다. 출연 : 박정한(처용, 청주시립무용단 차석), 이금용(처용각시, 충남대 무용과 교수), 이성현(역신, 제39회 부산무용콩쿠르 금상), 각시분신들(조경진, 류은선, 나소연, 허이진), 처용분신들(김민혁, 허은찬, 최재호, 오해초), 나례의식(이병옥, 이금주, 허순선, 최영숙, 장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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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학춤」(The Crane Dance of Yoo Sung) : 학무(鶴舞)의 전개, 「유성학춤」으로 재해석되어 현대적 신비감을 소지한다. ‘학춤’은 고려시대부터 전래된 천 년 역사를 품는다. 학춤은 《고려사(高麗史)> <악지(樂志)>, 조선 초기의 《악학궤범(樂學軌範)》, 조선 말기의 《정재홀기(呈才笏記)》 등의 문헌에 기록되었다. ‘학춤’은 조선시대에 성행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맥이 끊긴 춤 가운데 하나로 한성준이 1935년 부민관에서 복원하였고, 소헌의 「유성학춤」은 1969년 이후 김천흥으로 이어진 학춤을 근거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탈을 쓰고 춤추는 탈학춤은 기능이 어렵고 계절에 따라 연행이 번거러워 무용가들이 학습을 꺼린다. 맨손으로 추는 학춤은 길조와 선비의 상징이었다. 학춤의 깊은 뜻을 살펴 양반들은 맨손으로 학춤을 추어왔다. 소헌은 제자들과 오랫동안 탈을 쓰고 춤추어왔다. 유성온천 설화를 근거한 「유성학춤」은 전통의 맥을 이으며 예술성, 설화성을 두루 담고 있어서 현대와 지역주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유성학춤」은 차별화된 학춤이며 국제성을 소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은혜의 학춤 지도 과정이 아름다웠다.

「유성학춤」에 나오는 풍경소리를 듣고 맑은 아침을 맞이할 것 같다. 새소리가 학을 벗한다. 나무 한 그루가 있는 풍경, 대금소리에 한 마리 학이 등장한다. 조형에 따라 학의 연기가 펼쳐지고 학은 계속 쌍을 이룬다. 학은 몸을 흔들기도 하고, 부리를 맞추거나, 부리를 땅에 씻거나, 목을 쳐들고 벌레를 삼키는 움직임 등의 동작을 한다. 반주 음악은 원래 ‘보허자령(步虛子令)’ 한 곡에 맞추어 추다가 고종 무렵에는 ‘향당교주’(鄕唐交奏)로 바뀌었다. (출연 정은혜, 이금용, 조경진, 김민혁, 오해초, 주연희, 안지현)

정은혜 대본 원작 안무, 이금용 예술감독 연출의 「김천흥무악의 법고창신」은 스승의 뜻을 평생 간직한 제자의 엄숙한 수계의식(受繼儀式)이었다. 그 춤의 증인으로 춤꾼들은 춤을 추었고, 기록자들과 평론가들은 이 춤의 큰 뜻을 기록했고, 관객들은 눈으로 현장을 지켜보았다. 김천흥 선생의 유산은 여전히 회자되고, 창작의 자산이 되고 있다. 정은혜의 창작춤은 한국무용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소헌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심소의 춤은 춤의 본질을 찾아가는 정은혜 호(號)의 항해를 가능케 만드는 든든한 보금자리이다.


장석용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사진제공=정은혜민족무용단, 사진촬영=옥상훈